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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에서 온 최재형 후손…할아버지 조국서 ‘고향의 영웅’ 기렸다

중앙일보

입력

김 아르투르는 지난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봉안식에서 참석했다. 사진 김 아트루트 제공

김 아르투르는 지난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봉안식에서 참석했다. 사진 김 아트루트 제공

지난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선 이른 시간부터 포격 소리가 들렸다. ‘봉오동 전투’를 이끈 홍범도 장군(1868~1943)을 기리기 위한 예포 소리였다. 이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 3묘역에서는 서거 78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는 안장식이 열렸다. 안장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 외에도 독립유공자·고려인도 다수 참석했다. 생에 처음으로 정장으로 입은 김 아르투르(25)도 그중 하나였다. 이날 묵념을 마친 김 아르투르는 “역사적 영웅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러시아어와 서툰 한국어가 섞인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한국어 서툴지만, 독립영웅은 안다

김 아르투르(맨 오른쪽)이 카자흐스탄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김 아르투르 제공

김 아르투르(맨 오른쪽)이 카자흐스탄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김 아르투르 제공

김 아르투르는 독립유공자의 피가 흐르는 고려인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평가받는 최재형 선생(1860~1920)의 후손이다. 최재형 선생의 곤손(昆孫·6대손)인 그는 1996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태어났다. 한국말은 잘하지 못한지만 홍범도 장군과 최재형 선생의 활약상은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 한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 할머니로부터 ‘왕 할아버지가 한인들을 위해 학교도 세우고 독립투사단을 조직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살던 동네에 홍범도 장군의 무덤이 있던 터라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불린 홍 장군의 이야기도 자주 접했다고 한다. 여기에 할머니로부터 듣는 이국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소년은 한국을 동경하게 됐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지만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려인 모인 충북 진천에 터 잡아 

김 아르투르(왼쪽에서 두번째)가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김 아르투르 제공

김 아르투르(왼쪽에서 두번째)가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김 아르투르 제공

2013년 김 아르투르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 있는 카자흐스탄 건축토목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로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경비로 일했던 고려극장이 있는 도시다. 대학에서 지리지도학을 전공한 김 아르투르는 측지학자로 건설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한국에 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2년 뒤 2019년 11월 그는 방문 취업 비자(H2)를 받아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았다. 삼촌과 함께 고려인이 모여 사는 충북 진천에 터를 잡았다. 서툰 한국어에 처음엔 힘들었지만, 고려인 150여명이 몸담은 식품회사 면사랑에서 일하면서 점차 한국생활에 적응해갔다. 계량팀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상은 고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이었다고 한다.

한국에 조금씩 뿌리를 내려가던 그에게 이번 달 초 뜻밖의 연락이 왔다. 홍범도 장군 봉안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봉안식을 앞두고 국내에 사는 카자흐스탄 출신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 나섰다. 대한고려인협회와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협회 자손 재단의 도움을 받아 충북 진천에 사는 김 아르투르를 찾아 후보로 올렸다. 당시 김 아르투르는 최재형 기념사업회에서도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만난 ‘고향의 영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발 빠르게 나선 협회와 회사의 도움으로 김 아르투르는 독립유공자의 후손 자격으로 ‘고향의 영웅’을 기리는 봉안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박 타티아나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협회 자손재단 회장은 “카자흐에 후손이 없는 홍범도 장군을 고국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는데 결실을 봐 다행”이라며 “그 행사에 최재형 선생의 후손이 참석하게 돼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어엿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인정받은 김 아르투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면서도 “소망이 하나 있다”고 했다. 고향의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와서 같이 사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는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진 않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곳이잖아요. 저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가족들과 이곳에서 오래오래 지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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