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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가인권위원장, 인권·자유 현안에 침묵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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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30일 열렸다. 청문회에서는 송 후보자가 2019년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 형사재판 상고심 사건을 변론하면서 수임료를 받지 않은 사실을 놓고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시민단체는 그를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 한다.

앞서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후임으로 사법연수원 동기인 송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송 후보자가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 등 기본권 확대,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 등에 앞장서 왔다고 홍보했다.

헌법상 국민 기본권 지켜낼 책임
인권위 위상·역할 재정립 절실해

송 후보자의 거취와는 별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문 정부 들어 추락한 위상과 역할을 재정비해야 하는 막중한 난제 앞에 놓여 있다. 어느 때보다 인권위원장부터 권력 눈치를 보지 말고 인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부를 비판하는 자유가 위축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를 비판할 자유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표현의 자유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자유다. 그런데도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 등을 뿌린 행위를 건조물침입 위반 혐의로 처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명예훼손으로는 처벌이 어렵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개된 건물에서 평화적으로 정부 비방 유인물을 붙이거나 뿌린 행위를 엉뚱하게 건조물 침입 혐의로 처벌한 것은 문제다.

거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도 우려스럽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여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빌미로 검찰의 수사권을 무력화했고, 수사기관의 권력 비리 수사 상황 공개를 엄격히 제한하더니 급기야 언론중재법을 개정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 하고 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 최대 5배까지 거액의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하는 악법 조항을 만들어 정부 비판 보도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송 후보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개정안의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면서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비례의 원칙’이나 ‘명확성의 원칙’ 등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인권위원장 후보자라면 이처럼 중요한 인권과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해 더 단호한 입장을 밝혀야 마땅하다.

문 정부 들어 북한 인권을 거론하기도 어렵고, 인권위도 이런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2018년 북한 여성의 성폭력 피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방한한 국제적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당시 인권위 상임위원이던 필자에게 한국 정부가 왜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사람이 먼저’라는 문 정부에서도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정부 승인 없이 전단 등을 북한에 살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각계의 반대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시하고 강행 처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상황에서 문 정부는 침묵하며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을 후퇴시켰다. 인권위는 이런 문제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송 후보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도 사법연수원 동기다. 박 전 시장 재임 시절 송 후보자가 대표로 있던 로펌이 서울시 사건을 수 십건 수임했다. 헌법재판관 시절에는 한 건설사가 청구한 ‘임대주택법 분양 전환 관련 조항’의 헌법소원 기각 결정에 참여했으면서도 퇴임 이후에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그 건설사를 위해 유사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인권위원장만큼은 권력의 힘이나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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