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에 삼겹살 위험해요”…소멸 위험 '시골살이' 대학생들의 이색 리포트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11:30

박채림(21·여)·이정환(21)·백노아(21·여)씨. 버스정류소 문제를 분석했다. 경북 의성군

박채림(21·여)·이정환(21)·백노아(21·여)씨. 버스정류소 문제를 분석했다. 경북 의성군

대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풍성 

"버스정류소를 두고 인근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불판 삼아 삼겹살을 구웠다고 했다." 

서울 등 수도권 대학생들이 7주간 '시골살이' 후 작성한 리포트에 담긴 내용이다. 성균관대 이정환(21), 경희대 오지우(21·여), 중앙대 김가영(21·여), 국민대 김정원(24)씨 등 대학생 12명은 지난달 5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지방소멸 위험 지역인 '경북 의성군'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사회적협동조합 menTory 주최, 의성군의 후원을 받아 '의성살이'를 했다.

이들은 의성에 머물며 다양한 생활 속 문제를 찾아 리포트로 작성했다. 이광대 의성군 청년정책 계장은 "도시 청년들의 리포트엔 시골 지자체가 가진 사소하지만 해결이 애매한 각종 생활 속 문제. 그리고 톡톡 튀는 이색 해결책까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소 문제는 "접었다 폈다"로 해결?

박채림(21·여)·이정환·백노아(21·여)씨는 버스정류소를 주목했다. 의성군의 버스 배차 간격은 기본 1시간. 버스정류소는 의자가 잘 설치돼 있는 등 시골에선 쉼터 같은 곳이다. 그런데 문제가 보였다. 무더위가 이어질 때 일부 주민들이 버스정류소가 아니라 인근 그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정류소의 문제. 경북 의성군

버스정류소의 문제. 경북 의성군

학생들이 손으로 그린 아이디어. 경북 의성군

학생들이 손으로 그린 아이디어. 경북 의성군

문제는 버스정류소의 구조 때문이었다. 여름이지만 온열의자가 설치된 곳이 있고, 아크릴 천장에 삼면이 꽉 막힌 승강장도 다수 있었다. 학생들은 리포트에 버스정류소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이미 지어진 버스정류소를 계절에 따라 뜯고, 새로 지을 순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접었다 폈다를 하자고 했다. 우선 의자는 정류소 뒤편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 평소에는 접어뒀다가 앉고 싶으면 펼쳐서 이용하자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시행 중인 '쿨링의자'에 대한 사례도 들었다. 기존 의자 위에 열전도율이 낮은 소재의 덮개를 덮었다가, 계절이 바뀌면 다시 접어 치우는 식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바람을 막는 아크릴 벽 대신 레일문 폴딩도어, 스크롤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 계절에 따라 응용하자고도 했다.

의성군의 한 버스정류소. 경북 의성군

의성군의 한 버스정류소. 경북 의성군

"삼겹살을 구워 드셨다고요? 위험해요"
이유경(23·여), 임서연(20·여), 오예은(21·여)씨는 '의성살이'를 하며 빈집 지붕을 유심히 봤다. 빈집 대부분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라는 점 때문이다.

석면 슬레이트는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물질이다. 학생들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철거 요구 등 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했더니 석면 슬레이트 지붕의 유해성,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일부 주민들은 "이전에 슬레이트를 불판 삼아 삼겹살도 구워 먹었는데도 괜찮았다. 굳이 철거할 필요성이 있느냐"고도 했다.

이유경(23·여), 임서연(20·여), 오예은(21·여)씨. 경북 의성군

이유경(23·여), 임서연(20·여), 오예은(21·여)씨. 경북 의성군

학생들은 스케치북에 석면의 유해성을 쉽게 표현한 그림을 그려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석면 유해성에 대해 알리고, 마을 자치위원회 안건으로 석면 철거 문제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 청년들과 가임 여성들이 하나둘 떠나는 지방소멸 위험 지역은 빈집이 계속 늘어나서다.

의성살이 대학생들이 낸 아이디어

의성살이 대학생들이 낸 아이디어

"버스 멈추기 전 벌떡 일어나지 마세요" 

안전과 직결한 버스 하차 문제를 꼬집은 학생들도 있다. 오지우, 김정원, 최송이(23·여)씨는 노인들이 버스 정차 전에 이상하게 급히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들은 "왜 버스 하차 시 서두르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알고 보니 노인들 사이에 빨리 내리려는 습관이 있어서였다. 1960년대 의성엔 인구 20만여명이 거주했다. 당시 버스는 만원. 그래서 제때 버스에서 내리지 못할까 봐 미리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창문으로 옷 보따리를 먼저 내리고 급하게 내릴 때도 있었다. 다른 시골도 과거엔 다 비슷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의 한 단면인 셈이다.

학생들이 솔류션으로 낸 버스 하차 신호등.경북 의성군

학생들이 솔류션으로 낸 버스 하차 신호등.경북 의성군

학생들은 '하차문 신호등'을 문제 해결 아이디어로 냈다. 일반 신호등과 같이 빨간색, 초록색으로 구성한 신호등을 버스 안에 설치, 신호등 색에 맞춰 하차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식이다. 버스 정차 후 하차 시간을 정하는 장치인 '하차문 타이머' 아이디어도 더했다.

학생들은 리포트에 의료용 스쿠터의 안전 문제도 다뤘다. 경북 의성군

학생들은 리포트에 의료용 스쿠터의 안전 문제도 다뤘다. 경북 의성군

이 밖에 리포트엔 노인들이 타고 다니는 의료용 스쿠터의 안전교육 부재 문제를 지적했고, 중·고교생과 도시 대학생들을 위한 보드게임 카페, 도시 청년들을 불러 모으는 막걸리 카페 등을 의성에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의성군은 리포트에 담긴 다양한 생활 속 문제와 개선 아이디어를 실제 반영키 위해 사업 계획을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0일엔 공유회까지 별도로 열었다.

의성군은 청년들의 톡톡 튀는 다양한 의견을 반긴다. 청년들이 북적거리고, 생동감 있는 지역으로 발전하고 싶어서다.

의성군은 2018년 말 현재 인구 5만2944명으로, 전국 228개 기초단체(시ㆍ군ㆍ구) 가운데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다. 군민 평균 연령은 56세.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8.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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