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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관전자에 고통 주는 법무부의 '타임 슬립'

중앙일보

입력

강성국 법무부 차관과 뒤에서 우산을 들고 있는 법무부 직원(왼쪽 사진), 지난해 2월 소년원생의 세배를 받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 [중앙포토]

강성국 법무부 차관과 뒤에서 우산을 들고 있는 법무부 직원(왼쪽 사진), 지난해 2월 소년원생의 세배를 받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 [중앙포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무부의 시대착오적 행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 뒤에서 법무부 직원이 비에 젖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공무원의 가족이 이 장면을 보면 어떤 심정이 들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와 아무 인연이 없는 제가 봐도 화가 나는데 가족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이 일에 대한 책임론이 분분합니다. 강 차관 앞에 있던 촬영 기자들이 그 직원이 보이지 않게 몸을 낮춰 달라고 해서 그리됐다고 법무부는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법무부 직원이 해당 직원의 상의 소매 끝에 손을 대며 몸을 낮추라는 지시를 한 것이 영상으로 확인됐습니다. 법무부 직원이 젖은 땅에 무릎을 꿇고 벌서듯이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을 기자들이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다면 잘못한 것입니다. 브리핑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가 일어서도록 해야 했습니다. 기자협회에서 현장 기자들에게 잘못이 있었는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아프가니스탄인 입국 관련 브리핑을 충북 진천군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미라클 작전’의 대미를 법무부가 장식하고 싶은 욕심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머물게 될 인재개발원이 뒤로 보이는 곳에서 ‘생색용’ 행사를 기획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민망함과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그 사진을 보며 지난해 설날의 ‘소년원생 세배'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당시 차관(현 검찰총장)이 소년원에서 원생들의 세배를 받는 모습, 기억나시죠? 죄지어서 벌 받는 청소년들은 시키는 대로 높은 사람들에게 절을 해야 합니까? 당시 법무부 영상에는 ‘엄마 장관, 아빠 차관’이라는 자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소년원생에게 부모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엄마와 아빠를 자처합니까? 절한 소년원생에게 세뱃돈이라며 문화상품권을 줬다길래 추 전 장관이 자기 지갑을 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추 전 장관이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검찰 인사와 관련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마찰에 대해 국회의원이 질문하자 사극에서나 들을 수 있는 ‘명을 거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서 보던 모습들이 유독 법무부 고위직에서 빈번히 나타납니다. 박정희 정부나 전두환 정부로의 ‘타임 슬립(time slip)’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법무부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인권 보호 또는 신장’인데, 자꾸 역주행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 전 장관은 2019년 6월에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 관련 브리핑에 앞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겠다’고 공지했습니다. 기자들이 브리핑을 보이콧했고, 박 전 장관은 브리핑룸에 홀로 서서 자료를 읽었습니다. ‘질문 거부 회견’은 법무부에선 흔한 일입니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를 알리는 회견을 하면서 질문은 받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지난 9일에 있었던 8ㆍ15 가석방 브리핑에서 박범계 장관은 원고만 읽고 사라졌습니다.

조금 전에 법무부 홈페이지에 가 보니 첫 화면에 사진 다섯 장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 다섯 장 모두에 박범계 장관이 등장합니다. 법무부 홍보(공보) 책임자인 박현주 대변인은 대학생 시절에 권위주의 정부 타파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홈페이지 구성이 민주정부 법무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던 자가 여성 두 명을 살해했다는 게 어제 드러났습니다. 국민은 강도강간으로 15년을 복역한(범죄 이력은 14회) 이가 왜 법무부의 ‘주요 관찰 대상 일대일 감시’라는 정책의 바깥에 놓여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참고로, 일대일 감시를 받고 있는 조두순은 12년간 복역했습니다. 8600명이 넘는 전자발찌 착용자들이 언제 어떻게 범죄를 일으킬지 몰라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어제 법무부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장관의 홍보 과욕을 지적하는 중앙일보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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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박범계의 홍보 과욕, 인형장관·우산차관 만들었다

 법무부의 ‘무릎 꿇고 받들어 우산’ 의전(儀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를 맞이하며 정부의 인권 옹호를 과시하려다가 되레 하급 직원 인권을 천시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지난 26, 27일 법무부 장·차관은 연거푸 인천공항 입국장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아 홍보에 나섰다. 정작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 작전을 수행한 외교부와 국방부 등 ‘미라클 작전’ 성공 주역은 한 명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지난 27일 오후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강성국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및 가족 초기 정착 지원 계획’을 브리핑하던 중 사고가 터졌다.

양복 차림의 법무부 직원이 10분가량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받쳐 든 모습이 공개됐다. 중앙일보가 정부 KTV와 각 방송사의 당시 현장 영상을 종합한 결과 상황은 다소 미묘했다. 아프간인 조력자와 가족을 나눠 태운 버스 13대가 이날 낮 12시를 지나 인재개발원에 속속 도착했다. 강 차관은 낮 12시40분쯤 정문 앞 도로에 설치된 연단 앞에서 브리핑을 준비했다. 브리핑 전까지는 해당 직원이 연단 오른쪽(강 차관 왼쪽)에 쪼그려 앉아 우산을 들었다. 브리핑 시작 무렵 강 차관 뒤로 가서 쪼그린 채 우산을 받쳤다.

과잉 의전 논란에 대해 법무부는 “당시 현장에 사진·영상 기자들의 (직원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취재 협조 요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영상에도 브리핑 시작 순간 “더 앉으세요”라는 현장 취재진 목소리가 나온다. 그 순간 강 차관도 직원을 돌아봤다. 또 다른 법무부 관계자가 “어깨 아래로 유지해. 안 나오게”라며 해당 직원 소매를 당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직원은 빗물 젖은 아스팔트에 두 무릎을 꿇고 브리핑 내내 우산을 들었다. 강 차관은 결국 사과했다.

여당 3선 의원 출신인 박범계 장관의 과한 자기 홍보 욕심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다. 박 장관은 지난 26일 오후 정부 대표로 인천공항에 나가 인형을 들고 조력자 가족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법무부 일부 관계자는 “박 장관이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맞이하며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것을 촬영하지 않으면 공항 행사 전체에 대한 취재를 불허할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해 취재진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박 장관은 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전임 장관들과 비교해 너무 자주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아니냐”는 뒷말을 들었다. 국민과 소통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 박범계의 주가를 높이려는 ‘쇼통’(보여주기식 소통)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박 장관도 지난 2월 24일 “나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수사팀에 대한 합동 감찰 결과 발표 때는 “알맹이 없이 기존의 무혐의 판단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브리핑인데 왜 굳이 법무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발표 때도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법무부에서 세 차례 근무했던 김종민(사법연수원 21기)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법무부에서 검사들을 다 쫓아내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로 채운 결과”라며 “행사가 법무부 차원의 기획인지, 청와대 총감독하에 했는지 확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법무부와 검찰의 뿌리 깊은 과잉 의전 문화가 이번 일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민중·정유진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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