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 누구에게 말하고 있지? 온라인교육의 명과 암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15:00

업데이트 2021.09.01 16:02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50)

대다수의 교육 대상자는 바쁜 업무 중에 뻔한 내용의 교육을 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아주 시큰둥한 표정으로 강의 장소에 나타난다. [사진 pixabay]

대다수의 교육 대상자는 바쁜 업무 중에 뻔한 내용의 교육을 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아주 시큰둥한 표정으로 강의 장소에 나타난다. [사진 pixabay]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공무원, 학생…. 그들은 한 해에 정해진 시간만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이 있다. 국가에서 꼭 들어야 한다고 지정한 교육, 나는 그런 교육을 주로 강의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성희롱 예방, 가정폭력 예방, 성매매 예방, 아동학대 예방 교육 등이 그것이다.

사람 백이면 백 명 모두 ‘아이를 때리면 안 돼’ ‘성평등은 당연한 거야’ ‘폭력은 나쁜 거야’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교육을 듣는 절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아이를 때리거나, 성차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뻔한 교육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일 보도되는 기가 찬 사건의 주인공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를 운운하며 맘카페에서 떠들던 평범한 엄마는 아이를 학대해 살해했고, 후배의 고민을 상담해 주던 친절한 선배는 온라인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성착취를 했다. 학대와 성범죄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문제가 됐을 때는 너무 사랑해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너무 친해서, 장난삼아서 등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가 생겨난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권력과 함께 얽히고설켜 미묘한 갈등 투성이의 문제를 만들어 내고, 흑과 백을 구분하듯 한쪽이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말하기 힘든 문제가 다반사다. 평범한 얼굴 속에 감춰진 ‘차별’, ‘편견’, ‘혐오’ 등은 폭력성과 연결돼 문제 발생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의무교육의 방향은 교육을 받는 대다수가 이것이 절대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문제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고,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작은 불씨를 찾아보고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실로 들어온 일상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내 일터의 문제로 고민하게 하고 성찰과 변화까지 이끌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나에게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숙제다.

내가 하는 의무교육 대상자는 대부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 중에 뻔한 내용의 교육을 올해도 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시큰둥한 표정으로 강의 장소에 나타나곤 한다. ‘나는 뉴스에 나오는 사람과는 거리가 아주 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왜 바쁜 나에게 필요 없는 교육을 또 듣게 하느냐 말이지.’ 딱 그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어디 한번 얘기해 봐’라며 나를 응시하곤 한다.

화상 강의 후 어떻게 온라인 교육에 학생의 참여를 이끌 수 있을까는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꼼꼼한 교육생 분석과 교육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사진 pxhere]

화상 강의 후 어떻게 온라인 교육에 학생의 참여를 이끌 수 있을까는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꼼꼼한 교육생 분석과 교육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사진 pxher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은 그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던 교육 대상자를 컴퓨터 화면 안으로 옮겨다 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교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각 기관의 담당자는 온라인 강의 내용을 녹화해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화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도록 주문한다. 온라인 강의는 각자가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하기에 부산의 교육생, 목포의 교육생도 내 집의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대면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 도구도 아주 다양하다. 이들 교육 툴의 사용법은 비교적 비슷하지만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 틀을 사용할 때마다 이것이 어떤 온라인 환경에서 구동될 수 있을지 공부하고 또 시험해 봐야 한다.

강의를 듣는 사람은 비록 1시간의 교육일지 모르지만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보통 두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준비한다. 전문가용 마이크와 조명도 필요하다. 한쪽의 모니터에는 내가 준비한 강의 내용이 보이고, 다른 모니터에는 교육을 듣기 위해 접속한 30명이 넘는 사람 얼굴이 살아 있는 증명사진을 다닥다닥 붙여 놓듯이 모여 있다. 30명 이내의 집단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몇백 명의 사람이 접속하면 서로 소통하면서 교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 화상 강의 도구를 처음 사용했을 때 나와 여기에 접속한 교육생 모두 사용 방법에 익숙지 않아 많은 실수가 있었다.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을 때면 강의하다가도 접속이 끊겨 몇 번을 튕겨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고, 화면은 잘 나오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은 채로 한동안 떠들기도 했다. 또 한 번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하던 중에 부부싸움이 벌어져 온라인 강의장에 부부싸움이 생중계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화면을 켜놓은 상황에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코를 골며 잠든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사고가 많은 교육이니 당연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려고 한다.

비대면으로 실시간 교육을 시작할 때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를 부탁한다. “화면은 ‘on’해 주시고, 소리는 ‘off’로 부탁드립니다”라고 양해를 구한다. 그런데 이런 간곡한 부탁이 무색하게도 강의를 시작하면 많은 사람의 얼굴은 컴퓨터 화면에서 사라진다. 의무교육이니 강의 URL에는 접속해 있으나 화면의 대부분은 커진 것이다. 그리고 까만 모니터 화면에는 이름 석 자만이 동동동 떠 있다. 화면 안의 이름만이 강사와 교육 수강자의 유일한 연결선이 된다. 내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고는 있는지도 모르고 떠들다가도 화면 너머 누군가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질문을 던져 본다. 감사하게도 혼자 고군부투하고 있는 강사에게 측은지심을 느낀 몇몇 분은 목소리가 아닌 채팅으로 답변을 던져주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짧은 답변조차 외면하고 내가 지금 벽을 보고 떠들고 있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소수이지만은 있기는 하다. 이럴 땐 내가 컴퓨터를 off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몇 번의 참담한 화상 강의 경험이 있은 후 어떻게 온라인 교육에서 교육생의 참여를 이끌 수 있을까는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강의 중간중간 사람의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퀴즈를 내고 그것을 맞히면 모바일 상품권을 쏘기도 한다. 소그룹 활동을 통해 토론 활동도 활성화해 놓는다. 또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주석을 작성하고 투표하게 하기도 한다. 꼼꼼한 교육생의 분석과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 또 온라인 교육은 피로도가 높으니 중간의 쉬는 시간은 철저히 지키고 릴렉스할 수 있는 음악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요즘은 최소한 벽에 대고 혼자서 원맨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면한 듯하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캄캄한 상황의 연속이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환경을 맛보았고, 코로나19가 일단 멈춘다 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의 교육 방식만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는 왜 의무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가? 직장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마음 편히 일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얼굴을 맞댄 교육이건, 온라인 교육이건 형식적 시간 채우기가 아닌 알맹이가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주체자, 참여자. 강사 모두가 같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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