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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선물 포장에 동대문 포목상 다 뒤졌다…황제의전 끝판왕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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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27일 오후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는 동안 한 직원이 뒤쪽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뉴시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27일 오후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는 동안 한 직원이 뒤쪽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뉴시스]

이상재 산업2팀장의 픽: 과잉 의전 

지난 27일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지원방안 브리핑 과정에서 ‘과잉 의전’ 논란으로 강성국 법무부 차관과 법무부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비를 흠뻑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씌워주는 공무원 모습이 보도되면서다.

이날 법무부는 “사진·영상 촬영 협조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해명하면서 강 차관 명의의 사과문을 내놨지만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권 주자들의 비판 목소리에 이어 야당은 사퇴 압박으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27일 브리핑 모습(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평양 보통강에서 현지시찰을 하는 모습. 북한에서도 안 하는 과잉 의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27일 브리핑 모습(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평양 보통강에서 현지시찰을 하는 모습. 북한에서도 안 하는 과잉 의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많이 바뀌었다” vs “아직도 과잉”

한국은 ‘의전 강국’이다. 예절을 중시하는 문화에다 수직적 권위의식, 충성 경쟁과 채용·승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정치계나 군대, 공무원, 학계에서 의전을 따지는 문화가 짙다. 군대엔 “작전 실패는 용서받아도 의전 실패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단체장과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가 참석해 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단체장과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가 참석해 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청와대사진기자단]

세대교체와 실용주의 문화 확산 등으로 요즘이야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재계도 의전에 예민하기는 매한가지다. 특히나 오너경영인 또는 오너 가족을 챙기는 의전은 여전히 중요한 업무다.

예컨대 라이벌 그룹 간 신경전을 벌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굵직한 행사 때 자리싸움이 대표적이다. 서로 헤드테이블에 앉거나 경쟁사보다 앞자리에 배치되기를 원해서다. 실무진에겐 참석자 명단 파악이나 옆자리에 앉을 사람이 ‘격’에 맞는지 등을 따지는 것도 주요 체크 리스트다.

사모님 한 마디가 협력업체로 ‘불똥’

회사는 물론 ‘집안 관련’ 이슈도 챙겨야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A그룹 회장의 부인은 아들의 생일 선물로 한정판 수입자동차를 준비했다.

문제는 ‘포장’이었다. 집안에서 파티를 열어 근사하게 아들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고 싶었는데, ‘서프라이즈’를 위해 자동차를 가려줄 고급스러운 커튼이 필요했다. 그룹 내 광고기획 계열사가 먼저 호출됐다. 그 계열사는 결국 평소 거래하던 ‘을 업체’에 SOS(?)를 쳤다.

이 협력업체 직원들은 서울 동대문시장 안에 있는 포목상을 뒤져서 하룻밤 만에 고급 커튼 소재를 구해왔다. 이어 차량을 개봉할 수 있도록 금줄과 금수술을 달았다. 오너 가족을 위해 ‘미니 신차 발표회’를 열어준 셈이다. 이 와중에도 사모님의 ‘취향 변화’에 대비해 예비용 커튼을 따로 구하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신흥 대기업의 총수나 일부 2·3세 경영인도 의전에 민감하다. 대개는 자존심 세우기용이다. 몸집이 커졌으니, 또는 더 무거운 직책을 맡았으니 그만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소개 자료에는 대개 ‘소탈한 성격으로 격식과 의전보다는 실질과 효율을 우선시한다’고 쓰여 있다.

최근엔 코로나19로 대면 행사가 많지 않지만, B그룹의 회장은 외부 행사에 나갈 때 ‘입장 순서’에 신경을 썼다. 되도록이면 행사 시작이 임박해 도착해 유력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섞이기를 바라서다. 회사 관계자는 “실제로 도착 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호텔(행사장) 주변에서 자동차를 돌린 적도 있다”며 “늦게 나타나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해서 아닐까 싶다”고 귀띔했다.

지난 2017년 1월 5일 오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수행원들이 탄 차량 대열(오른쪽)이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건설인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정부서울청사로 복귀하면서 7분가량 교통 신호를 통제하면서 과잉 의전 논란을 빚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017년 1월 5일 오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수행원들이 탄 차량 대열(오른쪽)이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건설인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정부서울청사로 복귀하면서 7분가량 교통 신호를 통제하면서 과잉 의전 논란을 빚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019년 육군이 우오현SM그룹 회장을 육군 30사단 명예사단장 위촉 1주년 기념식을 열었다가 “과도하다”는 눈총을 받은 건 유명한 얘기다. 당시 우 회장은 육군 전투복과 별 2개가 달린 베레모를 착용하고 군 열병식에 참석해 논란을 빚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역시 과도한 의전 관행이 도화선이 됐다.

“의전 강하면 소통 시스템 무너져”

이 같은 불필요하고 과도한 의전은 기업문화를 훼손시키고, 나아가서는 성과를 떨어뜨린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비서팀 출신의 한 전문경영인은 “의전이 강하면 조직의 소통 구조가 막힐 수밖에 없다”며 “이러면 서열주의와 형식 문화가 남는다. 요즘 같이 기술과 트렌드가 급변하는 시대엔 좋은 인재를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전을 받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윗사람이 단호하게 끊어야 의전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의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발행한 『의전의 민낯』에서 “사소한 의전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의 때마다 주요 인물 앞에는 생수와 커피, 다과가 놓인다. 구시대 풍경이다. 개개인 앞에 놓는 예의범절, 이제는 끊자. 선진국의 회의를 가보라. 한쪽 코너나 테이블 한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모아놓고 참석자가 스스로 해결한다. 제발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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