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좋은 아저씨 되고 싶게 하는 맛…1985년생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34)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 봤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후배가 '인생드라마'라며 연신 강조를 한 덕이다. 주말 아침 세수만 겨우 한 눈으로 1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음 날 새벽 즈음 마지막 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드라마의 여운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때 '저런 아저씨로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볼 줄 아는 멋진 아저씨.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사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사진 tvN]

현실은 그런 아저씨가 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만 했다. 삶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남을 등한시했다. '내가 죽겠는데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라마의 여운을 앗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 흘렀다. 아저씨로 늙긴 했는데,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어졌을 뿐, 주변을 돌보는 마음은 줄어들었다.

며칠 전 비 내리는 저녁, 네 캔 만 원 하는 맥주를 사서 하루의 피곤함을 씻고 있었다. 그때 찾아온 문자 한 통. "비도 오고 벙개나?" 위스키를 마시며 알고 지내는 형님으로부터의 문자. 맥주 한 캔의 취기는 곧바로 택시를 불렀고, 잠시 후 형님의 아지트에서 위스키를 마주했다.

위스키 아지트의 컬렉션 일부. [사진 김대영]

위스키 아지트의 컬렉션 일부. [사진 김대영]

한참 위스키를 마시는데 갑자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OST가 흐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봤냐는 질문에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술이 더해지면서 1년 전 되고 싶어했던 '이상적인 아저씨'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해에 생산한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 같은 위스키는 이렇게 맛이 좋은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LE FANCIULLE DELL '800 Bowmore-1985 Bottled 2008, 58.3%. [사진 김대영]

LE FANCIULLE DELL '800 Bowmore-1985 Bottled 2008, 58.3%. [사진 김대영]

태어난 해는 1985년으로 같았지만, 23년이란 세월을 오크통에서 보낸 위스키는 2008년에 병입됐다. 영원히 23살, 2008년의 자신으로 머물러 있는 셈이다. 아직 대학생이던 2008년의 나를 돌이켜봤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순수했다. 13년 전의 내가 2021년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의 나를 현실로 자주 데려와야겠다. 좋은 아저씨로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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