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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썩은 가지 없앤다며 나무를 불태우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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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아무 말도…. 다음엔 천주교 신도들을 잡으러 왔다. 나야 천주교도가 아니니 아무 말도…. 드디어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러나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치의 폭정에 저항했던 마틴 니멜러 목사가 했던 비유다. 권력의 폭정이 배양한 심리적 불안과 억압으로 표현과 언론의 의지가 사라지면 생길 일이다.

언론은 권력의 대척점이다. 고삐 풀린 권력의  탐욕과 횡포를 비판해야 한다. 권력 감시(watchdog)가 으뜸의 책무다. 그러니 권력은 늘 눈엣가시 언론을 닭 모가지 비틀 듯 질식시키고 싶다. “정말 우려할 것은 끊임없이 권력을 축적하려는 비밀스러운 정부며 그 어둠과 침묵 속에서 민주주의는 죽어 간다”는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말 그대로다. 언론은 때론 ‘망명정부’의 외로운 투쟁도 감내해야 할 존재다.

권력 ‘언론징벌법’ 강행 입법은
표현·언론 자유를 사전 억압해
언론의 방종도 자성해야겠지만
인권·민주주의 보루는 수호돼야

역사는 그러나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단 한시라도, 어디에서라도, 누구에라도 억압돼서는 안 된다는 인간 권리의 진보(進步)를 인류의 도정(道程)에 각인시켜 왔다. 반(反)진보적, 반(反)인권적 범죄로 기록될 민주당 권력의 ‘대한민국 언론 징벌법’(보도의 손해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5배로 징벌하고 기사 열람까지 차단 청구한다는 ‘언론중재법’)을 진보라 자부해 온 민주당의 강경파들이 밀어붙이는 현 상황은 역사적 모순일 뿐이다.

성재호(왼쪽부터) 방송기자연협회장, 김동훈 기자협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이 2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에서 '언론현업 5단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성재호(왼쪽부터) 방송기자연협회장, 김동훈 기자협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이 2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에서 '언론현업 5단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1931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니어 대 미네소타주’ 판결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선구적 성찰이었다. ‘저속한 신문’은 골라 문닫게 한다는 주정부의 ‘공중도덕보호법’이 위헌 심판 대상이었다. 무차별 황색 폭로로 정간을 당한 니어라는 인물의 청구였다. 주정부와 전통적 언론들도 저널리즘의 품격을 떨어뜨린 ‘온동네 밉상’ 니어를 비난·외면한다. “가짜 뉴스 척결하자”는 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그런데 미국시민권연맹이 “위헌”이란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나쁜 권력에 숱한 고통을 겪었던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던 단체였다. 니어는 평소 유대인·흑인에 대한 악의적 보도를 일삼아 왔지만….

연맹의 성명이다. “언론의 규제는 그간 명예훼손법이나 형사법상의 사후 처벌이었다”며 “그러나 공중도덕보호법은 검열과 같은 효과인 언론의 사전 억제에다 수정헌법 제1조를 침해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abridging)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미국신문발행인협회도 “이 법은 헌법 채택 이후 시도된 미국민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며 “민주주의 체제를 본질적으로 위협한다”고 선언했다.

대법관 9명 중 4대4의 상황. 캐스팅 보트인 휴즈 대법원장이 수정헌법 초안을 쓴 제임스 매디슨을 인용하며 판결한다.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며 이는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경험을 통해 체득한 언론 자유의 이치는 일부 썩은 가지들을 마구 잘라 없애는 것보다는 나무 전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점점 복잡해지고 부정부패 가능성이 커져 민주사회의 첨병인 용감한 언론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해진다”며 “일부 무책임·부도덕한 언론인들에 의해 자유가 남용된다고 해서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사전에 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결론냈다. 5대4 위헌(『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 장호순 역).

판결의 또 다른 의미는 언론 자유의 억압을 이 지점에서 막아 미국 전역이 ‘침묵의 공화국’으로 가도록 방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 강경파의 ‘언론징벌법’을 세계신문협회(WAN) 등 전세계 언론들이 우려, 주목하는 이유다.

취재·보도의 본질적 한계 역시 솔직히 공유돼야 옳다. 수사·계좌추적·압수수색권 등의 팩트 추적 수단이 없는 건 둘째다. 기자들의 경험, 지식, 공적 취재 대상에 대한 접촉·관찰 시간의 한계, 고정관념, 짧은 시간과 글로 복잡한 세상사를 압축하는 어려움, 권력의 집요한 은폐 등 사실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손이 닿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곳. 사람들 마음 밖에 있는 세계를 탐구·보도해야 하는 어려움들”(월터 리프만 『여론』)이 현실이다. 진실(truth)은 힘들어도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며(truthful),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검증하는 겸손은 늘 모든 언론의 자율적 책무여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의 오류들을 일반화해 보도의 의지, 표현·언론의 자유, 나아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보를 억누르는 악법은 철회가 옳다. 대안을 숙의할 공론화조차 없이 시간에 굶주린 군사작전식이니 “퇴임 후 문재인 보호법” 오명까지 받는게 아닌가. 민주당엔 송영길 대표 등 표현의 자유, 인권을 지키려 숱한 고초를 겪은 인사가 다수다. 박병석 의장(탈당 중), 이낙연 전 총리 등 후배의 존경을 받던 언론인 출신도 있다. 그분들의 양심에 묻고 싶다, “썩은 가지 없앤다며 온 나무 불태우려는 게 옳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