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준호의 사이언스&

“어디 좋은 곳 없나” 발사장 찾아 헤매는 우주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국내 유일 하이브리드 우주로켓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김수종 대표는 요즘 마음이 복잡하다. 내년 6월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센터에서 예정된 15t 시험발사체 한빛호의 첫 발사를 앞두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아서다. 충남 금산의 자체 연소시험장에서 지난 27일부터 시작한 수평 연소시험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발사 허가를 받으려면 실제 상황처럼 로켓을 수직으로 세워 연소시험을 해야 하는데, 현재의 장소로는 어렵다. 전남 고흥 등지와 수직 연소시험장 설립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지만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대전의 메탄 기반 소형 액체 우주로켓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이노스페이스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 올해 말까지 첫 액화 메탄 기반 시험발사체 블루웨일 1호를 고도 100㎞ 이상의 우주로 쏘아 올릴 계획이었데, 아직 본격 연소시험은 물론 발사장도 확정하지 못했다. 일정을 연기하고 발사체도 1, 2단을 나눠서 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애초엔 올해 안으로 호주 서부 발사장에서 첫 시험발사체를 쏘아 올릴 예정이었는데, 최근 발사장 계획을 제주도로 변경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등으로 상황이 꼬인 탓이다.

2024년 고흥 민간 발사장 완공
그전까진 발사할 장소 찾아야
세계기업들 우주경쟁 치열한데
국내선 지역·환경단체 반대 거세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장에 오는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들어섰다. [사진 항공우주연구원]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장에 오는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들어섰다. [사진 항공우주연구원]

국내 민간 우주발사체 스타트업들이 발사장과 연소시험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땅을 보러 다니고, 지역 경로당을 찾아 인사드리는 일이 됐을 정도다. 전남 고흥 외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있지만, 오는 10월 첫 발사를 앞둔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KARI) 전용시설이라 민간기업들은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6월 나로우주센터 부지 옆 청석금에 민간 발사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완공 시점이 2024년 말이다. 국내 둘뿐인 우주 발사체 기업 이노스페이스와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입장에서는 최소 3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항우연의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아 우주발사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우주산업이 이미 뉴스페이스(New Space)라는 새로운 트렌드 아래 민간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점을 생각하면 국내 우주기업은 그 손발이 묶여있는 형국이다.

국내 우주발사장 여건은 열악하다. 국토가 좁아 최소 200만㎡(약 60만평) 이상을 요구하는 발사장 여건을 갖추기가 어렵다. 한반도 인근에 해상·항공 교통이 많아 발사 시점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발사장은 고사하고 연소시험장을 건설하려고 해도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 각종 시민단체의 반대에 시달려야 한다. 한반도 남단에 있는 국내 유일 나로우주센터 역시 발사장 입지로서의 조건은 제한적이다. 자유롭게 우주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각도가 15도에 불과하다. 지리적으로도 한반도 동쪽에 일본이, 서쪽으로는 중국과 필리핀이 있기 때문이다.

충남 금산의 한 야산 골짜기에 있는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연소 시험장. [중앙포토]

충남 금산의 한 야산 골짜기에 있는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연소 시험장. [중앙포토]

사실 정부에서 꼽은 국내 우주발사장의 최적지는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였다. 항우연이 1991년 경북 경주 감포, 울진 일대, 전남 소흑산도 일대, 제주도 가파도·마라도 일대를 대상으로 타당성을 조사 분석한 ‘로켓발사장 기초연구’ 자료에 따르면 조사지역 중 제주도 가파도와 마라도가 우주발사장 건립에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라도는 남쪽으로 활짝 열려 있어 발사 방위각이 나로우주센터의 배인 30도에 달한다. 면적이 32만㎡(9만7000평)에 불과하지만, 주민이 적고 섬 전체가 완만한 경사로 된 넓은 초원으로 이뤄져 있어 활용도도 높다. 당시 항우연은 마라도에 발사장을, 제주도 모슬포항에 통제센터를 두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마라도 우주센터는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는 한때 우주발사장 최적지로 검토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국토 최남단 마라도는 한때 우주발사장 최적지로 검토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대안은 없을까. 우주전문가들은 ▶해상 발사 ▶공중 발사 ▶외국령 임대 등을 제시한다. 해상발사는 바지선 형태의 발사장을 주변국의 우려가 없는 공해(公海)로 끌고 나가 쏘는 방식이다. 1999년 러시아·미국 등 4개국 합작사인 시론치(Sea Launch)가 처음으로 해상 발사장에서 러시아 로켓을 쏘아 올렸다. 한국 통신위성 무궁화 5호도 2006년 시론치로 발사됐다. 이후 2014년까지 총 36차례 발사했지만, 최근 가격 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에 대해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해상발사는 바지선을 적도까지 끌고 갈 수 있어 정지궤도 위성도 쏘아 올릴 수 있다”며 “석유시추선 등 대형 해상구조물 건설 기술과 경험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공중발사는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의 우주발사 기업 버진오빗이 쓰는 방식이다. 보잉747 같은 대형항공기 동체 아래에 우주로켓을 달고 고도 10㎞의 상공에 올라간 뒤 로켓을 발사하는 방식이다. 지상 발사장과 달리 발사 방위각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소형발사체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다.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나 호주 등 인접 국가의 특정 부지 일부를 임대해 사용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우주정책 전문가인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내 우주스타트업들이 발사장과 연소시험장을 찾지 못해 전국을 헤맨다는 건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경쟁 시대에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며 “현실적으로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고흥군 일대에 민간 발사장과 연소시험장을 가급적 빨리 마련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