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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앱 깔리면 작전 시작된다…하루 19억 터는 그놈 목소리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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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박성수(가명)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지난 25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가 접수됐다. “어머니가 저금리 소상공인 신규대출로 갈아타려면 기존 대출금부터 갚으라는 문자와 전화를 받고 4000만원을 빚내 신원 미상의 남자를 만나려고 한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은행에서 이미 4000만원을 찾은 50대 여성이 딸에게 “돈을 더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를 건 직후였다. 다행히 경찰이 설득해 어머니는 현찰을 건네지 않았고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최근 유행하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사기다. 저금리 대환 대출로 피해자를 유인해 추가 대출을 유도하고 대면으로 돈을 건네받은 뒤 잠적하는 식이다.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과 동행 취재

중앙일보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심각성과 실태를 알아봐 달라는 독자의 요청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 25~27일 인천 서부서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의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인천경찰청 산하 일선 서로는 유일하게 강력계 형사 5명을 투입해 보이스피싱 범죄만 추적하는 팀이다.

전담팀은 지난해 7월 출범해 지난 24일까지 약 13개월 동안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등 피의자 총 136명을 붙잡아 41명을 구속시켰다. 확인된 피해자는 432명, 피해금액은 69억 475만원이었다. 팀장인 황학선 경감은 “문자나 전화로 대출을 알선하거나 신청하라고 권유하는 대한민국 금융기관은 없다. 직접 와서 변제해가는 금융기관도 없다”며 “나한테 결려 온 모르는 번호는 다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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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팀장’ 일당은 총 44명이었다

이젠 대부분이 익숙한 용어인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은 음성(voice)과 개인정보(private), 낚시(fishing)를 합성한 말이다. 속임수나 거짓말로 타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특수 사기범죄의 하나다. 2000년대 초 대만에서 시작된 이후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퍼졌다. 혼자 저지르는 단독범죄가 아니라 본부와 콜센터, 계좌 모집·수거·환전·송금 등의 현장팀, 도청·감시 등의 기술팀 등으로 역할이 나뉘어있는 조직형·지능형 범죄다. 지난 2014년 1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이른바 ‘김미영 팀장’으로 불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적발됐는데 총 44명이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통계 작성 이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2019년 3만7667건으로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해 처음으로 3만 1681건을 기록해 감소세(15.9%↓)로 돌아섰다. 그러나 피해액은 여전히 역대 최고를 경신 중이다. 왜일까.

지난해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000억원으로 하루 19억원꼴로 피해가 발생했다. 계좌 이체를 통한 송금이 아니라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건네받는 ‘대면편취’ 방식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경찰이 은행 창구 직원들이 참고할 수 있게 ‘보이스피싱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금융기관과의 협조를 강화해나가는 이유다.

‘지연인출’ 제도 피하려 ‘대면편취’ 수법 등장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리면서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9월부터 계좌이체로 받은 돈을 100만원 이상 인출하려면 입금 후 30분이 지나야 하는 ‘지연인출’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본인이 영업창구에서 인출하면 한도에 제한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은 전년(3만 517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1만 596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전년(3244)보다 5배 늘어난 1만5111건을 기록해 계좌이체형 발생 건수를 넘어섰다.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금리→저금리 ‘대환 대출’ 미끼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저금리 대환 대출을 권유하거나 금융감독원 직원이나 검사를 사칭하며 협박하는 유형이다. 최근엔 A씨처럼 10%대 고금리 대신 정부지원 2~3% 저금리로 바꿔 타라며 대환 대출을 유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A씨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상공인 대출을 안 받아갔다고 문자가 자꾸 와서 통화를 했고 안내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고 말했다.

전담팀장인 황 경감에게도 수시로 02나 070으로 시작하는 문자나 전화가 온다. 25일 오후 2시에도 황 경감에게 자신을 ‘OO저축은행 상담원’이라는 소개하는 젊은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여성은 상대방의 직업과 이름, 희망 대출 액수 등을 물어가며 대출 상담을 진행했다. 황 경감이 “이름은 김민수, 연봉은 4500만원, 5000만원을 대출받고 싶다”고 하자 이 여성은 “최민수 아니고 김민수세요? 대출 안 되세요”라고 돌연 전화를 끊었다. 황 경감은 “저쪽에서 눈치를 챈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사칭에 당한 20대,“파산 알아본다”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도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엔 암호화폐로 돈을 받아 챙기는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경남에 사는 20대 남성은 지난 6월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에 속아 14%대 카드론 등을 포함해 2억 4000만원을 대출받아 해외 전자지갑으로 송금했다.

협박범들은 ‘당신은 금융사기에 연루돼있다’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피해자가 정상적인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 한도를 확인하면 ‘당신이 뭔데 1억씩이나 대출해주겠나. 내부범죄자를 색출하게 실제 대출을 받아봐라’ ‘대출받은 금액은 국고로 환수하게 안전한 전자지갑으로 보내놓자’고 설득했다. 피해 남성은 본지에 “평범한 회사원으로 열심히 주택자금대출을 갚다가 이런 상황이 돼서 굉장히 힘들다. 은행들이 보이스피싱 관련해선 기존 대출 이자면제도 못 해준다고 한다”며 “제가 다 갚아야 하는 상황인데 답이 없다.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극단선택을 한 사례도 종종 보도된다. 황학선 경감은 “나중에 범인을 잡고 보니까 피해자가 대구에 사는 직업이 간호사인 24살 아가씨로 파악됐는데, 8000만원 사기를 당해서 목숨을 끊었더라”며 “피의자는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가로채기 앱’ 설치 유도해 도청·원격제어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에게 현혹되는 건 자신의 휴대전화에 일명 가로채기 앱이 깔리면서부터다. 27일 인천 서부서에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온 10대 현금수거책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기술팀과 현장팀 두 개로 나뉜다”며 “기술팀은 피해자들에게 앱을 설치하라고 한다. 그 앱이 설치되는 순간 카메라랑 마이크를 통해서 저쪽에서 실시간으로 다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담팀 이상운 형사는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모든 심리상태를 저쪽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기가 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뢰 있는 기관 외에 모르는 번호가 안내하는 URL을 통해서는 절대 앱을 설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사 보이스피싱 범죄와 연관되는 앱을 발견하고 삭제하더라도 휴대전화 서비스센터에 가서 초기화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도 설명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 광고. 제공 인천 서부서 보이스피싱전담수사팀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모집 광고. 제공 인천 서부서 보이스피싱전담수사팀

“총책보다 수거책 잡는 게 현실적”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본거지는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만큼 총책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 경찰은 국내를 무대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해외에 약 100여 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황학선 경감은 “보이스피싱은 아무리 조직을 만들어도 (대면편취형의 경우) 수거책이 없으면 범죄가 완성이 안 된다”며 사실상 수거책 검거가 제일 좋은 예방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거책들도 경찰 단속을 따돌리기 위해 은밀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차 수거책에서 2차 수거책으로 돈이 건네지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차 수거책이 ‘서울역 1번 출구 가까운 화장실 세 번째 칸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이동한다. 화장실에 도착하면 그에게 ‘도착했으면 휴지 한 칸을 떼서 옆 칸으로 넣으라’는 지시가 다시 떨어진다. 이때 옆 칸에 도착한 2차 수거책이 건네받은 휴지의 반칸을 다시 돌려주면 암호가 통한 것이어서 돈을 건네주는 식이다.

국내 수거책 대부분은 온라인 구직광고 사이트에서 ‘송금 업무’‘고액 알바’‘대부업체 채권 회수’ 등의 문구를 보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이상운 형사는 “광고 회사에서 구직 광고를 안 받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번 단속됐는데 같은 회사명으로 계속 광고를 올리는 곳들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 서부경찰서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 오른쪽부터 이주환 형사, 이상운 반장, 황학선 팀장, 김선욱 형사, 함기용 형사. 사진 인천 서부서 보이스피싱전담수사팀

인천 서부경찰서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 오른쪽부터 이주환 형사, 이상운 반장, 황학선 팀장, 김선욱 형사, 함기용 형사. 사진 인천 서부서 보이스피싱전담수사팀

피해 금액 돌려받으려면? 형사배상명령제도 등 활용

보이스피싱에 속았더라도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조력을 통해 일정 부분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우선 통신사기환급피해법에 따라 금융기관에 사기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피해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단, 관련 법령은 계좌이체형만 보이스피싱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현금을 찾아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돈을 건네는 대면편취형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면편취도 국민적 시각에선 보이스피싱 범죄가 분명한데 관련 법령은 계좌송금형만 보이스피싱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관련 규정에 대면편취형만 추가돼도 계좌 지급 중지나 전화번호 차단 조치 등을 적용받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통신사기환급피해법에 대면편취도 보이스피싱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통과를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대면편취형도 피해 금액을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배상명령신청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상훈 형사는 “판사가 피해 금액을 물어주라고 명령을 하면 피의자들이 형량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한다”며 “그래서 저희는 검사가 기소했다는 연락만 받으면 피해자에게 ‘배상명령을 신청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8월 ‘부패재산몰수법’이 개정되면서 보이스피싱으로 취득한 범죄 수익도 몰수·추징보전이 가능해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32건에 대해 총 46억 2200만원의 몰수·추징 보전이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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