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조희팔도 공들인 캐스팅…금융사기 '단골 조연' 된 정치인들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7:20

업데이트 2021.09.24 18:17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주연이 있으면 조연들도 있다.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든 5대 금융사기 사건에선 정·관계 고위 인사들과 검·경 수사기관 관계자의 연루 의혹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뇌물수수 등 혐의로 법원의 유죄 확정을 받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당사자들이 끝까지 연루 의혹을 부인하고 수사기관도 증거 불충분 등으로 불기소 처분을 통해 잊혀가고 있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크건 작건 사기극에 도움을 줬고 피해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병풍’ 역할을 했다는 의혹은 남았다.

중앙일보가 분석한 5대 대형 금융사기범죄 사건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성격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대형 사기극이 들통나는 마지막 단계에서 주범들이 사건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포섭을 시도한 검·경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이었다. 범죄 유형이 상품 다단계에서 금융 다단계, 이어 사모펀드형 사기로 진화하면서 범행 한창인 중간 단계에서 피해자를 현혹하고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치권과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캐스팅됐다.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가 2012년 11월 19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가 2012년 11월 19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3회] 금융사기공화국의 조연들 : 그들은 왜 ‘병풍’이 됐나

2004년부터 전국에 22개 다단계 수신업체를 운영한 조희팔은 2008년 후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 이자를 주는 돌려막기가 한계에 부닥친다. 이때부터 ‘오른팔’ 강태용을 통해 로비 대상을 관리했다. 이들의 ‘장학생’에는 검·경 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대구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터라 대구 출신 검사와 현지 검찰 수사관, 경찰관들이 주로 포섭 대상이었다. 특히 2008년 3월 검·경이 수사에 착수하자 해외도피 계획을 세운 뒤 집중적으로 돈을 뿌렸다.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이던 2008년 10~11월 강태용으로부터 2억7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받았다. 강태용과는 중·고교 동창이었다. 그가 돈을 받은 건 조희팔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김 전 검사는 개인 사정으로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묵시적 청탁의 목적이 있다고 보고 2014년 5월 징역 7년형을 확정했다.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조희팔 일당은 도피 중에도 장기간에 걸쳐 뇌물을 건네는 등 수사 무마에 공을 들였다. 강태용은 조희팔 사건을 담당하던 고교 선배 오모 검찰 수사관에게 2008년부터 5년에 걸쳐 15억8000만원의 뇌물을 제공했고, 조희팔은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피하기 두 달 전 대구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이던 권모 총경을 직접 만나 9억원짜리 수표를 건네기도 했다. 당시 조희팔은 대구경찰청 수배 대상이었다.

이밖에 조희팔 측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곤 중국 도피 뒤에도 수사 관련 편의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관리해 준 대구 지역 경찰관들이 줄줄이 처벌받았다. 피해자들은 수사권 조정 이슈로 예민했던 검·경이 서로 물고 뜯느라 정작 정·관계 로비 의혹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김상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대표는 “5조원이라는 사건 규모에 비춰보면 조희팔 일당을 비호해 준 내부 세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돈을 받은 검·경 인사들이 실제 내부에서 어떤 추가 로비를 벌였는지 등 깊이 있는 수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8년 9월 한 행사장에서 조희팔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제공

2008년 9월 한 행사장에서 조희팔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제공

창립 기념식 축사, 초청 강연자…기꺼이 ‘병풍’이 돼 준 정치인들

IDS홀딩스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에선 조연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정치인들은 피해자들 앞에 배우로 등장했다. 2014년 IDS홀딩스의 전신인 IDS아카데미는 창립 7주년 기념 행사에서 경대수 전 미래통합당 의원, 변웅전 전 자유선진당 의원과 유명 연예인들의 축사 영상을 틀었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IDS”를 언급했고, 다단계 범죄 조직에 ‘건실한 투자회사’란 포장지를 덧씌웠다.

로비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도 있었다. 경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조모 변호사는 IDS의 고문변호사, 변 전 의원은 IDS의 범죄수익 은닉처로 의심받는 메디치프라이빗에쿼티의 사내이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유착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충청 지역 유지였던 “유모 IDS 회장의 부탁을 들어준 것일 뿐 IDS의 범행에 대해선 몰랐다”고 했다. 유 회장은 IDS 대표인 김성훈이 영입해 회장 직함을 주고 로비스트 역할을 맡긴 인물이다. 그는 2000대 초반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새천년민주당 등을 오가며 활동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과 두루 가까웠다고 한다.

2014년 3월 경대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영상을 통해 IDS홀딩스의 전신인 IDS아카데미 창립 7주년 축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2014년 3월 경대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영상을 통해 IDS홀딩스의 전신인 IDS아카데미 창립 7주년 축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VIK 대표 이철은 본인이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창당했던 국민참여당 출신이라 친노무현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던 시절인 2011년 노무현정책학교 최고정책전문가 양성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배경을 토대로 민주당 또는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을 강연자로 초청해 직원·피해자들 앞에서 친분을 과시했다. 한 피해자는 “이철과 나란히 선 유명 정치인 덕에 이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연자는 문화예술인, 대학 교수 등 다양했지만 노무현 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이거나 민주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도 다수 동원됐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김현종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김수현 전 환경부 차관(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현 경기도교육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도종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김용익(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민주통합당 의원, 유시민 이사장 등이 그들이다. 김정수 금융법전략연구소 대표는 “어찌 보면 이 같은 정치인들도 사기꾼의 위장술에 동원된 피해자”라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 측 관계자는 “김창호 전 처장이 부탁해서 한 번 간 것일 뿐”이라며 “문제가 있는 회사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지난해 4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철씨는 국민참여당 의정부지역위원장이었다. 2014년 여름에 연락이 와서 자기가 회사 차렸는데 강연 좀 해 달라고 해서 강연을 두 시간했고, 강연료로 현금 70만원을 받은 게 전부”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4년 8월 서울 논현동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사무실에서 강연하고 있다. VIK 임원 신모씨 페이스북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4년 8월 서울 논현동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사무실에서 강연하고 있다. VIK 임원 신모씨 페이스북 캡처

단순한 병풍에만 그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12년 VIK 명사특강 강연자로 나섰던 김창호 전 처장은 이철에게서 수차례에 걸쳐 6억29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년 6개월 옥살이를 했다. 이우현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경우 IDS 유 회장과 지연으로 얽힌 보좌관 김모씨를 통해 1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돼 형량이 늘었다.

경우에 따라선 수사 관계자에 대한 직접적인 뇌물 공세도 있었다. IDS 유 회장과 김씨는 김성훈의 뜻에 따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접근, IDS 수사팀 인사 관련 청탁을 벌였다. 이에 따라 배치된 윤모 전 경위는 김성훈으로부터 약 6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유 회장과 김씨는 알선수재, 윤 전 경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됐지만 김성훈은 처벌받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지난해 4월 김성훈을 경찰에 고발해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검찰은 지난 6일 김성훈을 뇌물공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뇌물수수 혐의를 벗은 구 전 청장은 직권남용죄만 인정돼 실형을 면했다.

5대 금융 사기 연루 의혹 정관계 인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5대 금융 사기 연루 의혹 정관계 인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놓고 사모펀드 로비스트 나선 유력 인사들…주연 같은 조연

더 발전한 형태의 사모펀드형 사기 사건에서는 사기꾼들이 직접 피해자들을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다단계 조직을 직접 만들 필요 없이 아예 제도권 은행·증권사를 판매사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대신 판매사에 대한 청탁, 큰손 기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관계 유력 인사가 필요했다. 원로급 유력 인사를 아예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옵티머스 고문단에 이름을 올렸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양호 전 나라은행장,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등이 그들이다.

유력 정치권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명성을 위해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사건이 터진 후에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정치인의 이름을 흘리거나 언론에 폭로했다. 라임의 ‘전주’로 통했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고향인 전라도 광주 출신 민주당 정치인과 인맥을 형성하는 한편, 노사모 부산 지역 대표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던 친노 인사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사하을 지역위원장에겐 수천만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남부지검 검사들을 상대로는 직접 술접대를 하기도 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왼쪽)이 지난해 10월 12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같은 달 8일 법정에서 강 전 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증언했고, 강 전 수석은 "금품수수와 관련해 한치의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다. 뉴스1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왼쪽)이 지난해 10월 12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같은 달 8일 법정에서 강 전 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증언했고, 강 전 수석은 "금품수수와 관련해 한치의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다. 뉴스1

김 전 회장은 구속 이후 옥중·법정 폭로와 번복을 반복하며 자신이 알던 정치인과 검사의 이름을 공개해 자신의 재판 여론전에 활용하기도 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에 거세게 일자, 당사자들은 의혹 일체를 전면 부인했다. 관련 의혹은 여전히 수사 중이라 피해자들은 그들을 사기꾼과 ‘공생관계’로 의심한다. 다만, 법조계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정·관계 로비 의혹을 일부러 부풀리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사기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무차별적인 폭로에는 근거가 부족하기도 하고, 이들의 사기 범죄 본질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사건의 조연들은 직접 플레이어로 뛰었다는 의심도 받는다. 라임의 ‘몸통’으로 지목된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으로부터 2019년 2억2000만원을 받고 대학 동문인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펀드 재판매를 알선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이 대표적이다. 1심 재판부는 그가 손 회장과 만남 전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이종필을 만나 청탁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로비 의혹을 받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로비 의혹을 받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시즌1

옵티머스는 2018~2019년 전직 금융감독원 간부를 로비스트로 썼다. 윤모 전 금감원 국장은 옵티머스 대표 김재현에게 하나은행 등 펀드 수탁사 관계자들을 소개해주는 대가로 47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사회 원로급 인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친분을 쌓은 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기관 투자 유치 때 그들의 이름값을 이용했다.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제도권 기관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기 때문에 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유력가의 명성에 기대는 측면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대형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는 해법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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