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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건축문화 망치는 '건축신고'…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49)

건축사사무소의 업무 중에 건축허가 대행과 관련된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지역 지구에 따라 미관심의, 경관심의 등 여러 가지 심의를 받아야 하고 허가 진행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등 사전에 받아야 하는 평가도 많다. BF인증, 녹색건축인증 등 인증도 많다. 대형 건축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건축허가는 복잡하다. 도면과 서류를 인편으로 접수하고 해당 공무원과 대면해서 설명과 보완을 하던 시절에는 공무원과 건축사가 서로 소통이 되어 오히려 업무진행이 쉬웠다.

그러나 대면업무에서 부정과 부조리도 발생하고 정부업무 전산화로 인해 요즘은 세움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든 인허가를 처리한다. 그로 인해 행정 투명성은 확보되었지만, 설명이나 보완이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결국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거나 대면이 필요하다. 즉, 업무의 효율성은 더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더러는 세움터에서 서류를 확인하라는 답변만 받고 법적 처리기간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 허가 대면 업무에서 부정과 부조리도 발생하기도 하고, 정부 업무가 전산화 되면서 요즘은 세움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든 인허가를 처리한다. [사진 pxhere]

건축 허가 대면 업무에서 부정과 부조리도 발생하기도 하고, 정부 업무가 전산화 되면서 요즘은 세움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든 인허가를 처리한다. [사진 pxhere]

이렇게 복잡한 건축 인허가의 목적은 건축물의 공익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평가와 미관, 경관심의를 포함해서 일조권, 주차, 조경 등은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인허가 과정에서 적용하는 소방, 구조, 내진 등 각종 법규에 따른 적법 여부는 입주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심의와 허가과정에서 쓸데없는 절차의 반복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허가 과정을 충실히 진행하면서 설계에 있어서 사소한 착오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건축사는 모든 절차를 묵묵히 진행하는 것이다. 즉, 건축물의 공익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증과정이 인허가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건축허가에 가름하는 절차로 ‘건축신고’가 있다. 소규모 건축인 경우에 해당하는데 건축주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면과 서류를 조금 간소화해서 건축허가와 동일한 효력을 갖게 하는 절차다. 가령 도시지역에서 100㎡(30평) 이하의 건축물, 비도시지역에서는 200㎡(60평) 이하의 건축물이 건축신고에 해당한다. 건축허가와 비교하면 일부 서류와 도면이 간소한 면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건축신고의 경우 시공과정에서 감리자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200㎡ 이하의 건축물은 건축주 직영공사 대상이다. 이것도 번거롭게 시공자를 선정하지 않고 건축주가 직접 시공할 수 있게 한 건축주의 편의를 위한 법이다. 즉, 비도시지역인 관리지역, 농립지역, 자연보존지역의 경우 건축물의 연면적이 200㎡ 이하인 경우는 건축신고로 약식 허가가 가능하고, 감리자 지정 없이 건축주 직영공사가 가능하다.

'건축신고'라는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가 건축주를 위한 것인지 부실 시공자를 위한 것인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본래 취지를 벗어나 변질 되었다면 시급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진 pixabay]

'건축신고'라는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가 건축주를 위한 것인지 부실 시공자를 위한 것인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본래 취지를 벗어나 변질 되었다면 시급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여기에 건축허가의 목적인 공익성과 안전성에 배치되는 건축이 지어질 가능성이 내재한다. 시공부실과 그로 인한 건축주와 시공자 간의 수많은 다툼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건축주 직영공사라고 해서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시공자에게 의뢰해야 하는데 법적으로 건축주 직영 가능한 공사 규모이므로 착공서류의 시공자 란에 건축주 이름이 들어가게 된다. 감리자를 선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실제 공사를 진행하는 시공자는 서류에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얼굴 없는 시공자의 부실공사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건축주에게 돌아간다. 감리자가 없으니 시공자가 건축 문외한인 건축주를 속이기는 쉽다. 건축신고의 경우 시공자를 잘못 만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규모가 작은 건축물이라고 공익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미관의 문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불안하다.

비도시 지역의 주택은 대부분 200㎡(60평) 이하다. 도심지의 신축, 증축건축물에 적용하는 엄격한 법적 기준으로 비도시지역의 소규모 건축물의 인허가나 공사를 규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신고’라는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가 건축주를 위한 것인지 부실 시공자를 위한 것인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건축주의 편의를 위해 절차를 간소화한 법이 본래 취지를 벗어나 오히려 건축주에게 불리한 측면으로 변질 되었다면 시급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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