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가자미솥밭과 화이트 와인, 부엌에서 찾은 최상의 마리아주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10:42

와인이 있는 밥상 ① 가자미솥밭과 리슬링   

와인이 있는 밥상
①가자미솥밥과 화이트와인 리슬링

“와인은 국물이다.”

박찬일 셰프의 『보통날의 와인』을 읽다가 격렬하게 동감한 문장이다. 밥 먹을 때 국물이 없으면 밥이 잘 안 넘어가는 나로서는 국과 찌개 문화가 없는 서양 음식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건 더없이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먹더라도 와인 없이는 금세 물렸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와인도 음식 없이는 반병 이상 마시기 힘들었다. 이제는 샌드위치를 먹을 때도 하우스 와인 한 잔을 시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됐다.

자그마한 와인셀러를 사고, 열광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주로 집에서 와인을 마신다. 레스토랑에 상주하는 소믈리에들의 전문적인 와인 핸들링이 와인 맛을 격상시켜준다는 걸 잘 알지만, 한국의 주세가 워낙 높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직접 요리하는 걸 즐기다 보니 남편과 둘이서 혹은 가까운 친구들과 마치 ‘어떤 음식이 어떤 와인과 잘 어울리나’ 대회를 연 것처럼 열심히 요리하고 마셔댔다.

와인에 잘 어울리는 한식을 매치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간소한 조리법이 와인과의 마리아주를 즐기기에 최상의 방법인 것을 알게 됐다. 사진 안동선.

와인에 잘 어울리는 한식을 매치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간소한 조리법이 와인과의 마리아주를 즐기기에 최상의 방법인 것을 알게 됐다. 사진 안동선.

처음에는 연기를 풀풀 내며 스테이크를 굽고 온갖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고 육각형 치즈 보드에 콜드 컷 안주들을 어여쁘게 세팅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식에 와인을 마시고 싶어졌다. 사실 다양한 맛과 질감, 풍미가 한 자리에서 펼쳐지는 한식과 와인 페어링은 오랜 경력의 소믈리에에게도 매우 까다로운 문제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묵은지 넣고 끓인 시큼하고 매콤한 김치찌개, 간이 푹 배어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감자조림, 발효취 풀풀 나는 장아찌를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와인과 페어링 할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다채로운 한식의 맛과 향 앞에서 샤르도네의 섬세하고 우아한 구조감은 해체되고 피노 누아의 실크 같은 텍스처는 그 존재감을 상실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한식과 와인을 매치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나름 답을 찾았다.

단골 생선가게에서 산 생선은 요즘 가장 즐겨 먹는 안주다. 사진 안동선.

단골 생선가게에서 산 생선은 요즘 가장 즐겨 먹는 안주다. 사진 안동선.

요즘 가장 즐겨 만드는 와인 안주는 생선구이이다. 통인시장의 단골 생선가게에 가면 갈치, 고등어뿐만 아니라 그 계절에만 나는 생선들이 깨끗이 손질돼 얼음 가판대 위에 누워있다. 얼마 전에는 붉은 몸 때문에 ‘적어(장문볼락)’라고도 불리는 긴따루가 있길래 사보았다. 1만 원에 열 마리나 주시며 주인아저씨는 말했다. “살이 잘 부서지니까 재빨리 구워야 해요.”

분부대로 불 앞을 떠나지 않고 튀기듯 구운 적어에 맑고 깨끗한 산미의 알리고떼 와인을 마셨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알리고떼 품종은 청아한 레몬색을 띠는데 산도가 가볍고 신선한 시트러스 계열의 맛이라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린다. 생선을 굽기만 하면 식탁 아래서 보채는 고양이들에게 적어 두 마리를 뺏기고 뒤이어 가자미도 구웠다.

회, 구이, 찌개, 조림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고 단백질량이 일반 생선 평균보다 20% 정도 많다는 가자미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한때 다양한 미역국을 내는 식당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처음 가자미 미역국을 맛본 이래 우리 집 냉동실에는 항상 가자미를 쟁여 둔다.

올리브와 로즈마리, 레몬을 얹어 지어낸 향긋한 가자미솥밥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 사진 안동선.

올리브와 로즈마리, 레몬을 얹어 지어낸 향긋한 가자미솥밥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 사진 안동선.

한동안은 구워만 먹던 가자미를 요즘에는 솥밥으로 만들어 와인 안주로 즐긴다. 솥밥이지만 전기밥솥으로 만든다. 섬세한 재료 손질과 정성스러운 플레이팅은 포기했기 때문이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가자미를 필레(뼈 없는 조각)로 손질하고, 시간도 체력도 없을 때는 주방 가위로 머리와 지느러미 정도만 제거한다.

그다음 방법은 전기밥솥에 밥을 안칠 때와 같다. 씻은 쌀에 물을 자작하게 부은 후 그 위에 손질한 가자미를 올린다. 여기에 올리브, 로즈마리, 편으로 썬 레몬을 더하면 화이트와인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향긋한 밥이 된다. 씨를 제거하지 않고 통째로 절여 과육의 식감이 배가된 큼지막한 체리뇰라 올리브를 넣어 밥을 짓는 아이디어는 정리나 푸드 디렉터의 유튜브 채널 Lena’s Table의 올리브 솥밥 레시피에서 얻었다.

취사를 누른 후 삼십여 분이 지나면 집안에는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과 친구들의 호기심과 기대는 상승 곡선을 그린다. 밥이 완성되면 냄비째 들고 와서 손님에게 보여주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프레젠테이션을 따라 해본다. 감탄하는 목소리에 뿌듯해하며 나는 뼈를 바르고 생선 살과 밥을 고슬고슬하게 섞어 각자의 그릇에 담아낸다.

이제 와인을 고를 차례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얀 꽃, 레몬과 라임, 미네랄의 맛과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리슬링’, 또는 기운찬 산도가 코와 혀를 상쾌하게 자극하는 ‘소비뇽 블랑’을 함께 마신다. 리슬링과 소비뇽 블랑 모두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린다. 단, 아귀찜이나 해물탕처럼 자극적인 양념이 지배하는 요리는 제외다.

나는 와인과의 마리아주를 즐기려면 심플한 조리법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가자미솥밥과 화이트와인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유난스럽지 않은 조화를 이룬다. 고소하고 차진 밥을 한술 뜨고 콩나물국 먹듯 레몬 빛 와인을 목 안으로 부드럽게 흘려넘기면, 정말이지 최고의 국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향긋한 '가자미솥밥'
재료(4인 기준)
쌀 4인분, 가자미 1마리(작은 사이즈는 2마리), 체리뇰라 올리브 5~6알, 로즈마리 약간, 레몬 1/2개

만드는 법  
1. 쌀은 씻고 가자미는 흐르는 물에 씻는다.
2. 가자미를 손질한다. 칼이나 주방 가위로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머리를 잘라내며 내장도 함께 제거한다.
3.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물을 붓는다.
4. 손질한 가자미를 얹고 그 위에 레몬을 편으로 썰어 올린다. 양옆에 올리브와 로즈마리를 놓는다.
5. 취사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가 완료되면 생선 살과 올리브 과육을 발라 밥과 잘 섞어 먹는다.

안동선 작가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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