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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특유의 액션·유머 여전, 첫 중국계 히어로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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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중국계 히어로 샹치(시무 리우·오른쪽부터)와 아버지 웬우(양조위)는 중국 무술에 기반한 액션을 펼친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중국계 히어로 샹치(시무 리우·오른쪽부터)와 아버지 웬우(양조위)는 중국 무술에 기반한 액션을 펼친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의 첫 중국계 히어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9월 1일 개봉)이 베일을 벗었다. 마블 히어로 영화 세계관(MCU)의 25번째 장편영화이자, 아시아계 히어로의 첫 단독영화다. 샹치(시무 리우)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으로 마무리된 MCU 페이즈3에서 아이언맨 등 기존 히어로들이 퇴장한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울 새 얼굴 중 하나다.

공개된 영화에선 중국 전통 무술이 어우러진 액션과 친근한 청춘의 표상 같은 주인공들, 부자간의 갈등을 균형감 있게 담아낸 성장담, 마블 특유의 유머 등이 돋보였다. 30일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91%. 영국 영화지 ‘엠파이어’는 “아름답게 짜인 액션 속에 재밌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선사하는 가족과 슬픔에 대한 탁월한 이야기”라 평가했다. 미국 매체 ‘로저에버트닷컴’은 “다른 MCU 영화, 슈퍼 히어로 영화, 액션 영화가 주목해야 할 엄청난 ‘소울’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10년지기 친구 케이티(아콰피나)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호텔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샹치는 평생 가족에게서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다. 샹치는 열 개의 팔찌 ‘텐 링즈’로 1000년 넘게 불멸의 권능을 누려온 아버지 웬우(양조위)에게 살인병기로 길러지다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릴 적 가르쳐준 어머니의 고향 ‘탈로’의 신비한 무술을 되새겨온 샹치는 오랫동안 헤어졌던 여동생 쑤 샤링(장멍)을 찾아간 마카오에서, 아버지가 탈로를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으로 알려진 중국계 캐나다 배우 시무 리우와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페어웰’로 주목받은 아콰피나(어머니는 한국계, 아버지는 중국계인 미국 국적 래퍼 겸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중국 배우 양조위가 필모그래피 최초 악역을 맡은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고, 중화권 스타 양자경도 가세했다.

저임금 노동자인 청년 샹치가 도심을 질주하는 버스에서 악당과 맨몸으로 맞선 장면은 마블의 동료 ‘스파이더맨’이 떠오른다. 부와 기술을 갖춘 비밀 왕국의 후계자이자 남매란 점은 ‘블랙 팬서’와 닮았다.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중국의 외딴 대궐, 살아있는 대나무숲과 마법 동물들의 고향을 오가는 여정에선 ‘아바타’ ‘신비한 동물 사전’ 같은 판타지물이, 말없이 대화하는 듯한 전통 무술 격투에선 미국에서 지금껏 비 영어 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보유한 이안 감독의 무협영화 ‘와호장룡’도 떠오른다.

30일 오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화상 간담회에서 만난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 감독과 주연 시무 리우, 아콰피나. (왼쪽부터)

30일 오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화상 간담회에서 만난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 감독과 주연 시무 리우, 아콰피나. (왼쪽부터)

연출을 맡은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 감독, 주연 시무 리우, 아콰피나가 30일 화상 간담회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상처받은 10대와 청소년 상담사의 성장을 그린 ‘숏텀 12’(2013)로 주목받았던 크리튼 감독은 “아버지가 암살자로 훈련시킨 아들이 성인이 되어 그 아버지를 대면해야만 하는 상황이 흥미로웠다”며 “샹치와 아버지의 감정적 사연과 관계가 액션과 안무를 통해 눈으로 보이게 했다. 샹치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머니쪽(성향)과 아버지쪽이 맞붙어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모두 수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고 설명했다.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 양조위는 “보통 홍콩에선 대부분 남자 배우들이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워 어느 정도 할 줄 알기 때문에 영화에 필요한 무술 동작을 촬영하면서 익힌다. 이 영화는 촬영 전 모든 격투 장면을 2주간 리허설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영화 속 자신의 무술을 ‘호랑이 발톱 쿵푸’라 설명했다. “탈로 사람들의 평화와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권과 달리, 웬우의 공격성과 분노를 나타내준다”면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의 모회사 디즈니가 ‘뮬란’ 실사영화에 이어 급성장한 중국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다. 하지만 중화권에선 영화를 둘러싼 구설이 잇따르고 있다. 2019년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신작 라인업을 발표한 순간부터 원작 만화의 인종차별적 배경이 논란이 됐다. 당장 지난 4월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도 중화권에선 부정적 반응이 컸다.

샹치는 1970년대 미국 내 쿵푸와 이소룡의 인기 속에 1973년 마블 만화에 첫 등장 했다. 아버지 ‘푸 만추’의 악행에 맞서 슈퍼 히어로로 활약한다. 문제는 푸 만추가 영국 소설에서 빌려온 세계 정복을 꿈꾸는 괴인으로, 서구에서 바라본 아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인물이란 사실이다. 이번 영화에선 샹치 아버지의 이름을 ‘웬우’로 바꾸고 스스로 만다린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대사를 넣어 디즈니가 중국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30일 기준 영화 전문 사이트 IMDB에 따르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홍콩 개봉일이 9월 2일로 잡혀있지만, 중국 본토 개봉일은 나와 있지 않다.

지난해에도 디즈니는 영화 ‘뮬란’의 엔딩 크레디트에 영화 촬영에 협조한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한다는 자막을 넣어 논란을 불렀다. 이 지역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인권탄압으로 비판 받아온 점이 지적되며 태국·대만 등을 중심으로 영화 보이콧 움직임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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