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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화장실서 유사강간 미수 그친 군인, 대법이 파기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술집에서 자신을 부축해 준 여성을 강제로 화장실로 끌고 가 유사강간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군인에게 성폭력법(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주거침입유사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범행이 시작됐기 때문에 '주거침입죄를 범한 자'에 해당하지 않아 성폭력법을 적용해 가중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취지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성폭력법상 주거침입유사강간, 폭행,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A일병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에 돌려보냈다.

A일병은 2019년 12월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을 남자 화장실 앞까지 부축해 준 피해자 B씨를 주점 여자 화장실로 끌고 용변 칸으로 밀어 넣었다. A일병은 유사강간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원심은 A일병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주거침입죄를 범한 사람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기소된 성폭력법상 주거침입유사강간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도 "A일병이 피해자를 주점의 여자 화장실로 끌고 가 강제로 입맞춤하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유사강간을 하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실은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성폭력법상 주거침입유사강간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해당 죄는 먼저 주거침입죄를 범한 후 유사강간 행위에 나아갈 때 비로소 성립되는데, A일병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유사강간죄의 실행행위를 착수했다"며 "결국 A일병은 해당 죄를 범할 수 있는 지위, 즉 '주거침입죄를 범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판결 중 성폭력법상 주거침입유사강간 부분은 파기돼야 하나, 원심이 이 부분과 나머지 유죄 부분을 경합범으로 처벌해 하나의 형으로 선고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을 부축한 피해자를 끌고 여자화장실로 억지로 들어가게 한 뒤 유사강간까지 시도하였으므로, 피해자를 화장실로 끌고 들어갈 때 이미 피해자에게 유사강간 등의 성범죄를 의욕하였다고 보인다”라고 봤다. 또 “피고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채 피해자를 억지로 끌고 여자화장실로 들어가게 한 이상, 그와 같은 강제적인 물리력의 행사는 유사강간을 위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개시한 경우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했다.

일반 성범죄 사건과 달리 주거 침입한 이후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성폭력법이 적용돼 가중처벌된다. 주거에 침입한 사람이 강간죄, 유사강간죄 등을 저지른 경우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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