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의 여름나기…붉은 소파 위에서 검은 고양이와 함께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13:00

업데이트 2021.08.30 17:18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82) 

이 나이를 먹고서야 결론이 난 게 있다.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젠 겨울이 좋다. 정답을 찾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나도 몰랐다. 아! 아직도 중국요리를 시킬 때 짜장이냐 짬뽕이냐는 여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난 7~8월, 이곳이 혹시 동남아 어느 길거리일까 싶게 무더웠다. 체감온도 40도라니 믿을 수 없었다. 역대급 더위 어쩌고 하더니 역시나 화끈하게 더웠던 2021년의 여름. 짧고 굵은 무더위였다. 그랬던 여름, 겨울보다 싫은 거로 결론 난 내 여름을 함께 견디어 준 건 바로 책이다. 그 중에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추리소설이다.

붉은 소파에서 검은고양이를,2021,갤럭시탭S6, [그림 홍미옥]

붉은 소파에서 검은고양이를,2021,갤럭시탭S6, [그림 홍미옥]

한 십여 년쯤 되었나보다. 미미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일본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구입했다. 안 그래도 추리소설이니 관심을 뒀겠지만 미미여사의 작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장 읽기에 들어갔다. 흔히들 부르는 벽돌(사실 모방범 세 권을 합치면 벽돌보다 더 크고 무겁다) 책이지만 어찌나 재밌던지 푹 빠져들고 말았다.

1권을 읽고 보니 2권도 얼른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다음 스토리를 읽기 시작했다. 난 내 맘대로 미미여사의 친구가 되어 함께 범인을 잡는데 몰두했다. 복잡한 전철도 외진 곳의 별장도 동행했다. 물론 내 상상으로!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출근 시간이 되었음에도 그날만큼은 아침 식사 준비보다 범인을 잡는 게 급선무였다. 성의라곤 찾아볼 수 없게 밥과 반찬 그릇을 통째로 식탁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그리고 잽싸게 소파에 파묻혔다. 두툼한 『모방범』을 강력하게 부여잡고서. 원래 재밌는 추리소설이란게 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천둥이 울고 벼락이 내리친들 범인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감히 눈을 돌릴 수가 있을까? 밥을 먹는지 출근을 하는지 내 알 바 아니었다. 셔츠 다림질도 깜빡했다. 급기야 화를 내고야 만 남편, 곧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난 아쉽지만 책을 덮었다. 날 선 대화가 오갔고 금세 집안 분위기는 서늘해졌다. 때는 한여름이었다. 댓바람부터 추리소설로 시작된 신경전으로 우리의 감정 온도는 영하로 내려갔다. 우습지만 그래서 추리소설은 여름에 읽어야 하나 보다. 붉은 소파 위에서 다시 한번 검은 고양이를!


에드가 앨런 포. 영미문학 콜렉션/뉴욕공립도서관.

에드가 앨런 포. 영미문학 콜렉션/뉴욕공립도서관.

어릴 적 어른들이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에 열광하던 난 중학교 때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만나게 됐다.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가 그 첫 시작이다. 당시 우리 집에도 얼굴에 하얀 반점이 있는 검은 고양이를 키웠다. 하필 소설 속의 고양이와 닮아서 어찌나 꺼림칙하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의 또 다른 단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읽고는 본 적도 없던 오랑우탄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올여름은 조영주 작가의 『붉은 소파』와 함께했다. 제1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마침 우리 집 작은 소파도 붉은색이다. 이건 거의 운명이랄 수밖에 없다. 후후후! 책 속의 붉은 소파가 현실로 나와 그 위에서 함께 사건을 추리하는 기분이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멀지 않으니 가보고 싶어졌다. 혹시 붉은 소파가 놓여있을까? 그렇게 나의 여름나기는 21세기 붉은 소파 위에서 19세기 검은 고양이와 함께했다.

궁금해 하는 것도, 꿈꾸는 것도 행복!

이리저리 얽히고 매듭지어진 밧줄을 푸는 재미도 남다르다. 널려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고 마침내 결말이라는 열쇠를 손에 쥘 때면 뿌듯함이 더 크다. 내가 탐정이 되어 읽는 한여름의 추리소설! 과연 최고다. 첫 장부터 궁금한 거 투성인 것 또한 매력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남긴 오싹한 명언 시리즈가 있다. 물론 오싹은 아니고 그 시니컬함에 매력이 잔뜩 묻어나는 말들이다.

궁금해 하는 것도 행복이다. 꿈 꾸는 것도 행복이고.
It's a happiness to wonder, it's a happiness to dream

-애드가 앨런 포

솔직히 말하자면 추리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속셈은 따로 있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추리를 하다 보면 남들보다 건망증이 좀 늦게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지갑을 분실했다. 아무리 장소·시간·사건을 추리해봐도 당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추리소설을 읽더니 그런 것도 해결 못 하냐는 가족의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랴! 비록 현실에선 지갑을 분실하고도 대책이란 없지만 추리소설의 세상에선 동분서주 바쁘기만 하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을 보니 올여름도 이제 작별을 할 모양이다. 올해도 추리소설과 함께 시원한 여름이었다. 물론 에어컨과 선풍기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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