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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전과14범이 화장품 방문판매, 주민들은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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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7일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의 서울 송파구 거주지. 법무부는 30일 전 자발찌의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보다 더 견고한 재질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의 서울 송파구 거주지. 법무부는 30일 전 자발찌의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보다 더 견고한 재질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자수하면서 여성 2명 살해 사실을 자백했던 강모(56·전과14범)씨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면서 여성들을 만났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자발찌를 채울 정도로 컸던 재범 위험성에 일반 시민이 그대로 노출됐던 셈이다.

3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5월 6일 천안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화장품 영업직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교도소 교정위원이었던 한 목사의 주선으로 가정이나 사무실을 방문해 화장품을 파는 일이었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복역 중에 강씨와 친분을 맺은 목사가 주선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방문판매 형태의 다단계 영세업체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에게 여성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추천해준 건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며 “범죄 이력을 고려한 선별적 취업 알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의 거리에서 CCTV에 찍힌 강씨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7일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의 거리에서 CCTV에 찍힌 강씨의 모습. [연합뉴스]

송파구청에 따르면 강씨는 또 출소 후 3개월간 기초수급생활자 지원금 340만원, ‘사랑의 온도’에서 나온 후원금 350만원 등을 받았다. 익명을 요청한 구청 관계자는 “강씨가 (수급 가능 항목을) 다 알고 와서 달라고 하는데 일단 조건에 부합하니 안 줄 수가 없었다”며 “지급 안 하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정보공개청구를 한다느니 거의 반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씨가 화장품 영업을 한 사실에 대해 “직장이 있다는 것을 밝히면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되니까 말을 안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판결에 따라 공개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의 신상은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하지만 강씨는 이 사이트가 운영되기 시작한 2008년 이전에 수감됐기 때문에 이 사이트에서 신상을 찾아볼 수 없다. 강씨는 2005년 공범 3명과 함께 두 달간 30명이 넘는 여성을 상대로 강도, 절도, 성범죄를 저질렀다가 검거돼 15년간 복역했다.

강씨의 집에서 불과 370m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주민들은 강씨의 존재와 신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주민 김모(56)씨는 “뉴스에 우리 동네가 나와서 그제야 알았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경찰도 전자발찌 훼손 당일인 27일과 그 이튿날인 28일 총 5차례나 강씨의 자택을 방문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던 데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에서 강씨가 외부에 있는 것으로 파악돼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택 안에 있던 피살자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 살인 등 혐의로 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자발찌 무용론도 또다시 제기된다. 전자발찌는 2008년 9월 도입된 이후 수시로 관리·감독의 허점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30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1월~2020년 6월까지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범죄자의 재범 건수는 292건에 달한다.

정부는 그때마다 전자발찌 재질 개선 등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강씨도 공업용 절단기인 그라인더를 이용해 전자발찌를 쉽게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발찌 착용자는 현재 4847명에 이르지만, 감시 인력은 281명에 불과하다. 1인당 17명 이상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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