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 반대' 학교 앞에 조화까지…서울교육청 뒤늦게 "의견듣겠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15:56

업데이트 2021.08.30 17:03

아이들이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초등학교 교문앞에서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선정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보낸 화환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아이들이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초등학교 교문앞에서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선정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보낸 화환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서울시교육청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미래학교) 사업 대상 재검토에 들어갔다. 강남·목동 지역에서 시작한 학부모 반대 움직임이 서울 전역으로 번지면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 중 하나인 미래학교 사업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30일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주에 교육지원청을 통해 미래학교 사업 대상 학교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며 "반대하는 학교를 하나씩 제외하는 식으로 갈 순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을 취소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전체 의견을 듣고 지금 계획대로 그대로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초 서울교육청은 미래학교 대상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재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미래학교는 교육부가 2025년까지 총 18조5000억원을 들여 지은 지 40년이 넘은 학교를 개축·리모델링 하는 사업이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의 대표 과제 중 하나다. 서울에서는 약 3조2000억원을 들여 서울 시내 213개 학교를 손 볼 예정이다. 스마트 교실과 지역 공유 시설 등 첨단 장비를 갖춘 새로운 형태의 학교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28일 한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미래학교 반대 게시물. 미래학교가 혁신학교와 같다는 내용과 집값과 학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진 부동산 카페 캡쳐]

지난 28일 한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미래학교 반대 게시물. 미래학교가 혁신학교와 같다는 내용과 집값과 학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진 부동산 카페 캡쳐]

'또 다른 혁신학교' 의심에 반대 커져

하지만 이달 초부터 미래학교 대상으로 지정된 강남구 대곡초, 송파구 잠실중, 서초구 경원중 등에서는 학부모 반발이 거셌다.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 근조 화환을 줄세워 놓으며 반대 뜻을 밝혔다. 교육청 앞에도 여러 학교 학부모가 보낸 조화가 늘어섰다.

낡은 학교를 첨단 시설을 갖춘 학교로 바꾸는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 학부모들은 미래학교를 '혁신학교'와 비슷한 사업으로 의심한다. 교육부의 미래학교 관련 보도자료에 나온 '교수학습의 혁신을 추진한다'는 구절이나 '지역과 학교 시설을 공유한다'는 설명이 혁신학교와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게시된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현수막.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게시된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철회 촉구 현수막.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강남 등지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반감이 크다. 혁신학교는 토론과 활동 등 다양한 교육 방식을 추구하는 학교이지만, 시험이나 학력을 강조하지 않아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커서다. 지난해에도 서초구 경원중, 강동구 강동고 등이 혁신학교로 지정됐다가 학부모 반대로 취소된 바 있다.

공사 때 다른 학교 가거나 모듈러 교실 써야

길게는 3년에 달하는 공사 기간동안 학생들이 임시 교실(모듈러 교사)에서 지내야 하거나 다른 학교로 통학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다. 자녀가 공사 기간 불이익을 받지만, 완공된 뒤 새 건물은 쓰지 못한다는 인식이 크다.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9일 "공사 기간 재학생이 인근 학교로 강제 전출돼야 한다"는 반대글이 올라왔다.

세종시 수왕초등학교에 설치된 모듈러 교사. [교육부 제공]

세종시 수왕초등학교에 설치된 모듈러 교사. [교육부 제공]

반대 움직임은 이른바 '교육 특구'라 불리는 강남·목동에서 시작됐지만 다른 지역으로도 번지고 있다. 이날 조 교육감은 미래학교 사업 대상 학교인 영등포구 대방초등학교에 방문하기로 했지만, 학교 측의 요청으로 연기했다. 학부모 반발이 큰 상황에서 교육감이 방문하면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미래학교 반대는 지금까지는 서울에서만 불거지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미래학교 반대가 큰 곳은 서울 밖에 없다"며 "교육청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 일단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트라우마'…학부모 "교육청 못 믿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에코스쿨 생태전환교육파크 조성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에코스쿨 생태전환교육파크 조성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육계에서는 혁신학교 사업으로 진통을 겪으며 교육 당국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가 떨어진 점이 문제라고 본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교사는 "혁신학교를 지정 하려는 교육감과 수 년째 갈등을 벌인 학부모들은 교육청을 믿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대상 학교를 정한 뒤 토론회를 여는 등 소통 방식도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 이해를 돕겠다며 토론회를 열었지만,  참가자 대부분을 미래학교 사업에 호의적인 인사로 구성해 논란이 일었다. 토론회를 중계한 유튜브에서 반대 의견이 빗발치자 교육청이 채팅창과 댓글을 폐쇄해 '불통'이란 비난이 거셌다.

학부모 반발이 이어지자 교육청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사업 대상 학교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의원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관계자는 "시설 공사는 학부모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사업인데, 이렇게 반발하니 당혹스럽다"며 "추진 방향을 다시 검토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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