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통증의 교감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00:24

지면보기

종합 27면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불완전 존재인 사람은 언제나 만고의 질병에 노출돼 있다.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불안이듯 예기치 않았던 병마가 찾아들면 걱정은 이내 공포로 확장된다. 질병 앞에서 초연한 인간은 찾기 힘들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프다는 것은 일상을 지배하며 불안정한 심신 상태를 잉태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에 건강이 우선인 이유다.

예상치 못한 부상에 직면해 며칠을 고생했다. 의사이기에 평상시 건강에 나름 신경 쓰며 살아간다고 자만했지만 설익은 오만에 대한 서늘한 대가였다. 살다 보면 제 한 몸 간수하기조차 쉽지 않은 문제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질병과 의연하게 맞서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았다. 통증으로부터의 구속은 의사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병실에 누우니 환자 심정 알듯
환자 고통 달래는 공감 한마디
의사와 환자 사이에 통역 필요?
좋은 의사는 마음부터 나눠야

평상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도덕경』 처럼 반복되는 레토릭 같은 건강수칙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통증의 당사자가 된 이후 무기력해졌다. 일상의 자유를 구속하는 우환은 이렇듯 한여름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이성적 인지보다 직접적 경험으로 체득한 이후에야 건강의 가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니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참으로 우매하고 처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삽화

삽화

병실에 누워있으니 밀물처럼 찾아든 외로움과 시시각각 밀려드는 통증으로 일상은 포획당했다. 분주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의 자화상이었다. 방역수칙으로 면회마저 금지된 병실에서 주말을 보내는 동안 통증은 내내 육신을 지독스럽게 지배했다. 순간순간 참기 힘든 통증은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들었다.

병실을 찾아온 담당 의사는 진통제를 놓아 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많이 아프실 거예요. 내일은 한결 수월해지실 거예요”라며 위로를 건넸다. 시한이 있는 통증이든 아니든 그의 언어는 미더웠다. 통증의 교감이었다. 그랬다. 타자의 통증에 대한 교감이 그 얼마나 위대한 인간에 대한 배려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무릇 모든 인간은 자신의 통증에 민감하고 타인의 통증엔 둔감하다. 좋은 의사의 자격은 통증의 교감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최애 소설가로도 잘 알려진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단편 ‘질병 통역사’는 병원에서 인도 소수민족의 언어인 구자라트어를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통역해 주는 일을 맡은 카하시의 이야기다. 인간의 삶 속에서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언어뿐만이 아닌 마음의 아픔과 죄책감이라는 것을 잘 그려 낸 역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과거와 달리 내원하는 외국인 환자의 수는 급감했지만 외국인 환자의 증상을 의사에게 정확히 통역해 주는 사람이 절실할 때가 있다. 의미 전달의 단순 통역이 아닌 통증의 감정이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긴 의사와 환자가 같은 한국인일지라도 각자의 감정과 고통이 서로에게 낯선 외국어일 때도 있으니 가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프고 병들면 마음을 나누는 언어가 필요하다. 통증의 가장 유효한 처방이다. 스멀스멀 일몰을 따라가는 나이가 되면 전해 듣는 비보와 조문은 일상화된다. 그럴 때마다 습기처럼 번져오는 건강에 대한 염려는 순간의 자각일 뿐, 우리는 몸이 내는 경고의 목소리를 늘상 귀담아듣지 않는다. 늘 허투루, 아픈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는 역경이라 애써 자위한다. 그러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질병의 역습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내 후회한다. 건강에 대한 불성실함을 몸이 뼈저리게 가르쳐 주고 나서야 평화로웠던 나날들이 그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감한다.

백세시대, 건강이 전제되지 않는 수명 연장은 참으로 대책 없는 축복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날, 병원에 그리 누워보니 아프지 말고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균열을 대비하는 바른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 아픈 것이 낫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크게 아파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로서의 존재에 대한 온전한 성찰의 시간을 통증이 허락해 주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일, 쉽지는 않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고 미덥게 마주해야 참된 관계가 형성된다. 치료할 의사와 아픈 환자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통증의 교감, 의사의 절대가치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