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40대 중반 기술창업 많아…혁신엔 나이 제한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00:36

업데이트 2021.08.3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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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벤처기업가에 대한 커다란 착각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오늘 아침에도 1000만 명이 넘는 40대, 50대가 일터로 나간다. 일하는 곳의 모습이 다르니 출근 시간도, 옷차림새도 다르겠지만, 요즘 들어 발걸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위기가 아니더라도 정년까지 바라보기 어려운 직장생활의 미래에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더해지면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저커버그는 19살에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하고, 브린과 페이지도 25살에 구글 제국을 창업했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먼나라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젊은이가 세운 벤처가 수십억 아니 수조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듣노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냐는 생각에 발걸음은 더 천근만근이다.

혁신기술은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

새로운 기술과 상품 혹은 조 단위의 유니콘 벤처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해 뿌리 깊은 착각이 있다. 천재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거나 깜짝 놀랄 만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착각이다. 모두 착시다. 혁신적 기술과 상품은 예외 없이 조금 다르지만 확실하지 않은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그 분야 사람들 모두 ‘나도 생각했었는데’라고 할만한 아이템이다. 그 아이디어를 들고 조금씩 개선하고, 응용분야를 바꿔가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끝에 좋은 환경조건을 만나면 마침내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지원은 또 다른 차별
애플·구글 성공 사례 일반화 금물
경험 축적과 전문성 제고가 핵심
남들과 다른 문제의식 키워가야

남다른 끼가 있는 20대라야 혁신적인 벤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나이에 대한 착각도 있다. 모두 애플·페이스북·구글 등 특이하게 성공한 사례가 미디어를 통해 너무 일반화되면서 생긴 착시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사례가 더 많다.

KT가 관악구와 서울대·KB금융그룹 등과 함께 조성하고 있는 벤처 창업 클러스터 ‘관악S밸리’에 지난달 8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디지코 KT 오픈랩’이 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KT가 관악구와 서울대·KB금융그룹 등과 함께 조성하고 있는 벤처 창업 클러스터 ‘관악S밸리’에 지난달 8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디지코 KT 오픈랩’이 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혁신적 창업가의 나이에 대한 착시를 바로잡아줄 좋은 통계가 있다. MIT의 아조레이와 대니얼 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14년까지 창업한 미국 벤처 270만개의 설립 당시 창업자 평균 나이는 42세였다. 그 가운데 0.1%급에 속하는 고성장 벤처 창업자의 창업 당시 평균 나이는 45세였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조사결과가 있다. 올해 초 산업연구원이 스핀오프 창업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이가 40세, 실제 창업 당시의 나이는 43세였다.

20대 성공한 창업가들의 이야기는 분명 특이하고,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20대가 지나면 창업은 꿈꾸지 말아야 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 반대 경우를 이야기하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어윈 제이콥스가 업계의 룰을 바꾼 퀄컴을 세웠을 때 나이는 52세였다. 허핑턴포스트라는 새로운 저널리즘을 만들어낸 아리아나 허핑턴도 55세에 창업을 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을 창업했을 때의 나이가 45세였고, 박현주 회장이 월급 생활을 청산하고 미래에셋을 시작할 때도 같은 나이였다.

청년 실업 대책과 연계 말아야

미국 기업 창업자 연령대 분포

미국 기업 창업자 연령대 분포

성공한 기업가의 창업 당시 나이가 40대 중반이라는 조사 결과는 국가적인 벤처정책의 방향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무엇보다 벤처 지원정책에서 나이 제한을 없애야 한다. 지금도 일부 벤처 지원 프로그램에서는 29세나 39세 등 나름대로 청년의 나이를 정한 다음 그 이하의 사람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기업을 육성하자는 관점에서 볼 때 나이 제한은 또 다른 차별이다. 청년과 장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20대든 50대든 전문가로서 치열하게 준비해온 사람이라면 모든 지원을 다 해야 하고,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남 따라 장에 가는 사람이라면 세금을 아껴야 한다. 특히 청년 벤처정책이 일자리 정책과 연계되는 것은 극히 주의해야 한다. 청년실업의 대책으로서 성과를 과도하게 기대하게 되면, 창업 숫자 늘리기식 정책 성과에 얽매이는 왜곡된 행위가 만연한다. 청년실업 숫자를 줄이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위험한 창업으로 등을 떠미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벤처 육성 정책의 가장 큰 기대효과는 한국 산업에 고착된 대기업 중심의 기존 산업구조와 몇 개의 주력상품으로 굳어진 산업 포트폴리오를 혁신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첨단 고기술 창업이 많이 생길 때 기대할 수 있다. 첨단분야에서는 관련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창업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준비된 고기술 창업기업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고, 고용도 더 많이 창출한다. 게다가 준비된 기술벤처는 미래 창업가들이 될 청년들의 훌륭한 훈련캠프 역할도 한다. 이런 축적된 창업의 분위기를 진작하기 위해서 대학이나 연구소 등 기술집단으로부터 먼저 기술창업의 씨앗이 돋아나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스톡옵션 제도 제대로 활용해야

이런 기술벤처들에 우수한 청년들이 쏟아져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톡옵션 제도를 제대로 작동하게 해서 안정적인 대기업보다 더 많은 혜택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벤처케피탈(CVC)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기술벤처들은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큰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의 유보자금이 성장 가능성에 투자함으로써 벤처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30대와 40대, 나아가 50대에 시작해서 성공한 창업자의 이야기는 오늘도 출근길에 오른 수많은 직장인에게 분명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늦깎이 창업이라는 시점이 아니라 창업하기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를 더 눈여겨봐야 한다. 무엇보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면서 전문가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축산물 온라인 플랫폼으로 고기 유통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벤처회사의 창업자도 육류를 취급하는 유통회사에서 20년간 온갖 업무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중요한 것은 그 기간 같은 일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창업자들도 모두 기존 직장에서 전문성을 쌓았고, 관련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찾고 준비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한 가지 있다. 2015년 발표된 미국 근로자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처음 업무용 컴퓨터를 배정받았을 때 기본으로 깔려있던 익스플로러가 아니라 크롬처럼 다른 인터넷 검색기를 의도적으로 다운받아 사용하는 직원들의 경우 재직기간이 13% 더 길었고, 결근율이 19% 더 낮았으며, 업무성과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무엇이든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업무를 해보고자 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더 성과가 좋다는 뜻이다. 인터넷 검색기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확장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영역과 과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탐색하는 직장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문제의식은 다른 경험을 하게 하고, 그것들이 축적되어 어느 계기가 되면 성공한 창업가의 길로 이어지게 된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기업가정신

‘나는 창업을 할 만큼 간이 크지 않다’는 사람들에게는 기업가 정신의 대가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의 조언이 딱이다. 어느 날 강연 중에 젊은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훌륭한 기업가들을 보면 실패의 위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뛰어드는 용기가 부러운데, 그런 기업가 정신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드러커의 대답은 의외였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탁월한 기업가들을 만나보았지만, 일반인보다 더 소심하고 위험 회피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탐색하고 준비하더라는 설명이다. 망해도 본전이고 인생은 어차피 로또라는 생각으로 사표부터 던진 간 큰 창업가들은 일찍 사라져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혁신적인 기업으로 비즈니스의 새로운 법칙을 세운 창업가들은 그 사후적인 결과가 놀라운 것일 뿐 준비 과정은 더 신중하고, 치열했다.

탁월한 창업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미래의 창업가들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매일 조금씩 다른 목표를 세우고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10년을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지,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과 방향으로 일하는지에 따라 오늘 하루가 창업가로 가는 스케일업의 시간이 될지, 퇴적의 시간이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참고로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나도 몇 년 전에 작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마음속으로 창업하고, 매일같이 조금씩 갈고 닦는 중이다.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도 오늘부터 마음속으로 창업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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