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언론에 재갈 물리겠다는 與

"DJ라면 대로했을 것"…언론법이 소환하는 '전두환 보도지침’

중앙일보

입력 2021.08.29 08:00

업데이트 2021.08.29 19:33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내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중재법 강행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뉴스1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내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중재법 강행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뉴스1

“정말 기막히게 생각하는 것은 그 언론자유를 억압하고 유신헌법을 배포하고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그 세력의 후예들이 마치 자기들이 언론자유를 가장 위한다는 듯이 떠든단 말이에요.(중략) 또 언론자유를 가장 위한다고 했던 세력들도 정권을 잡고 나면 자기들 위주로 또 모든 걸 판단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이부영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서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민주당이 강행한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언론자유 침해”라며 국민의힘이 막고 있는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이날 그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10.26 사태) 직후 발령된 계엄 포고령 1호 중 5항(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행위를 금한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980년 확정받은 징역 3년형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79년 11월 긴급조치 9호 및 계엄 해제와 언론 자유 보장을 주장하는 성명서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를 기자들에게 돌린 게 41년 전 유죄가 된 혐의였다. 당시 그는 1974년 10월 유신에 맞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했다가 해직된 상태였다. 지금은 이 선언문의 정신에 따라 설립된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이사장이다.

재단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강행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호소했다. 회견문엔 “이 법안이 1987년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의 터널을 뚫고 얻어진 언론자유에 심각한 제약과 위축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는 우려가 담겼다.

‘취재원 보호’ 붕괴 우려

1986년 9월 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 자료를 공개하는 모습.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85년 10월에서 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월간 《말》지에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폭로는 이듬해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1986년 9월 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 자료를 공개하는 모습.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85년 10월에서 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월간 《말》지에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폭로는 이듬해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당엔 1980년대 전두환 정부와 맞선 걸 정치 이력의 뿌리로 여기는 이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그런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보고 ‘땡전뉴스’와 ‘보도지침’으로 상징되는 전두환 정부를 떠올리는 건 이 전 의원만이 아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단체들도 지난달 29일 “위헌적 법 개정을 중단하라”는 성명에서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정치권력이 언론의 기사 편집과 표현을 일일이 사전 검열하던 보도지침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왜 ‘보도지침’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일까.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로 재산 또는 인격권을 침해한 언론사나 기자에게 손해 산정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이 법안의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건 ‘고의·중과실 추정’(30조의2 2항)이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ㆍ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 허위ㆍ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ㆍ시각자료(사진ㆍ삽화ㆍ영상 등)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이 나열된 조항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조작보도’ 라는 개념도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보복’‘본질적 내용’‘왜곡’등은 불명확해 법률 개념으론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재판에서 판사가 이 범주에 든다고 판단하면 기자나 언론사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배상을 피할 길이 없다. 현실적으로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밝히는 길은 취재원의 신상을 공개해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외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억대의 배상판결이 일반화되면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언론사의 구상권 청구도 느는 게 당연한 현상”이라며 “결국 취재원 보호가 무너지고 취재와 보도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기소됐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지난 25일 기자들에게 “이제 의원들은 기자들하고 말 못한다. 고의·중과실 없음을 입증하라고 하면 기자들은 (재판에서) 의원들 이름을 댈 테고 그러면 의원들이 뭐하러 기자들과 얘기하겠냐”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2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언론현업단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서 "과연 허위·조작 보도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민주당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신들에 불리한 내용이 보도되면 '이건 가짜뉴스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2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언론현업단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서 "과연 허위·조작 보도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민주당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신들에 불리한 내용이 보도되면 '이건 가짜뉴스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전두환도 알았던 '취재원 보호'의 의미

‘취재원 보호’(취재원 비닉권)는 언론 자유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영역이다.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검열과 언론사 경영 통제의 근거로 삼으려 만들었다 1987년 폐지된 ‘언론기본법’에도 ‘언론인은 공표사항의 제보자 등의 신원이나 공표내용의 기초가 된 사실에 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8조 1항)는 내용이 담겼을 정도다.

‘정윤회 문건’‘성완종 리스트’ 등 사건에서 수사·재판 과정의 취재원 비닉권 침해 논란이 일던 2015년엔 민주당도 ‘누구든지 언론의 자유와 직업윤리에 반하여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3조의2)는 ‘취재원 보호법’을 추진했다. 기자의 증언거부권 등을 규정한 이 법률을 추진할 당시 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DJ·盧 때 갈등과 본질 달라”

1998년 8월 20일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여성 언론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998년 8월 20일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여성 언론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한 민주당 보좌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알았다면 크게 화를 냈을 법안”이라며 “아마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대 민주당 정부도 레거시 미디어들과 적잖은 갈등을 겪었지만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직접 압박하는 정책을 구사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DJ는 2001년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로 언론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그해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告示) 부활을 발표했을 때 야당에선 “주요 언론사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목요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라는 반발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이 “언론에 불량 상품이 많다”(2007년 1월)고 말한 지 넉 달 만에 기자실 통폐합을 추진해 일부 부처가 기자실 문에 대못질을 했다. 당시에도 전국언론노조는 “밀실 행정 권장을 공정한 취재환경 조성으로 호도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취재와 보도에 대한 지속적 위축 효과를 기대한 시도는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부처의 정보공개 활성화 등 행정 투명도를 높이려는 노력하는 등 보완적 조치도 병행했다.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파리 순방을 마치고 돌아가던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이 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 간다"고 파병 중인 자이툰 부대 방문계획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공동취재단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파리 순방을 마치고 돌아가던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이 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 간다"고 파병 중인 자이툰 부대 방문계획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공동취재단

“언론 자유 없는 세상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던 DJ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11월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원외지구당 위원장 오찬을 주재하면서 “국민의 90%가 언론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지 알고 있다. 나는 언론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각종 신문·방송 행사에서 “언론 개혁의 제1차적 과제는 언론 자유다”(2007년 방송의날), “정부가 권력을 가지고 언론개혁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2003년 신문의날)라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대선 당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 상태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언론과 충돌했지만 내용적으로 자유주의를 심대하게 위배하지는 않았다”면서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은 견제와 균형, 개인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헌법적 보장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비자유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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