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버린 친모에 연금 1%도 못줘" 순직소방관 언니의 분노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05:00

지난 2019년 1월 순직한 고 강한얼 소방관(당시 32세·오른쪽)이 생전에 친언니 강화현(38)씨와 함께 찍은 모습. 사진 유족

지난 2019년 1월 순직한 고 강한얼 소방관(당시 32세·오른쪽)이 생전에 친언니 강화현(38)씨와 함께 찍은 모습. 사진 유족

인사혁신처 "친모 유족연금 15%로 감액"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1억원 가까운 유족급여를 타간 친모에 대해 인사혁신처가 친부와 반반씩 지급하던 유족연금 지급 비율을 15%로 감액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친부와 언니는 "엄마 자격이 없는 친모에게 유족급여를 1%도 줄 수 없다"며 "재심 절차를 밟겠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29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인사혁신처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공무상 순직이 인정된 고(故) 강한얼(당시 32세) 소방관의 친부가 낸 '양육 책임 불이행 순직유족급여 제한 청구'에 대해 친부의 재해유족연금을 당초 50%에서 85%로 늘리고, 친모는 50%에서 15%로 줄였다. 이번 결정은 지난 6월 일명 '공무원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공무원재해보상법·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시행 후 처음 적용된 사례다.

'공무원 구하라법'은 강 소방관 사건을 계기로 추진됐으며,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서영교(더불어민주당·서울 중랑구 갑) 의원이 대표 발의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녀의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부모에게는 유족급여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급여 제한 신청을 하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가 제한 여부를 결정한다.

고 강한얼 소방관. 사진 언니 강화현씨

고 강한얼 소방관. 사진 언니 강화현씨

'전북판 구하라' 소방관 부녀 "엄마자격 없다" 

앞서 강 소방관의 친부(64)와 언니 강화현(38)씨는 법 시행 첫날인 지난 6월 23일 공무원연금공단에 '재해유족 급여 제한 신청서'를 냈다. "친모는 강 소방관 자매가 각각 생후 20개월, 56개월일 때 이혼한 후 성년이 될 때까지 두 딸을 양육한 사실이 없어 매달 나오는 순직유족연금의 지급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이 골자다.

인사혁신처가 강 소방관 부녀의 요구를 일부 받아준 셈인데, 이들은 왜 반발하는 걸까.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던 강 소방관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사혁신처는 같은 해 11월 "순직이 인정된다"며 친부 측이 청구한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비슷한 시기 법적 상속인인 친모(66)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한 뒤 유족보상금과 퇴직금 등으로 친부와 비슷한 금액인 8000만원가량을 지급했다. 지난해 1월부터 지급 중인 월 91만원의 유족연금도 본인 사망 때까지 받도록 돼 있다.

고 강한얼 소방관. 사진 유족

고 강한얼 소방관. 사진 유족

언니 "법원이 기각한 자료 인정…재심 청구"   

이에 분노한 친부 측은 같은 달 "작은딸의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친모를 상대로 두 딸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983년 1월 결혼한 이들 부부는 1988년 3월 협의 이혼했다. 당시 각각 5살, 2살이던 두 딸은 친부가 30년 넘게 노점상을 하며 키웠다.

법원은 친부의 손을 들어줬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는 지난해 6월 "양육비는 부모 공동 책임"이라며 친모는 친부에게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친모 측은 재판 후 항소를 포기하고 4000만원을 지급한 뒤 나머지 3700만원은 5년에 걸쳐 월 61만원씩 주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5월 31일 중앙일보 보도('소방관 딸 순직하자···32년 만에 나타난 생모는 1억 타갔다')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심의회는 유족 측 양 당사자의 진술과 제출 자료를 토대로 결정했다"며 "동거 기간과 경제적 지원 정도, 부모로서의 보호 의무 위반 여부 등을 기준으로 양육 책임 불이행 여부를 심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사혁신처는 해당 분야 전문가를 별도로 위촉했으며, 심의회에서 공정하고 신중한 검토를 통해 독립적으로 심의·결정한 결과를 따랐다"고 강조했다.

인사혁신처가 친부 측에 보낸 '재해유족급여 제한 결정서'. 사진 유족

인사혁신처가 친부 측에 보낸 '재해유족급여 제한 결정서'. 사진 유족

'공무원 구하라법' 첫 사례…서영교 "입법 취지 안맞아"

인사혁신처는 "법 시행 시점인 지난 6월 이후 친모가 받은 유족급여에 대해서는 환수 조치할 예정"이라며 "심의회 결과에 유족이 불복할 경우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인사혁신처가 친부 측에 보낸 '재해유족급여 제한 결정서'에는 친모의 순직유족급여 제한 사유가 담겼다. ①이혼 후 고인이 성년이 될 때까지 친부가 주거를 같이 하며 단독으로 양육한 점 ②양육비 소송을 통해 친부가 친모로부터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받게 된 점 ③친모의 동거·양육 기간이 21개월인 점 ④이혼 후 친모가 자녀 명의의 청약부금 통장을 개설하고 일정 금액(370만원)을 납입한 점 ⑤고인이 어릴 때 친모가 찾아가서 만났던 사실이 확인된 점 등이다.

이를 두고 강 소방관의 언니 강화현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육비 소송 당시 재판부도 양육 근거로 인정하지 않은 자료를 인사혁신처가 조목조목 인정해 친모의 권리를 15%나 만들어줬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판부는 친모가 청약부금을 넣고도 알리지 않아 강씨 자매가 성인이 된 후 휴면 계좌로 찾아낸 점, 강 소방관이 어릴 때 정식 면접 교섭권 요청 없이 잠깐 데려가 사진을 찍은 점 등을 들어 친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강씨 설명이다.

강씨는 "공무원연금공단 쪽에 물어 보니 친모의 유족연금 지급 비율이 1%라도 인정되면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몫까지 친모가 가져가게 된다고 들었다"며 "재심에서 1%라도 친모 권리를 인정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영교 의원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태어난 지 21개월 된 딸을 두고 떠난 생모에게 연금 지급을 15%나 인정하는 것은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공무원 구하라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결정으로 재고돼야 한다"고 했다.

2019년 순직한 고 강한얼(당시 32세) 소방관의 언니 강화현(38)씨가 지난해 8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종언 변호사,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 강화현씨, '구하라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연합뉴스

2019년 순직한 고 강한얼(당시 32세) 소방관의 언니 강화현(38)씨가 지난해 8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종언 변호사,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 강화현씨, '구하라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연합뉴스

인사처 "친모, 21개월 양육·청약 등 감안"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친부 측에서 보면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친모가 (강 소방관을) 21개월 동안 양육한 사실과 청약부금을 넣고 초등학교 때 찾아간 부분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혼 후 32년간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양육 의지가 아예 없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친부 사망시 친부 몫 100%가 친모에게 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 지분은 없어지고, 친모는 본인 몫만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고인이 배우자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친부모까지만 (유족급여가) 승계되고, 형제·자매나 새어머니에게는 승계권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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