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도 안 바뀌는데…" 그들에겐 드라마 아닌 현실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05:00

“저희 부대에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써있는지 아십니까? 1953(년).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지난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서 나온 대사는 예비역의 공감을 자아냈다. 선임의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탈영한 ‘조석봉’이 자신을 체포하러 온 헌병 ‘한호열’에게 한 말이다. “(군대가) 바뀔 수도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지”라고 설득하던 헌병은 수통 이야기에 말문이 막혔다.

‘D.P.’는 탈영한 병사를 체포하기 위해 사복을 입고 활동하는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다룬 드라마다.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을 그린 작가 김보통이 극본을 함께 썼다. 실제 D.P로 복무한 김보통의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졌다.

27일 출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포스터. 넷플릭스

27일 출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포스터. 넷플릭스

가혹 행위 경험한 그대로…일본서도 관심

‘D.P.’의 인기몰이의 비결은 ‘사실성’이라는 게 시청자들의 평가다. 우리 군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군대 내 가혹 행위와 폐쇄성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29일을 기준으로 국내 넷플릭스 콘텐트 중 두 번째로 많이 스트리밍됐고 일본에서도 5위에 올랐다.

드라마 속 탈영병들은 모두 선임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부대를 탈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욕설과 구타는 기본이고, 얼굴에 살충제를 뿌리거나 라이터로 음모를 태우는 등의 가혹 행위가 여과 없이 등장한다.

그런 탈영병을 쫓는 주인공 ‘안준호’도 가혹 행위를 피해가지 못한다. 같은 소대 선임 황장수는 그의 관물대를 멋대로 뒤져서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소리 내 읽고, 안준호의 가난한 가정사를 조롱한다. 이에 발끈한 안준호를 눕혀 놓고 ‘로열젤리’를 주겠다며 가래침을 뱉으려고도 한다.

폭력이 행해지는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보는 이의 불쾌감을 유발한다. 군대 내 가혹 행위의 심각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상황은 대부분 작가가 겪은 실화를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PTSD 온다’ 예비역 공감 이어져

군대 내 가혹행위. 연합뉴스

군대 내 가혹행위. 연합뉴스

드라마의 사실적인 고증에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27일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가 너무 현실과 비슷해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올 뻔했다”거나 “군대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 드라마를 병영 교육 자료로 써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반면, 드라마의 배경이 2014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최근 개선된 병영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18~2019년 강원도 인제에서 육군으로 복무한 정모(23)씨는 “군에서 병사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하면서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가혹 행위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계급이 낮은 병사의 하극상이 더 자주 터질 정도였다”고 했다.

한때 존재했던 부조리이더라도 그걸 있는 그대로 그려내 군에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2014~2016년 공군헌병대에서 근무한 A씨(27)는 “당시 부대의 한 대위가 ‘크기를 비교해보자’며 지나가는 병사마다 성기를 움켜쥔 일이 있었다”며 “문제가 공론화되고 징계가 이뤄지기까지 한참 걸렸을 정도로 성폭력 등 가혹 행위가 만연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최근 군 성폭력 사건 터지면 사실성 부각

지난 2014년 윤 일병 사망사건이 발생한 28사단 사고부대에서 장병들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4년 윤 일병 사망사건이 발생한 28사단 사고부대에서 장병들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D.P.’의 배경이 된 2014년은 군 가혹 행위의 심각성이 수면 위에 오른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윤 일병 사건)이 일어난 해다. 28사단 소속 윤 모 일병이 선임들에게 집단으로 구타당하다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군 내 소원 수리 고충을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외부에도 알릴 수 있게 하겠다”며 “간부를 포함한 모든 장병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군대 내 성폭력과 사건 은폐 정황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드라마의 사실성은 부각되고 있다. 드라마가 흥행할수록 ‘군의 인권보호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군 당국을 향한 비판과 지적도 힘을 얻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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