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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박노해 『걷는 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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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걷는 독서

걷는 독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박노해 『걷는 독서』

발을 다쳐 한동안 걷지 못했다. 걸음이 멈추니 몸이 멈추고, 마음과 정신이 다 멈췄다. 어떤 땐 세상마저 멈추는 듯했다.

박노해 시인은 스스로를  ‘늘 길을 찾고, 길을 걷고, 걷는 독서를 하는 이’라 칭한다. 책 읽는 순례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걷는 독서를 할 때면 나는 두 세상 사이의 유랑자로 또 다른 세계를 걸어가고 있었다”고 그는 썼다. 젊은 날 무기수의 몸으로 한 평 감옥에 갇혀서도 ‘걷는 독서’는 계속됐다. “걷는 독서를 하는 내 정신의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

책은 지난 30여 년 ‘걷는 독서’ 중 떠오른 짧은 생각들의 모음집이다. 일종의 기도문이자 시집이자 독자에게 쓴 편지글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힘을 사랑하는 자와/ 사랑의 힘을 가진 자.” “꽃이 지는 건 꽃의 완주이듯/ 죽음은 삶의 완성일 뿐./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삶의 반대는 다 살지 못함이다.” “타인을 속이는 순간, 나는 안다,/ 나 자신을 먼저 속였다는 것을.” “정치인에게 권력을 빼보라./ 부자에게서 돈을 빼보라./ 유명인에게 인기를 빼보라./ 빼버리고 남은 것이 바로 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최악의 실수다.”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 함부로 살아가지 않기를./ 가난과 불운이 내 마음까지/ 흐리게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