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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3년 전 한국 온 예멘인 “아직도 테러리스트로 보이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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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예멘인 친구 A(28)다. 그에게 아프간 지인이 있냐고 묻자 “예멘은 아프간과 멀고, 한국에도 아는 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급하게 인터뷰 대상을 찾던 나의 무지를 반성했다.

2018년 수백 명의 예멘인들이 제주에 왔을 때 취재를 위해 닷새간 그곳에 머물렀다. 현장을 누비다 A를 만났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그는 붙임성이 좋았다. “단체 숙소에 데려가달라”는 부탁을 들어줬다. 해질녘 도착한 낡은 빌라엔 예멘인 7명이 있었다. 2명은 어선을 타러 나갔다고 했다. 요리사 출신 M, 양계농장을 운영한 U가 식사를 준비했다. 그사이 예멘 전통복을 입은 O는 기도를 했다. 한국인의 무슬림 편견 때문에 내 앞에서 기도하기가 불편하다고 했지만, 곧 가족사진을 보여줄 정도로 경계를 풀었다. ‘아시드’라 불린 치킨스프, 카레와 비슷한 ‘이담’, 밀가루 전병을 함께 먹었다.

2018년 10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서 서류를 접수하는 모습. 484명 중 단 2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뉴스1]

2018년 10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에서 서류를 접수하는 모습. 484명 중 단 2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뉴스1]

정돈 안 된 숙소, 부엌에 놓인 식칼을 보고 이들 중 테러리스트가 있으면 어쩌나 좀 긴장도 됐다. 식칼은 원래 부엌에 있어야 하는 물건인데도 그랬다. 낯선 나라에서 온, 의혹의 눈초리를 받던 타인들이었으니까. 이날 이들에게 예멘 내전과 가족사를 들었다. 지어냈다고 하기엔 일관적, 구체적이었다. 예멘에도 사계절이 있고 수코트라섬이 제주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것도 배웠다. 당시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중 단 2명(0.41%)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A를 포함해 412명은 인도적 체류자가 됐다. 단 2명에도 제주출입국청에는 “국민 안전은 고려 안 하냐. 인권 침해다”란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굳이 따지면, 인권 침해를 당한 건 예멘인이었다. A는 식당 일을 1주일 만에 그만뒀었다. 사장의 욕설과 인격 모독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A를 잊고 지냈다. 지난해 봄 법조기자 시절, 교대역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고 서로를 알아봤다. 근처 피자집에서 일하던 A와 이때부터 연락을 주고받는다. 최근에는 돈을 더 벌기 위해 경기도의 공장으로 이직한 그는 번역이나 아랍어 강사 일을 하고 싶어한다.

아프간 난민 390명이 지난주 한국에 들어왔다. 정부는 이들을 ‘특별기여자’로 부른다. 아프간 사람들의 입국 모습을 보다가 이보다 앞서 들어온 예멘인들, 앞으로 박해를 피해 한국을 찾을 얼굴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내전 위험에 돌아갈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는 A의 말이 떠올랐다. “3년 전 우리를 테러리스트, 범죄자로 봤다. 지금도 그런 시선이 있지만,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편견과 혐오가 있지만 그게 옳지 않다는 걸 다들 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국에 고맙지만,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