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전자발찌가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8:23

업데이트 2021.08.31 08:25

전자발찌 착용자 재범 억제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뉴스1]

전자발찌 착용자 재범 억제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뉴스1]

흉악범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영원히 사회에서 격리
사형, 종신형, 종신형에 가까운 장기 징역이 해당합니다. 고립된 섬에 보내는 방법이 쓰인 적도 있습니다. ‘화끈한’ 해결책이지만 사람의 변화(개과천선) 가능성을 무시한다는 극단적 단점이 있습니다.

②범죄 능력 원천 제거
성 충동 약물치료가 이에 해당합니다. 소매치기의 손목을 자르는 탈레반처럼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권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③완벽한 교화
인류가 교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고 지금도 개발하고 있지만,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공상과학(SF) 영화에 범죄자의 뇌를 개조하거나 특수 약물을 주입해 ‘선량한’ 사람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직은 ‘공상’입니다.

④출소 뒤 철저한 감시
전자발찌를 채워 이동을 제한하고 동선을 파악해 재범을 억제하는 방법입니다. 전자발찌를 떼어내지 못하게 해야 하고, 움직임이 수상하면 곧바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야 목적이 달성됩니다.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이는 밀착 관찰을 해야 재범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자발찌는 지금까지 여섯 번 개량됐습니다. 절단하기 더 어려운 소재로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연쇄 살인 사건에서 보듯 이번에도 공업용 도구에 의해 절단됐습니다.
한국에 전자발찌는 2008년에 도입됐습니다. 그해 해당자는 151명이었습니다. 그동안 전자발찌 착용자는 3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반면 그들을 감독ㆍ감시하는 보호관찰관 수는 5배 정도가 됐습니다. 제대로 감시가 될 리가 없지요.

⑤'①∼④ 복합' 처방
‘보호수용’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흉악범 재범이 발생했거나 흉악범 출소가 임박했을 때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주 거론됩니다. 교도소가 아닌 수용시설에 형기를 마친 흉악범을 머무르게 하고, 교화 작업을 계속하고, 본인이 원하면 성 충동 약물치료도 하면서 일정 기간을 추가로 사회와 격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말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국회에 이 제도를 만드는 법안이 발의됐는데, 법안 통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의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수의 법조인은 이를 ‘이중처벌’로 봅니다. 위헌적이라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부 때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된 보호감호제를 연상시킵니다. 법이 만들어지고 합헌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수용시설을 만들고 구체적 실행 계획까지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끔찍한 흉악범 재범 사건이 벌어지면 늘 갑론을박이 펼쳐지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의존할 수 있는 방법은 ④번(출소 뒤 철저한 감시)
뿐입니다. 보호관찰관 수를 늘려 제대로 감시하겠다는 법무부 발표가 반복됩니다.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의 보호관찰관 1인당 관리 대상 인원은 114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7.3명의 4배에 달한다. 내실 있는 보호관찰을 위해 증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35일의 재임 기간에 한 일 중 하나입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보호관찰관은 70명가량(현재 교육 받고 있는 인원은 제외) 늘어났습니다.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는 약 1700명이 불어났고요. 보호관찰의 실효성은 여전히 낮습니다.

어제 법무부가 재범 억제 대책을 발표했는데요, 그중에 ‘범죄전력, 범죄 수법(정적요인) 외에 생업종사, 준수사항 이행 정도 등(동적 요인)까지 고려한 수시 재범 위험성 평가 체계 도입’이라는 게 들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재범 위험성 평가’를 해 집중 감시 대상자를 골라내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종합적 평가를 한 적이 없다는 고백인 셈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전자발찌’가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는 조 전 장관이 말한 ‘내실 있는 보호관찰’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있고, 앞으로도 그 거리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찰’이 되지 않은데 무슨 수로 재범을 막습니까?

전자발찌의 범죄 억제 효과를 진단한 기사를 보시죠. 획기적 개선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찰은 살인마인줄도 몰랐다…220억 전자발찌 치명적 약점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살해한 강모(56)씨는 발찌를 훼손한 이후 약 39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7일 오후 5시 31분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인근에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29일 오전 8시쯤 송파경찰서에 자수했다. 그가 자수하지 않았다면 ‘방치’의 시간은 더 길어졌을 공산이 크다.

지난 2008년 9월 도입된 이후 관리ㆍ감독 허점이 꾸준히 제기됐던 전자발찌는 다시 무용론에 휩싸였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자발찌 착용자 성폭력 재범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범죄자의 재범 건수는 292건에 달한다. 이번에 강씨에게 살해된 여성 2명 가운데 1명은 전자발찌를 끊기 전, 나머지 1명은 도주 이후에 피살된 것으로 조사됐다.

39시간 무방비…법무부 “더 견고하게 제작”
법무부는 30일 브리핑을 통해 더 견고한 재질로 전자발찌를 제작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강씨는 공업용 절단기인 그라인더를 이용해 전자발찌를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매년 10여 건 정도 전자발찌 훼손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올해도 이달까지 13명이 전자발찌를 끊었다. 이 중 2명은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보호관찰관 1인당 17명 관리 

일각에선 이같은 사고의 원인으로 관리 인력의 부족을 꼽는다. 현재 국내에 전자발찌를 찬 전과자는 4847명이지만, 감시인력은 281명으로 1인당 관리 대상이 17명이 넘는다. 착용자의 외출금지 시간(오후 10시~오전 6시)의 당직자는 100명을 관리하게 된다.

조두순처럼 1대 1 전담보호관찰 대상에 해당하는 성폭행 전력 3회 이상 고위험군은 19명에 불과하다. 이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전자감독제도는 그동안 끊임없이 개선ㆍ발전됐지만, 아직 물적ㆍ인적 한계가 여전하다”며 “전자감독제도가 획기적으로 재범 우려를 막기 위해선 여러 가지 예산상, 인원상, 또 내부의 조직문화 변화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220억원 넘게 들이지만, ‘라포’ 형성 기회 없어 


올해 법무부 전자발찌 관련 예산은 222억 15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35억 2800만원이 증액됐다. 이는 관련 인건비를 비롯해 전자발찌 제작비, 통신비, 유지보수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220억원을 넘게 들인 정책의 결과는 참담하다.

전자감독 실무를 담당했던 한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전자감독을 포괄하는 보호관찰은 단순히 전자발찌로 대상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며 “주거지 방문이나 현장 지도,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대상자의 심리 상태나 생활 환경 등을 폭넓게 관리ㆍ감독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전과를 지닌 대상자들과 라포(rapportㆍ신뢰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부족해 보호관찰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자발찌의 맹점…거주지 범죄 땐 모른다
전자감독 시스템의 사각지대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자발찌 착용 성범죄자의 경우 활동 반경을 거주지 2㎞ 내로 제한하고, 피해자로부터 20m 반경에 있을 때 경보가 울리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전자발찌가 위치만을 파악하는 특성상 전자감독 대상자가 제한 지역 내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지난 9일에는 서울 노원구에서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아파트 이웃 주민을 성폭행한 뒤 수락산으로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앞서 지난달에도 서울 동대문구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30대 남성이 자신의 집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강씨도 기존 피해자가 아닌 다른 여성들을 범죄 표적으로 삼았고, 범행도 자택에서 이뤄져 감시망을 피했다.

경찰과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전자감독 대상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재범 위험성을 평가해 전자발찌 부착을 검사가 청구하고 판사가 이를 명령하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전자발찌 관련 정보가 경찰이나 지자체, 지역사회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관찰소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소한 대상자들의 재범을 막고 사회복귀 등 교화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선 여러 관계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구성원 역할 하는 방향으로”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기능은 위치추적에만 한정될 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며 “전자발찌는 잠재적 범죄자가 위치 추적 사실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범행을 포기하길 기대하는 방법이지, 범행 의지가 강한 일부 사람까지 막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발찌를 착용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사회적 조건이나 환경이 문제”라며 “사회가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스스로 보람을 느끼도록 해 근본적으로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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