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1일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또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다른 한편, 악의적인 허위 보도나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자의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 신속하게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각별한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언론중재법에 대해선 침묵해왔다. 청와대 참모들도 “국회에서 논의할 일”이라며 발을 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청와대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법 통과 시 문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법을 최종적으로 공포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어서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고 말했다.
특히 언론중재법 관련 화살이 문 대통령을 직접 향하게 된 것도 청와대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의석수 때문에 개정안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는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30일 오전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7개 단체도 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민주당의 개정안 강행 처리에도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암묵적 동의’로 읽혀, 언론중재법 시행의 최종 책임은 문 대통령이 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30일 오후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앞두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 수석은 방문 목적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언론중재법에 대한 우려를 전하지 않았겠냐”고 설명했다. 이 수석 방문 뒤 여당의 강행 처리 기류도 변화를 보였다.
결국 31일 여야는 법안을 추가로 논의한 뒤 다음 달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고 나서야 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서 정치적 위험 부담이 적어지자 문 대통령이 합의 결과에 대한 평론 수준의 언급을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