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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삐지고 욕도 좀 하는 AI, 그래야 진짜 사람 같죠.”

중앙일보

입력 2021.08.29 09:00

업데이트 2021.08.30 09:25

“인공지능(AI)이 정답만 말해야 할까요? 기계처럼? 삐지기도 하고, 까먹기도 하고, 친한 친구처럼 함께 울고 웃고 욕도 할 수 있어야죠.”

한우진(49)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AI) 센터장은 ‘사람 같은 AI’가 엔터테인먼트에선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화상으로 가진 인터뷰에서다. 스마일게이트는 순이용자 100만명의 MMORPG ‘로스트 아크’, 80여개국에서 10억명이 즐기는 1인칭 슈팅게임(FPS) ‘크로스파이어’ 등을 개발한 게임사. 최근엔 게임 IP(지식재산)를 드라마·영화 제작에 활용하는 등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런 스마일게이트가 지난해 8월 AI 센터를 세웠다. 연구·개발(R&D)의 방향은 사람 같은(human-like) AI를 만드는 것. 엔씨소프트·넷마블 등 경쟁사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R&D 방향을 초반부터 분명히 했다.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원작으로 한 중국 드라마 '천월화선'. 누적 19억뷰를 기록했다. 사진 스마일게이트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원작으로 한 중국 드라마 '천월화선'. 누적 19억뷰를 기록했다. 사진 스마일게이트

내 기분도, 고민도 아는 AI 친구

한우진 센터장은 기존 AI에 ‘공감 능력’이 빠져 있다고 했다. “정해진 대본을 읊거나 날씨를 알려주는 AI 말고, 상대의 기분을 알아채고 고민을 기억해주는 AI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캐릭터에 지성과 감성이라는 지능을 부여해, 스마일게이트의 다양한 엔터 사업에 활용하겠다는 설명이다.

스마일게이트 AI 센터도 출범후 인간의 감성과 기억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게임의 어떤 부분에서 플레이어가 재미, 감동, 슬픔을 느끼는지 분석”하고 “인간 뇌에 있는 장·단기 기억 공간을 AI에 심는 작업을 진행”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이런 연구를 통해 AI가 대화 상대의 표정·목소리·어휘 등을 단서로 상대가 화났는지 즐거운지 감정을 파악하도록 개발하려 한다. 또 AI가 과거 대화를 떠올리며 ‘너 저번엔 이랬는데 요즘은 어때’ 하며 안부도 묻게 한다는 것. 여기엔 얼굴 인식, 음성 인식, 언어 해석 등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AI 센터의 한우진 센터장. 사진 스마일게이트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AI 센터의 한우진 센터장. 사진 스마일게이트

한 센터장은 “사람인지 AI인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를 높이는 게 목표”라면서 “친구들마다 성격도 매력도 다르듯 친절하고 상냥한 AI, ‘흥’하며 삐지고 툴툴대는 AI,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쿨한 AI 등 여러 AI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AI 캐릭터는 게임·운동·드라마 등 스마일게이트의 엔터 사업에서 유의미한 사업모델을 만드는 데 쓰일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알파 세대(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AI 카테고리를 개발하고자 한다.

◇ 한우진 센터장은
· KAIST 음성언어연구 박사
· 삼성전자 (MPEG 비디오 압축 표준안 한국인 최초 에디터)
· 가천대학교 교수 (딥러닝 기반 영상 처리 연구)
· NHN AI Lab (이미지/동영상/신경망 네트워크 AI)
· 넷마블 운영/QA 자회사 IGS CTO (CS/QA 자동화, 빅데이터 감성 분석 R&D)
· 스마일게이트 AI 센터장

“영화·드라마, AI에 감성 교육할 데이터”

스마일게이트가 3년째 운영 중인 버추얼 AI 유튜버 세아. 사진 스마일게이트

스마일게이트가 3년째 운영 중인 버추얼 AI 유튜버 세아. 사진 스마일게이트

사람 같은 AI를 가르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한 센터장은 “정답 알려주는 사람 없어도, AI 혼자 상상하며 고민할 수 있어야 하고(비지도 학습), 인간과의 대화에서 배우기도 해야 한다(강화 학습)”고 말했다.

가장 큰 난관은 데이터 확보다. 특정 분야의 문제 해결이 목표라면, AI에게 그 분야 데이터를 대량 학습시키면 된다. 그러나 AI가 사람 같아지려면,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7살 아이 수준으로 학습시켜야” 한다. 스마일게이트는 현재 위키피디아나 자연어 학습용 공개 데이터 등을 활용해 AI에 상식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AI 기술기업들이 활용하는 텍스트 데이터다.

관건은 인간의 감정이 레이블링(기록)된 이미지와 동영상, 음성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한 센터장은 “가장 좋은 학습 자료는 영화나 드라마”라며 “뭔가를 보고 들은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AI가 배울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AI 학습에 필요한 양질 데이터를 얻는 과정엔 인간의 노동이 필수다. 대사와 반응을 문장으로 표시하는 일은 일일이 사람이 한다.

한 센터장은 “사람 같은 AI는 개발 속도는 더디지만, 완성도가 30~50%만 돼도 서비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자율주행이나 금융 챗봇과 달리, 사람 같은 AI는 실수하고 어수룩해도 그게 재미 요소가 되고 서비스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마일게이트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AI의 전망을 밝게 보는 이유다.

AI 다양화, 차별·혐오 해법될까

스마일게이트의 인기 액션 MMORPG 로스트아크. 사진 스마일게이트

스마일게이트의 인기 액션 MMORPG 로스트아크. 사진 스마일게이트

그러나 AI 학계에선 ‘사람 같은 AI’가 인간의 편견과 혐오를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화형 AI 서비스에 대해 AI 윤리나 개발 완성도를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올해초 국내에서도 ‘친구 같은 AI’를 표방한 챗봇 ‘이루다’가 여성·장애인 혐오 논란 끝에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사람 같은 AI를 만들겠단 스마일게이트는 이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한 센터장은 “사람이 데이터를 정제하는 이상 인간의 편견을 완벽히 걸러낼 기술적 해법은 없다”며 “그래서 우리는 성격과 도덕적 기준이 제각각인 수백, 수천 개의 AI를 만들려고 한다”고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어 “가벼운 비속어를 허용하는 AI, 도덕성이 월등하게 높은 학습용 AI 등 서비스별 차이를 두고, 각 AI가 사회적 규범에 맞는지 판단하는 모델도 만들어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엔 집단지성을 활용한다. 센터가 올해 하반기 계획 중인 온라인 경연대회 ‘휴릭(HuLiC·Human-Like Competition)’이 그 예다. 스마일게이트가 자체 설계한 지표로 대화형 AI의 언어 능력이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지, 사회·윤리적 기준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시험해보는 일종의 해커톤이다. 이 대회에서 모인 데이터와 평가 결과는 휴릭 사이트에 모두 공개된다. 대화형 AI의 인간 유사도와 윤리성을 업계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그는 끝으로 “위법을 저지른 사람을 사회가 교정하듯, 미래에는 문제아 AI를 위한 처벌·교화 시스템 등도 마련될 것”이라며 “AI 윤리는 우리 사회가 AI와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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