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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영감 찾는 아마추어…반복의 힘 모르시나 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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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0)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중적으로 연습한 횟수를 따져보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골프, 스키, 수영처럼 취미활동을 배울 때 그렇다. [사진 Pixabay]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중적으로 연습한 횟수를 따져보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골프, 스키, 수영처럼 취미활동을 배울 때 그렇다. [사진 Pixabay]

3년 전에 체코 프라하에서 아내와 ‘해외 한 달 살기’를 할 때였다. 낯선 곳의 신기한 풍물과 소감을 간간이 사회관계망(SNS)에 올렸는데 당시 중앙일보 정경민 국장이 ‘더 오래’ 필진을 제안했다. 정기 연재가 갖는 부담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런 긴장감이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에 수락하고, 칼럼 명을 ‘원초적 놀기 본능’으로 정했다. 은퇴 후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평온하고 당당하고 의미 있게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50대 남성 은퇴자의 눈에 보이는 ‘낮의 세상’을 스케치하듯 한편씩 써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쓸 수 있을까 조심스러웠지만, 할 말은 많아지고 들어줄 사람은 줄어드는 시절로 접어드는 때라 그런지 이야깃거리는 얼마든지 생겼다.

시간은 흘렀고, 은퇴 후 연착륙이라는 주제와 유력 매체의 힘 덕분에 나의 영역은 조금씩 확장되어갔다. 더 고마운 것은 그 글쓰기를 통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은 항상 써왔지만 3년 정도 집중해 정기적으로 쓰다 보니 주변에서는 글이 좋아졌다고 평가하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그렇게 오늘로 100번째 글을 쓴다.

‘100’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지만, 우리는 반복을 통해 그런 일을 익히고 완성해간다. 반복, 이건 참 중요한 것 같다. 가끔 “두 번 설명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 하는 까칠한 사람도 있지만, 한 번 듣고 잊어버리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러나 다시 들으면 기억이 강화되고, 세 번째 들으면 바보가 아닌 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생활 속의 웬만한 일은 100번 반복하면 어느 정도 완성되고, 그때부터는 무한 반복이 이어져 그게 곧 삶이 되곤 한다. 티브이에서 ‘생활의 달인’을 보고 있자면 반복처럼 확실한 비법이 또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데 먹고 사는 일이 아닌 것에 집중해 100번을 반복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뭘 배울 때는 특히 그렇다. 웬만한 일은 100번 반복하면 완성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재주’가 되어 있을 텐데, 많이 한 것 같아도 세어보면 의외로 몇 번 안 될 때가 많다. 우리 주변에는 당구를 잘 치는 사람도 있고 기타를 잘 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전부 투자의 결과다. 당구에 빠져 본 사람은 수업시간에 당구장에 가 있거나 수업 중에도 칠판을 당구대 삼아 교수의 머리 이쪽저쪽을 쳐가며 스리쿠션 길을 만들어보았을 것이다. 기타 치는 사람이라면 밤새도록 기타를 붙잡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코드 쉬운 곡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불타는 의욕으로 달려든 게 100번 넘을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100번을 하고도 입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그 정도 어려운 과업이면 이런 식으로 언급할 게 아니다). 그만큼 100은 반복에 있어 의미 있는 숫자이고, 결코 만만한 숫자도 아니다. 단순반복작업을 할 때 10번까지는 재미를 느끼다가 50번 째에는 몸을 비비 꼬고 100번이 되면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는가.

나는 골프를 잘 못 친다. 게을러서 레슨을 띄엄띄엄 받다가 높은 분과의 라운딩이 잡혀 두어 달 바짝 배웠더니 겨우 100타 정도의 실력이 되었는데, 진지하게 연습한 것은 불과 마흔 번 정도였다. 아마 집중적으로 100 번을 채웠다면 훨씬 나은 실력으로 남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수영도 그렇다. 절대 물에 뜨지 못할 거로 생각했지만 1년 정도 열심히 강습받았더니 접영까지 하게 되었는데 수영장에 간 횟수는 겨우 100번 남짓했고, 스키를 배울 때도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노력’에는 얼마나 많은 과장과 엄살이 섞여 있었던가.

삶은 끊임없는 반복의 힘으로 구축되고 지탱된다. 일상생활, 주변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수많은 반복을 통해 틀이 잡히고 믿음이 생기지만, 특히 무한 반복을 통해 자기 삶의 정체성을 규명한 이들을 보면 존경심을 갖게 된다. [사진 박헌정]

삶은 끊임없는 반복의 힘으로 구축되고 지탱된다. 일상생활, 주변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수많은 반복을 통해 틀이 잡히고 믿음이 생기지만, 특히 무한 반복을 통해 자기 삶의 정체성을 규명한 이들을 보면 존경심을 갖게 된다. [사진 박헌정]

한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유행했다. 1만 시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계산해보자. 주말 빼고, 하루 여섯 시간씩 뭔가를 하면 한 달에 120시간, 1년에 1440시간…. 7년 걸린다. 직장처럼 출근해 여덟 시간씩 해나가면 5년으로 단축된다.

사실 생업을 지켜온 사회인이라면 자기 분야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5년 지나면 대리가 되어 부서 일 도맡아 하고 후배도 가르치고, 회사에 흐르는 기류도 다 느끼고, 업계 상황까지 훤히 꿰뚫지 않는가. 그러니 1만 시간에 전문가가 된다는 게 쉽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전문가가 되는 방법을 가장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론 같다.

생각을 확장해 보면 삶의 모든 부분이 반복의 힘으로 구축되고 지탱되는 것 같다. 생업도, 공부도 반복이고, 나와 외부의 신뢰관계도 반복에서 비롯된다. 내가 지각해도 눈치 주지 않는 것은 수많은 날 동안 보여준 시간 개념 덕분이고, 나를 바라보는 우리 강아지의 애틋한 눈빛은 수천 번 반복해 밥 주고 쓰다듬어준 결과다. 아무리 평범한 일도 어떤 의미와 지향점을 두고 꾸준히 반복하면 결국 시간은 선물을 준다.

생활의 힘은 반복에서 나온다.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소설 『애브리맨』에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라는 말이 나온다. 자기에게 배우는 수많은 아마추어 입문자의 호들갑과 수다에 넌덜머리가 난 화가의 말이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의 100번째 글을 자축하고,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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