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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내 반대 커지는데, 지도부가 언론법 폭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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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가 반민주적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며 만든 포스터.

한국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가 반민주적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며 만든 포스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9일 국내외 언론단체들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본회의 강행 처리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이날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께서 주신 책무를 다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의 ‘시간끌기’ ‘발목잡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반드시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언론중재법 관련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협상 결렬 후 여야 원내대표는 각각 “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야당 입장을 충분히 설명드렸다”(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고 했다.

여야는 30일 오후 4시 박 의장 주재의 원내대표 회동을 다시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후 4시로 예정돼 있던 본회의 개의는 오후 5시로 미뤘지만, 합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상정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기로 한 만큼 개정안의 8월 처리는 일단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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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오는 31일 자정까지인 이번 8월 임시국회 회기와 함께 자동 종료된다. 그렇게 되면 국회법에 따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9월 1일 개회하는 정기국회로 넘어가며, 민주당은 곧바로 표결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민주당이 공언해 온 ‘8월 내 처리’가 실패하더라도 9월 1일 처리는 가능한 것이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공개된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날(30일) 처리가 어려우면 9월 초에라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내 강경론을 주도하는 이는 송 대표 본인이라고 한다.

송영길·이준석 오늘밤 생방송 맞짱토론…르몽드 “과도한 법제정, 민주당 신뢰 위협”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27일 전후로 민주당 의원 여럿에게 언론중재법 속전속결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했지만 송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송 대표는 27일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의견은 제시할 수 있지만 당이 (청와대에) 귀속된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송 대표는 이달 중순 윤호중 원내대표, 김용민 최고위원 등 강경파들이 전면에 나설 때는 뒷짐을 지는 듯한 스탠스였다. 지난달 26일 야당에 7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는 원 구성 재협상 합의 때문에 강성 지지층에게 비난을 받은 윤 원내대표가 “공정한 언론 생태계 조성 입법 등에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했을 때 송 대표는 “각 상임위에서 내실 있게 해야 한다”며 원칙론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송 대표는 돌연 여름휴가(8월 둘째 주) 직후 태도를 바꿔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의 선봉에 섰다. 송 대표가 지난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의원은 허위사실 유포로 유죄를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는데 이걸 두고 ‘국회의원 재갈물리기 법’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강공 노선을 선언했다. 이후 송 대표는 “취재원 보호는 재판 과정에서 비공개, 비밀리에 판사 앞에 증인을 불러서 충분히 해명 가능한 절차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25일 최고위), “미투 보도는 해야 하지만 일방적 진술만 보도되면 피해자 입장에서 사회적 평판이 무너지는 피해가 발생한다”(26일 방송 인터뷰) 등의 주장을 이어갔다.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 움직임을 비판하는 내용의 마이니치신문 29일자 사설. 이영희 기자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 움직임을 비판하는 내용의 마이니치신문 29일자 사설. 이영희 기자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개정안 폐지를 요구한 데 대해 “그건 뭣도 모르니까”라고 비난했다가 한국기자협회로부터 “국내외 주요 언론단체를 무시하는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송 대표가 급변침한 배경엔 5·2 전당대회 직후부터 송 대표에게 검찰·언론 대응강경 노선을 요구한 김용민 최고위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송 대표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내가 발언자로 나가겠다”고 할 정도로 법안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송 대표가 취임 초 약속했던 “쇄신·협치”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진영 내 존재감 부각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송 대표를 두고 당내에선 “돌아오긴 늦었다. 말릴 수 없다”(서울 재선)는 말도 나온다.

송 대표는 30일 오후 10시 언론중재법을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생방송 TV토론에 나선다. 당내에서 ‘개정안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김승원 의원, 문체위 소속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과 MBC ‘100분 토론’에 함께 출연해 여야가 2대2로 맞붙는 형식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숙의·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3선 의원 출신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28일 페이스북에 “(언론중재법) 민주당 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리면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는 글을 올렸다.

해외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지난 27일자 신문 3면에서 민주당의 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조명하며 “과도한 법 제정으로 다수당인 민주당의 신뢰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르몽드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면 최대 징역 5년의 처벌을 받도록 한 법이 역사학자 등의 반대 속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일본 유력 일간지 마이니치신문은 29일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움직임에 대해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구제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언론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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