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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담겨 돌아온 '9·11 키즈'…바이든 부부, 머리숙여 맞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요일인 29일(현지시간) 오전 8시를 조금 지나 미 공군 수송기 C-17이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밖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미군 장병 13명의 유해를 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에 예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에 예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잠시 후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활주로에 내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스러진 영웅들(fallen heros)"들을 직접 맞으러 왔다.

바이든 부부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수송기 옆으로 도열했다. 운구를 맡은 장병들이 성조기로 감싼 관을 수송기에서 내려 대형 밴으로 옮겨 실었다.

유해가 지나갈 때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간인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고, 밀리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인은 거수경례를 했다. 바이든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마치 기도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유해 한 구를 옮기는 데 약 3분이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약 40분간 아스팔트 위에 서서 시신이 옮겨지는 것을 지켜봤다. 질 바이든 여사는 트레이드마크인 하이힐을 벗고 검은색 플랫슈즈를 신었다.

습도가 높은 흐린 날씨였다. 질 바이든 여사 뒤에 서 있던 델라웨어주 상원의원 부인이 실신해 쓰러졌는데도 운구팀은 미동도 하지 않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는 엄숙했다.

진행자도, 대통령 인사말도, 구령도, 음악도 소리라고는 일절 없었다고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생중계된 화면에서는 오로지 운구팀의 무거운 발소리만 울려 퍼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를 맞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를 맞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성조기에 덮여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해병대원 11명, 육군 1명, 해군 1명이었다. 31세와 25세 각각 1명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20~23세였다.

아프간 전쟁의 원인이 된 9·11 테러가 일어난 2001년에 태어났거나 갓난아기였던 이른바 '9·11 키즈'들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서 잇따라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 중이지 않은 조국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학교에 금속 탐지기가 설치되고 공항에선 신발을 벗어 X레이에 통과시켜야 하는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미군 철군 시한인 8월 31일까지 남은 이틀간 테러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20년 전쟁이 종료되면 이들은 아프간전 마지막 희생자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유족과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NYT는 유족들이 바이든 책임이라며 분노를 표했다고 전했고, WP는 일부 유족은 만남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고 전했다.

전사자 중 한 명인 해병대 소속 라일리 매컬럼(20) 이병의 가족은 WP에 바이든 대통령이 장남 보의 이라크전 참전과 귀국 후 암으로 숨진 얘기를 했다면서 “피상적이고 대본을 읽는 듯했고, 전사자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를 싣고 온 군 수송기 안으로 기도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테러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를 싣고 온 군 수송기 안으로 기도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해외 전장에서 숨진 미군 유해 송환을 가족이 동의하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다.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는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총 4차례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2016년 참석했으며, 대통령으로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있다고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전했다. 유해 송환은 '행사(ceremony)'라고 부르지 않고 '위엄있는 이동(dignified transfer)' '경건한 행동(solemn movement)'이라고 부른다. 행사라고 했을 경우 유족이 참석해야 하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신을 담은 관은 '이송 케이스(transfer case)'라고 부른다.

취재진은 유족 쪽을 쳐다보지 않도록 지침이 내려졌고, 유족 사진 촬영이나 녹화도 할 수 없다. 유족 모습을 보도한 사진이 한장도 없는 이유다. 현장에는 유족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대형 버스가 세워졌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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