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살인마인줄도 몰랐다…220억 전자발찌 치명적 약점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5:00

2018년 9월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보호관찰소에서 법무부 관계자가 새로 개발된 일체형 전자발찌를 시연하고 있다.  일체형 전자발찌는 휴대전화 유기로 인한 위치추적 불가 문제를 일소했고, 스트랩 내 금속 삽입물의 두께를 3배 보강해 훼손은 어렵게 개선했다. 뉴스1

2018년 9월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보호관찰소에서 법무부 관계자가 새로 개발된 일체형 전자발찌를 시연하고 있다. 일체형 전자발찌는 휴대전화 유기로 인한 위치추적 불가 문제를 일소했고, 스트랩 내 금속 삽입물의 두께를 3배 보강해 훼손은 어렵게 개선했다. 뉴스1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살해한 강모(56)씨는 발찌를 훼손한 이후 약 39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7일 오후 5시 31분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인근에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29일 오전 8시쯤 송파경찰서에 자수했다. 그가 자수하지 않았다면 ‘방치’의 시간은 더 길어졌을 공산이 크다.

[이슈추적]

지난 2008년 9월 도입된 이후 관리ㆍ감독 허점이 꾸준히 제기됐던 전자발찌는 다시 무용론에 휩싸였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자발찌 착용자 성폭력 재범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범죄자의 재범 건수는 292건에 달한다. 이번에 강씨에게 살해된 여성 2명 가운데 1명은 전자발찌를 끊기 전, 나머지 1명은 도주 이후에 피살된 것으로 조사됐다.

39시간 무방비…법무부 “더 견고하게 제작” 

법무부는 30일 브리핑을 통해 더 견고한 재질로 전자발찌를 제작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강씨는 공업용 절단기인 그라인더를 이용해 전자발찌를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매년 10여 건 정도 전자발찌 훼손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올해도 이달까지 13명이 전자발찌를 끊었다. 이 중 2명은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모씨의 송파구 거주지.   강씨는 지난 27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뒤 이틀 만에 자수했다. 연합뉴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모씨의 송파구 거주지. 강씨는 지난 27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뒤 이틀 만에 자수했다. 연합뉴스

보호관찰관 1인당 17명 관리

일각에선 이같은 사고의 원인으로 관리 인력의 부족을 꼽는다. 현재 국내에 전자발찌를 찬 전과자는 4847명이지만, 감시인력은 281명으로 1인당 관리 대상이 17명이 넘는다. 착용자의 외출금지 시간(오후 10시~오전 6시)의 당직자는 100명을 관리하게 된다.

조두순처럼 1대 1 전담보호관찰 대상에 해당하는 성폭행 전력 3회 이상 고위험군은 19명에 불과하다. 이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전자감독제도는 그동안 끊임없이 개선ㆍ발전됐지만, 아직 물적ㆍ인적 한계가 여전하다”며 “전자감독제도가 획기적으로 재범 우려를 막기 위해선 여러 가지 예산상, 인원상, 또 내부의 조직문화 변화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220억원 넘게 들이지만, ‘라포’ 형성 기회 없어

올해 법무부 전자발찌 관련 예산은 222억 15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35억 2800만원이 증액됐다. 이는 관련 인건비를 비롯해 전자발찌 제작비, 통신비, 유지보수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220억원을 넘게 들인 정책의 결과는 참담하다.

전자감독 실무를 담당했던 한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전자감독을 포괄하는 보호관찰은 단순히 전자발찌로 대상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며 “주거지 방문이나 현장 지도,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대상자의 심리 상태나 생활 환경 등을 폭넓게 관리ㆍ감독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전과를 지닌 대상자들과 라포(rapportㆍ신뢰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부족해 보호관찰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자발찌의 맹점…거주지 범죄 땐 모른다

전자감독 시스템의 사각지대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자발찌 착용 성범죄자의 경우 활동 반경을 거주지 2㎞ 내로 제한하고, 피해자로부터 20m 반경에 있을 때 경보가 울리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전자발찌가 위치만을 파악하는 특성상 전자감독 대상자가 제한 지역 내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지난 9일에는 서울 노원구에서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아파트 이웃 주민을 성폭행한 뒤 수락산으로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앞서 지난달에도 서울 동대문구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30대 남성이 자신의 집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강씨도 기존 피해자가 아닌 다른 여성들을 범죄 표적으로 삼았고, 범행도 자택에서 이뤄져 감시망을 피했다.

경찰과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전자감독 대상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재범 위험성을 평가해 전자발찌 부착을 검사가 청구하고 판사가 이를 명령하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전자발찌 관련 정보가 경찰이나 지자체, 지역사회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관찰소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소한 대상자들의 재범을 막고 사회복귀 등 교화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선 여러 관계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해 현재 시행 중인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해 현재 시행 중인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 구성원 역할 하는 방향으로”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기능은 위치추적에만 한정될 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며 “전자발찌는 잠재적 범죄자가 위치 추적 사실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범행을 포기하길 기대하는 방법이지, 범행 의지가 강한 일부 사람까지 막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발찌를 착용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사회적 조건이나 환경이 문제”라며 “사회가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스스로 보람을 느끼도록 해 근본적으로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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