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퉁' 루이비통 가방을 굳이 '짝퉁'으로 만드는 MZ세대,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8.29 09:00

업데이트 2021.08.29 13:17

유행이 지난 명품 가방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리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유행이 지난 명품 가방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리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애물단지였던 장롱 속 명품백을 작은 크로스백(한쪽 어깨에 메는 가방)과 지갑으로 바꾸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직장인 전모(34)씨는 최근 큰맘 먹고 10년 전 즐겨 매던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오래된 물건의 디자인 바꾸기) 전문 가죽 공방에 맡겼다. 유행이 지나고 낡은 터라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린다 한들 20만~30만원 받기도 어려웠고, 집에서 공간만 차지했기 때문이다. 리폼에 든 비용은 30만원. 전씨는 “요즘 명품 지갑 하나만 50만원이 넘는데, 당장 착용할 수 있는 신상 가방과 지갑이 생겨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명품 리폼 수요 4~5배 증가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해 작은 크로스백과 카드지갑, 동전지갑으로 바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해 작은 크로스백과 카드지갑, 동전지갑으로 바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수백만 원짜리 명품백을 과감하게 잘라 작은 가방과 지갑·열쇠고리 등으로 바꾸는 리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명품 리폼업체 레더몬스터에 따르면, 월평균 의뢰 건수는 2019년과 비교해 4~5배 증가했다. 소셜네트워크(SNS)에서 리폼한 명품백의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리폼한 가방과 지갑은 엄밀히 말해 '짝퉁'(모조품)이다. 명품 매장에서 사후서비스(A/S)를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리폼을 제품 ‘업그레이드’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친환경·재활용·커스터마이징(개인화) 등의 가치가 더해졌다는 생각에서다. 쓸모없는 ‘진퉁’보다 쓸모있는 ‘짝퉁’이 낫다는 얘기다.

철 지난 가방 리폼해 '신상' 지갑

10~15년 전에 유행했던 큰 가방을 최신 디자인으로 바꾼 '인증샷'이 SNS에서 인기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10~15년 전에 유행했던 큰 가방을 최신 디자인으로 바꾼 '인증샷'이 SNS에서 인기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리폼 의뢰가 가장 많은 명품 브랜드는 루이비통과 구찌다.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제품이 많아 자르고 붙이기 쉽고, 독특한 브랜드 패턴 덕분에 새 가방에 응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특히 10~15년 전 유행했던 큼직한 쇼퍼백을 작은 가방으로 리폼해달라는 문의가 가장 많다. 손바닥만 한 ‘마이크로백’ 또는 스마트폰만 겨우 들어가는 ‘폰홀더백’이 유행을 타면서다. 가방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피혁은 지갑으로 살뜰하게 되살려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돈다지만, 빅백(큰 가방) 시즌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보관하는 건 공간, 체력, 비용 낭비”라며 “가죽 가방은 쓰지 않더라도 매년 클리너로 닦고 버클·체인 부분이 녹슬지 않게 관리해야 해 손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명품 시장 성장에 '사후 관리업'도 호황   

전문가들은 명품 시장이 성숙하면서 유행 지난 제품을 고쳐 쓰는 리폼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전문가들은 명품 시장이 성숙하면서 유행 지난 제품을 고쳐 쓰는 리폼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전문가들은 국내에 해외 명품 브랜드 붐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으면서 낡고 철 지난 패션 제품이 급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고거래, 리세일(재판매), 수선, 리폼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낡았다고 거금을 주고 산 가방을 내다 버리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에 명품을 소비하는 인구가 늘면서 안 쓰는 명품을 되팔거나, 오래 쓸 수 있도록 관리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산업군이 생기고 있다”며 “명품 브랜드 못지않게 앞으로 이러한 명품 관련 업체도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가처분소득은 적지만 브랜드에 대한 소유 욕구가 강하다”며 “보다 저렴하게 명품을 갖기 위해 철 지난 제품도 고쳐서 쓰려는 수요도 그만큼 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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