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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공습부터 마지막 이륙까지…아! 아프간 2001~20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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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8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포토]

2001년 10월8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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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희생자 수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희생자 수.
지난 2001년 10월 7일 시작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2021년 8월 30일 종지부를 찍었다. 장장 20년이었다. 조지 W. 부시로부터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를 거쳐 조 바이든까지, 미국 대통령이 네 번 바뀌었다. 전쟁 희생자는 테러 희생자의 50배를 넘어섰다. 그 사이 아프간의 삶도 변했다. 이 중에 어떤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돌고 돌아 탈레반의 재집권이 시작된 지금, 2001~2021을 숫자로 정리했다.

2001~2021년까지 아프간전 희생자

2021년 4월까지 아프간전 희생자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1년 4월까지 아프간전 희생자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01년 12월
미국의 공습 후 아프간 과도정부가 수립됐다. 하미드 카르자이가 아프간 과도정부 대통령에 선출됐다. 카르자이는 이후 3년 뒤 2004년 10월 아프간 최초의 민주 선거에서 또 한 번 당선된 뒤 2009년 재선에 성공, 10년간 아프간을 통치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전 대통령 2002년 모습. [AP=연합뉴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전 대통령 2002년 모습. [AP=연합뉴스]

난민

20년간 전쟁이 낳은 아프간 난민은 약 50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현재 해외를 떠도는 아프간 난민은 260만 명(전체 난민 11%)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만 아프간 고향을 버리고 55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그중 80%가 여성과 아동으로 집계됐다. 아프간에서만 350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간 고향 떠난 실향민의 연도별 발생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고향 떠난 실향민의 연도별 발생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 세계 난민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 세계 난민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1년 5월 1일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지만, 전쟁의 수렁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후 2014년 9월 아프간전 이후 세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지난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군한 뒤 해외로 달아나 아랍에미리트에 체류 중이다.

지난 2011년 5월 3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일간지 1면에 게재된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소식. [AFP=연합뉴스]

지난 2011년 5월 3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일간지 1면에 게재된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소식.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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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카불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0년 11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카불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성권리 및 교육 수준 

아프간전 개시 후 탈레반 정권의 몰락은 여성의 교육과 권리 신장으로 이어졌다. 1999년 여성의 중고등학교 등록률은 단 한 건도 없었으나 2003년 240만 명의 여성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다만 여전히 어린이·청소년 370만 명이 미취학 상태로 그중 60% 가 여성이다. 여성의 사회진출도 활발해졌다. 아프간은 하원에서 여성이 최소 27%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지난 7월 기준 의원 249석 중 69석은 여성이었다.

여성권리 및 교육 수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여성권리 및 교육 수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2년 7월, 2019년 11월, 2018년 12월
지난 20년간 아프간 여성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었다. 아프간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결과였다. 대표적으로 닐루파르 라흐마니(27), 자리파 가파리(29), 로야 라흐마니(43)가 꼽힌다. 닐루파르 라흐마니는 2012년 7월 아프간 공군 최초 여성 조종사로, 자리파 가파리는 2019년 11월 아프간 최초 여성 시장으로, 그리고 로야 라흐마니는 2018년 12월 아프간 여성 최초 주미대사로 이름을 남겼다.

왼쪽부터 아프간 공군 최초 여성 조종사 닐루파르 라흐마니(27), 아프간 최초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29), 아프간 최초 주미 대사 로야 라흐마니(43). [AP, AFP, 로이터]

왼쪽부터 아프간 공군 최초 여성 조종사 닐루파르 라흐마니(27), 아프간 최초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29), 아프간 최초 주미 대사 로야 라흐마니(43). [AP, AFP, 로이터]

아프간 통신사용

아프간의 통신 시설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접근성은 꾸준히 증가했다. 덩달아 소셜미디어(SNS) 사용자 수도 증가 추세다. 다만 통신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한계로 남아있다. 탈레반이 이를 계속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아프간 통신사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통신사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1년
탈레반이 물러간 뒤 불과 4개월 만인 2002년 2월 아프간 내 첫 휴대전화가 개통됐다. 집권기엔 인터넷을 "불경하다"고 비판했던 탈레반도 2011년 첫 공식 트위터를 개설하고, 통신세계에 합류했다. 21세기 탈레반은 SNS를 새로운 무기로 삼았다는 평가다.  

 한 탈레반 대원이 가즈니주 안다르 지구의 한 병원에서 휴대전화 네트워크 신호를 찾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 탈레반 대원이 가즈니주 안다르 지구의 한 병원에서 휴대전화 네트워크 신호를 찾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2년 5월 국제안보지원군(@ISAFmedia)과 탈레반 문화위원회 소속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ABakhi) 간 대화 스크린샷 [외신 Dawn 캡처]

2012년 5월 국제안보지원군(@ISAFmedia)과 탈레반 문화위원회 소속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ABakhi) 간 대화 스크린샷 [외신 Dawn 캡처]

아프간 경제

아프간 경제는 2001년 미국의 개입 이후 국제 원조에 힘입어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원조 규모가 감소하고, 안보가 악화하면서 성장세가 급속 둔화했다. 빈곤율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6~2017 아프간 정부 조사에서 국민 54% 이상이 한 달 31달러(3만6000원) 아래로 생활하는 빈곤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몇 년간 지속한 가뭄으로 식량 빈곤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10명 중 6명이 식량 마련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탈레반 2기가 민심을 얻으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프간 경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경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년 전쟁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이 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현장 최고 지휘관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육군 제82공수사단장(소장)이다. [사진 미 중부사령부 트위터]

20년 전쟁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이 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현장 최고 지휘관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육군 제82공수사단장(소장)이다. [사진 미 중부사령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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