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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강 물로 원자로 식혔다, 영변 냉각탑 폭파는 ‘쇼’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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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2008년 6월 당시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현 미국 대북특별대표) 등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국제사회에 타전됐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핵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영변의 5㎿ 원자로는 가동 징후를 보이고 있다. 냉각탑이 없다고 해서 원자로가 불능화된 것 아니다.

보고서는 “7월 초부터 원자로에서 냉각수 방출 등 여러 징후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2018년 12월부터 가동하지 않았던 플루토늄 원자로 가동을 재개했다고 평가한 근거다.

지난해 8월 미국의 대북 전문 매체인 38노스가 제공한 영변 핵시설 상업 위성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8월 미국의 대북 전문 매체인 38노스가 제공한 영변 핵시설 상업 위성사진. 연합뉴스

냉각탑은 원자로에서 핵분열 때 발생한 열을 식히는 장치다. 원자로 가동의 핵심 기능을 한다. 냉각탑에서 증기가 나오면 원자로를 가동한다는 ‘증거’로 삼는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미국은 인공위성으로 냉각탑 증기 발생 여부를 감시하며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는지 살폈다. 당시를 기억하는 전직 당국자에 따르면 북한은 마른 종이를 태워 연기를 만들어내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처럼 교란하기도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냉각탑이 없어도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었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틀어지자 곧장 재가동에 들어갔다. 냉각탑이 없어도 강물로 원자로를 식히는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상태였다.

냉각탑 없어도 가동 가능

2019년 7월 올리 하이노젠 전 IAEA 사무차장은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북한이 2007년 시리아에 건설한 원자로는 인근 강물을 연결해 냉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냉각탑이 필요 없었고, 그 직후 북한 원자로도 핵시설 인근의 구룡강 물을 끌어다 쓰게 됐다”고 알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냉각탑 폭파=원자로 불능화’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그해 10월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계기가 됐다.

냉각탑을 폭파했던 북한은 다음해 4월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정에 반발하며 ‘재처리 시설의 불능화 원상복구 및 폐연료봉 재처리’를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이 2018년 5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2018년 5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놓고도 자칫하면 ‘제2의 냉각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앞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관측소와 갱도를 폭파했다.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6차례 핵실험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풍계리 갱도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완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다른 핵실험장 가능성도 있다. 하이노젠 전 IAEA 사무차장은 VOA 인터뷰에서 냉각탑 사례를 언급하며 “제2의 핵실험장이 마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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