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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美 대화제안에 김정은 '핵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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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7일 작성한 북핵 동향 보고서. 지난 7월부터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앙포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7일 작성한 북핵 동향 보고서. 지난 7월부터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앙포토]

 북한이 지난달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작성한 북핵 동향 보고서를 통해 “지난 7월 초부터 북한의 영변에서 냉각수 배출 징후가 포착됐고, 이는 원자로 가동의 징후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5MW급 원자로를 재가동한 징후가 드러난 것은 2018년 12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IAEA에 따르면 북한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등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실험실을 이용하는 징후도 포착됐다. 특히 IAEA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북한이 최근 5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지속적으로 가동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은 앞서 1991년 IAEA에 “5MW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폐연료봉 재처리에는 총 5개월이 소요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이 지난 2~7월 5개월간 방사화학실험실을 가동했다는 것은 플루토늄 재처리 작업에 돌입했다는 정황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은 2016년 4월 5차 핵실험 당시에도 이에 앞서 약 5개월간 방사화학실험실을 가동하며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쳤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징후가 포착됐다. 2018년 12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사진은 2008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징후가 포착됐다. 2018년 12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사진은 2008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IAEA는 보고서를 통해 영변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영변 원자로 재가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인 공동관리를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국제기구다.

북한은 1986년부터 평안북도 영변의 5MW 원자로를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가동 20년만인 2007년엔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영변 시설에 대한 불능화에 나섰고, 2008년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하지만 이후 핵시설 신고 및 검증을 놓고 미국과의 갈등이 커지며 북한은 재차 영변 핵시설을 원상복구한 뒤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직접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의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조건으로 영변 지구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했다. 특히 당시 김 위원장은 전문가 입회하에 관련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영구 폐기'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더해 '플러스알파(+α)'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앞세워 수차례에 걸쳐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채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며 본격적인 북핵 협상 전 '몸값 올리기'에 나섰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앞세워 수차례에 걸쳐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채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며 본격적인 북핵 협상 전 '몸값 올리기'에 나섰다. [연합뉴스]

북한이 2년 6개월 만에 재차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 나선 것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본격적인 핵 협상에 앞서 레버리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뉴욕 채널’로 불리는 북한의 유엔대표부에 수차례에 걸쳐 대화를 제안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역시 지난 6월과 지난 13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등에서 ‘조건없는 대화’를 강조하며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이같은 대화 제안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채 돌연 핵시설을 재가동한 것은 ‘조건없는 대화’를 거부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는 의미의 강대강 압박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간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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