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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재갈법’ 30일 본회의 상정 무산…국제적 우려에 “처리 힘들 것” 전망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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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왼쪽)가 30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뒤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선 '언론중재법'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여야는 '합의 실패'를 이유로 본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왼쪽)가 30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뒤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선 '언론중재법'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여야는 '합의 실패'를 이유로 본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국내외 언론단체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당초 3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불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박 의장이 여야 합의를 당부하면서 결국 본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밤 10시쯤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 직후 “이번 회동에서도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31일 오전 다시 회동해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형식적으로는 잠정 중단이지만,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8시 30분부터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 사안이 국내 문제를 넘어서 국제 문제가 되는 것 같다”며 “시간을 두고 좀 더 살펴보았으면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윤 원내대표가 언급한 ‘국제 문제’는 지난 24일 비영리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내용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에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에게 진정서를 발송한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윤 원내대표의 이런 발언에 일부 의원들이 “송영길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는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지 않으냐”며 강하게 항의했으나, 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강행 처리를 중단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31일에도 본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밀어붙일 순 있으나, 그보단 아예 9월 1일 시작하는 정기국회로 넘겨 장기과제로 돌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날 의원총회 직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사실상 9월 처리도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與 내부는 강행론 압도…“절벽에서 같이 뛰어내리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4시간 전만 해도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의 강행 처리를 위한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4시 30분쯤 박 의장 주재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만난 직후 “민주당은 국회의장께 오늘 본회의를 열어서 인사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언론중재법을 포함한 20개 법안 모두를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후 민주당은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골자는 유지한 채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국민의힘 측에 제시하기도 했다. 절충안의 모양새는 갖췄으나, 여전히 언론중재법의 핵심 골격은 유지했다는 점에서 강행 처리를 위한 ‘명분 쌓기’란 해석이 나왔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민주당의 의원총회에서도 “이제 절벽 끝에 섰다. 결단의 순간만 남았다. 같이 뛰어내리자”(김민석 의원) 등 강행 처리 주장이 압도했다. ‘언론재갈법의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김승원 의원이 첫 발언자로 나서 당 안팎의 비판을 반박하며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고, 대표적인 강경파 정청래 의원도 “더 논의하고 더 숙의해서 새롭게 나올 내용이 없다. 언론 반발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속도전을 요구했다.

정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단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김경협·도종환·서영교·이원욱·정청래 등 3선 의원들이 이날 잇따라 강행 처리에 힘을 실으며, 회의 분위기는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들은 “논의를 더 해봤자 실익이 없다”(이원욱)며 정치적 유불리를 근거로 대거나, “나도 처음 보도될 땐 (비판 기사가) 거대하게 나가고 정정보도는 요만하게 되면서 피해를 봤다. 이런 걸 명확히 전달하자”(서영교)는 주장을 펼쳤다. 윤 원내대표가 이날 언론중재법의 상정을 요구한 건 이같은 발언이 의총장에서 오간 직후였다.

여권 원로 “지혜롭게 처리” 주문…청와대 우려도 전달된 듯 

문희상 전 국회의장(사진 왼쪽), 김원기 전 국회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여권 원로들은 30일 국회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만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사진은 지난 6일 대선후보 경선 등 현안과 관련해 열린 상임고문단 회의 모습. 뉴스1

문희상 전 국회의장(사진 왼쪽), 김원기 전 국회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여권 원로들은 30일 국회에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만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사진은 지난 6일 대선후보 경선 등 현안과 관련해 열린 상임고문단 회의 모습. 뉴스1

그러나 결국 민주당 지도부가 강행 처리를 중단한 것은 여권 원로들의 적극적인 만류가 일부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의원총회 전 당 상임고문인 김원기·임채정·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유인태 전 의원 등 민주당 원로들은 송영길 대표를 찾아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원로들은 “언론개혁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꾸준히 노력했던 사안이다. 그러나 길은 지혜롭게 현명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면담에 참석했던 김 전 의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는 모두 ‘너무 앞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여야 관계를 원만하게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임 전 의장도 통화에서 “(송 대표에게) ‘국민과 함께 가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쥐 잡다가 독을 깬다. 소를 고치려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문 전 의장),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뭐냐.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결국 심판받은 것이다.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일주일 늦어지고, 한 달 늦어진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느냐”(유 전 의원)는 얘기도 나왔다. 원로 4명 가운데 언론중재법의 강행처리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날 국회에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모습도 포착됐다. 이 수석은 이날 저녁 6시 40분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실을 찾아 20분 동안 머무르며 여당 원내지도부와 만났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전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수석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수석의 방문 직후 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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