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광고물 막는 페인트 두 얼굴 “미세 플라스틱 유발 원흉”

불법 광고물 막는 페인트 두 얼굴 “미세 플라스틱 유발 원흉”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5:00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PVC 가루가 섞인 페인트가 벗겨진 전봇대. 지난해 전단지를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거칠게 하는 특수 페인트 시공을 해두었다. 거리에서 확인한 41개 전봇대 중 30개에 도료형 불법 광고물 부착 방지 시공이 돼 있었다. 편광현 기자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PVC 가루가 섞인 페인트가 벗겨진 전봇대. 지난해 전단지를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거칠게 하는 특수 페인트 시공을 해두었다. 거리에서 확인한 41개 전봇대 중 30개에 도료형 불법 광고물 부착 방지 시공이 돼 있었다. 편광현 기자

전국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불법 광고물 부착 방지 페인트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미세 플라스틱을 방출하는 것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이 페인트를 까칠하게 만드는 소재가 플라스틱의 일종인 PVC(염화비닐수지) 가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플라스틱 어스 2부] 6회
전국 지자체서 애용, 벗겨지면 미세플라스틱 위험
별다른 규정 없어…"불필요한 페인트 사용 줄여야"

서울에서만 3년간 19억 원어치 발라

서울시는 지난 2월 불법 광고물 부착방지 사업에 6억8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 중 5억원은 광고물 부착을 막는 도료를 길거리 전봇대나 벽면에 바르는 데 사용된다. 해당 도료는 가벼운 플라스틱 조각인 PVC 파우더를 섞은 특수 페인트다. 표면이 우둘투둘해 전단이나 스티커를 붙이기 쉽지 않다. 5억원이면 이 페인트를 1만3300t 이상 구매할 수 있다. 서울시는 나머지 예산을 광고물 부착 방지 시트를 사는데 쓴다고 한다. 이 시트 표면에도 PVC 파우더가 발려있다.

도료 업계에 따르면 서울뿐 아니라 경기, 대구, 광주광역시 등 전국 지자체들이 불법 전단을 막기 위해 10여년 간 PVC 가루가 든 페인트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년간 이 사업에 19억4000만원을 썼다.

공기에서 채취한 미세플라스틱 종류별 사진과 비분산 적외선 분광기에 나타난 이미지. 자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공기에서 채취한 미세플라스틱 종류별 사진과 비분산 적외선 분광기에 나타난 이미지. 자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2년 지나면 벗겨지고 날리는 PVC 가루

하지만 업계에선 "광고물 부착 방지 페인트의 내구성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조달청에 불법 광고물 방지 도료를 납품한 A 업체 관계자는 "광고물 부착을 막는 시공 방식은 도료형, 시트형, 돌기형 등이 있다. 이 중 페인트를 이용한 도료·시트 시공을 했을 때는 1~2년 사이 벗겨짐 현상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페인트 시공이라고 한다. 재료비가 저렴한 데다 바르기도 쉬워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이다. 조달청 납품 회사인 B 업체 관계자는 "디자인을 넣기 위해 1.5배 이상 비싼 돌기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저렴하고 바르기도 쉬운 도료형이 가장 많이 쓰인다"고 전했다.

미세 플라스틱 원인이지만 규제는 없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PVC 가루가 섞인 페인트가 벗겨진 전봇대. 지난해 전단지를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거칠게 하는 특수 페인트 시공을 했다. 거리에서 확인한 41개 전봇대 중 30개에 도료형 불법 광고물 부착 방지 시공이 돼 있었다. 편광현 기자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PVC 가루가 섞인 페인트가 벗겨진 전봇대. 지난해 전단지를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거칠게 하는 특수 페인트 시공을 했다. 거리에서 확인한 41개 전봇대 중 30개에 도료형 불법 광고물 부착 방지 시공이 돼 있었다. 편광현 기자

페인트에 섞인 PVC 가루는 햇빛을 받고 풍화되면 가루로 변한다. 그러면 쉽게 대기 중이나 하수도로 유입된다. 한 번 사용하면 화학적으로 분리가 어려워 제거되지 않는다. 안윤주 건국대 환경보건과학과 교수는 "아직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 양을 정확히 측정한 연구 자료는 없지만, PVC 가루가 미세플라스틱이 되는 건 맞다. PVC 가루가 벗겨지는 경우가 많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규제하는 방안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배정한 예산을 받은 각 구청이 조달청에 등록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광고물 부착 방지판 구매 시 PVC 관련 지침은 없다"고 말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전문기관 시험을 거친 제품이 올라오지만, 미세 플라스틱과 관련한 구체적 사항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야외 페인트 사용부터 줄여야"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페인트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잘 벗겨지는 광고물 방지 도료는 당연히 좋지 않다. 애초에 여러 물질이 섞인 페인트 자체도 가루가 되면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도로 도면 표시 등은 제외하더라도, 대안이 있다면 야외에 바르는 페인트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실제로 지난 18일 강원대 연구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강원 춘천시 의암호에서 발견된 최소 11억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인근 보행자 도로에 발린 녹색 페인트 가루였다.

안윤주 교수는 "녹색 페인트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나마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작게 흩어져서 흩날리는 PVC 가루는 더 위험할 수 있다"면서 "지자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도료라면 대체품을 찾는 게 좋다. 만약 대체하기 어렵다면 페인트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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