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발행, 최대 15% 할인…주민들 줄세우는 ‘지역화폐 매력’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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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추석 앞두고 '봇물' 터진 지역화폐 

지난 7월 경북 포항시 북구 농협 서부지점 앞에서 시민들이 포항사랑상품권을 구입하기 위해 장맛비를 맞으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경북 포항시 북구 농협 서부지점 앞에서 시민들이 포항사랑상품권을 구입하기 위해 장맛비를 맞으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추석 등 명절 전후나 여름 휴가철, 새 분기가 시작될 때 경북 포항에 가면 시중은행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볼 수 있다. ‘포항사랑상품권’을 사러 몰려든 구매자들의 행렬이다.

포항상품권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례를 만들어 발행하는 지역화폐다. 만 원짜리 상품을 10% 할인해서 9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동네 전용 돈이자, 동네 전용 상품권이다.

현금 역외 유출 방지를 위해 전국 230여곳의 지자체가 10% 할인, 10% 캐시백을 내세우며 비슷한 화폐를 발행한다.

이중 포항상품권은 기록적인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발행 규모가 커져 지난해 5000억 원어치가 완판됐고, 2019년엔 1700억원, 18년엔 1000억원, 17년엔 1300억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포항시는 올해도 3520억 원어치의 지역 화폐를 발행한다. 다음달 7일 500억원어치 추석 맞이 상품권 판매를 예고한 상태다.

지난 2019년 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 농협지점에서 시민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발행한 포항사랑상품권을 구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 농협지점에서 시민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발행한 포항사랑상품권을 구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권모(33·포항시)씨는 “포항시내에만 1만6000여곳의 가맹점이 있어 건어물을 사고, 헬스장을 끊고, 주유소에서도 쓸 수 있어 매번 줄을 서게 되는 것"이라며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하면 나머지 액수는 현금으로 거슬러 주고, 상품권 환전 시에도 수수료가 따로 없다"고 했다.

전국 지자체들의 지역화폐 발행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바닥을 치자 경기 부양책으로 지역화폐를 선택하고 있어서다. 지자체의 입장에선 "우리 동네 안에서 돈이 돌게 하는 방법" 중 으뜸이 지역화폐로 자리잡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230여개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지역화폐 규모 예상액은 15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지역화폐 발행 규모 13조3000억원보다 1조700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국비 투입액도 지난해 6690억원에서 올해는 1조52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비 등 세금은 지역화폐 할인 요율(10%) 등에 대한 충당금 등으로 쓰인다.

부산지역화폐 동백전 카드(체크카드). 부산시

부산지역화폐 동백전 카드(체크카드). 부산시

부산시는 추석을 앞둔 다음달부터 지역화폐인 '동백전'의 개인별 월 충전 한도를 10만원 올려 60만원으로 확대한다. 또 전통시장 가맹점에서는 최대 15%까지 캐시백을 지원할 예정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매출 증대를 위해 동백전 월 발행 한도를 기존 14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키로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처음 등장한 제주도의 지역화폐 '탐나는전'도 덩치를 키우고 있다. 제주도는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지역화페 발행 예산으로 2050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올해 초 68억 원에 불과했던 탐나는전 판매액은 2월 130억, 6월 306억 원 등 증가 추세다. 가맹점에서 '10% 할인'을 받고 쓸수 있는 탐나는전은 현재 제주도에만 3만2896여곳의 가맹점이 있다.

전남도는 지역 소상공인을 돕고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 '전남행복지역화폐'를 지난 7월 기준 7918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전남행복지역화폐'가 코로나19 등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도 다음달 추석을 앞두고 100억원 규모의 '제천화폐 모아' 10% 할인판매를 진행한다.

디지털화 진화하는 '지역화폐' 

더 편리하게, 더 많이 쓰이도록 지역화폐는 디지털화하고 있다. 포항시는 다음달까지 종이 상품권 없이 스마트폰으로 지역화폐를 결제(QR코드)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할 예정이다.

전북 익산시도 다음달 지역화폐 '다이로움'에 '모바일 간편 결제 방식'을 도입한다. '다이로움' 가맹점에 설치된 QR코드를 소비자가 본인 스마트폰 간편 결제 앱 카메라로 찍어 금액을 입력하면 다이로움 충전 금액이 가맹점 대표 계좌로 이체되는 방식이다. 익산시 관계자는 "지난해 출시한 다이로움 카드는 지난 24일 기준 가입자 11만5689명, 발행액 1877억원을 넘어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지역화폐를 발행 중인 대부분의 지자체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자체 조례로 사용제한 업종을 지정한다. 유흥업소·사행성 업종·백화점·기업형 슈퍼마켓 등 외지에 본사를 둔 업종 등에는 사용을 제한한다. 하지만 지역화폐 발행이 봇물 터지듯하면서, 법률과 상관없는 애매한 사용처 같은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태백시 지역화폐 '탄탄페이'. 연합뉴스

태백시 지역화폐 '탄탄페이'. 연합뉴스

강원 태백시가 지난해 4월 출시한 카드형 지역화폐 ‘탄탄페이’는 지역 한 골프장이 탄탄페이 가맹점으로 등록한 것이 밝혀지면서 상인들의 불만을 샀다. 태백지역 내 리조트를 갖춘 골프장 이용자들에게 10% 캐시백 혜택을 주는 게 맞지 않다는 이유로다. 골프장에서는 태백시민이 주말에 이용료를 탄탄페이로 결제하면 1인당 1만3000원(그린피 1만1000원, 카트료 2000원)의 캐시백을 받는다. 주 중에는 9000원의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한 전통시장 상인은 “골프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도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성업 중인데 캐시백 혜택까지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 영세업자 등의 어려움을 시민이 함께 극복하자는 탄탄페이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대전시 지역화폐인 ‘온통대전’도 골프장과 골프연습장 등에서 사용이 가능해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캐시백 혜택은 10%다. 한 주민은 “소상공인과 동네상권 활성화를 위해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 등은 사용을 제한하면서 매출 규모가 큰 골프장에 혜택을 주는 건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 6월 말 대전시지역사랑상품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온통대전의 골프장 사용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며 “조례개정 등을 거쳐 골프장 사용 제한은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3 73주년 기념 제주도 '탐나는전 4·3에디션 카드' 발급. 연합뉴스

4·3 73주년 기념 제주도 '탐나는전 4·3에디션 카드' 발급. 연합뉴스

부산 동백전에 대한 지적도 있다. 도한영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비생계형 업종인 병원(치과·성형외과 등), 학원, 미용 등엔 동백전의 캐시백 요율을 2~3% 정도로 낮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세종시는 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지역화폐 ‘여민전’의 골프장 할인 혜택을 제한하고 있다. 세종시 관계자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도입 취지를 고려하면 골프장이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돼 사용처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역화폐의 사용처 선정을 신중하게 하고 업종별·매출액별로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권용범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등을 위해 만든 것인데 골프장 같은 곳에 혜택이 돌아가는 건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국민의 세금인 국비를 들여 발행하고 운영되는 만큼 화폐 사용처를 선정 할 때 조정위원회를 상시 운영해 경제 상황, 지역 상인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소득보전 개념으로 직접적 혜택 주는 방안도 고심해야" 

안일규 부산경남미래정책 사무처장은 "비생계형, 생계형 업종을 구분해 사용처를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면서 "캐시백이나 할인은 세금 낭비를 초래하는 정책인 만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소상공인 등에게 소득보전 개념으로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방안을 더 고심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태호 제주연구원 제주지역균형발전지원센터 센터장은 “업종보다는 자본의 주체가 외지인지, 지역인지를 잘 따져 보고, 대상을 정한다면 (지역화폐 원래 취지인) 지역 내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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