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박노해 『걷는 독서』
발을 다쳐 한동안 걷지 못했다. 걸음이 멈추니 몸이 멈추고, 마음과 정신이 다 멈췄다. 어떤 땐 세상마저 멈추는 듯했다.
박노해 시인은 스스로를 ‘늘 길을 찾고, 길을 걷고, 걷는 독서를 하는 이’라 칭한다. 책 읽는 순례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걷는 독서를 할 때면 나는 두 세상 사이의 유랑자로 또 다른 세계를 걸어가고 있었다”고 그는 썼다. 젊은 날 무기수의 몸으로 한 평 감옥에 갇혀서도 ‘걷는 독서’는 계속됐다. “걷는 독서를 하는 내 정신의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
책은 지난 30여 년 ‘걷는 독서’ 중 떠오른 짧은 생각들의 모음집이다. 일종의 기도문이자 시집이자 독자에게 쓴 편지글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힘을 사랑하는 자와/ 사랑의 힘을 가진 자.” “꽃이 지는 건 꽃의 완주이듯/ 죽음은 삶의 완성일 뿐./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삶의 반대는 다 살지 못함이다.” “타인을 속이는 순간, 나는 안다,/ 나 자신을 먼저 속였다는 것을.” “정치인에게 권력을 빼보라./ 부자에게서 돈을 빼보라./ 유명인에게 인기를 빼보라./ 빼버리고 남은 것이 바로 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최악의 실수다.”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 함부로 살아가지 않기를./ 가난과 불운이 내 마음까지/ 흐리게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