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살 연하 살해한 30대女, 흉기 손잡이에 화장지 감았다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살인 사건 이미지. 연합뉴스

살인 사건 이미지. 연합뉴스

전주지법, 살인 혐의 30대 무기징역 선고 

전북 전주의 한 원룸에서 16살 연하 애인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30대 여성은 법정에서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고, 평소 공황장애 등을 앓았다"며 이른바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흉기가 미끄러지지 않게 손잡이를 화장지로 감싼 뒤 심장 부위와 목 등을 정확하게 찔렀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주지법 형사11부(부장 강동원)는 지난 25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38·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6월 6일 전주시 한 원룸에서 남자 친구 B씨(22)를 흉기로 34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다. A씨는 이날 낮 12시16분쯤 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B씨는 온몸 곳곳이 흉기에 찔려 이미 숨진 상태였다. 도대체 두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의 1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뉴스1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뉴스1

"전화번호 삭제·카톡 차단…배신감" 

29일 전주지법 등에 따르면 유흥업소 종사자인 A씨는 지난해 8월 B씨를 처음 만났다. 그해 11월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A씨는 지난 5월 30일 B씨 원룸에서 그가 전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하고 크게 다퉜다. 이튿날 두 사람은 화해했고, 함께 여수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된 지난 6월 6일 파국을 맞았다. A씨는 B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이날 오전 11시45분쯤 B씨 원룸을 찾았다.

방문 당시 B씨는 술에 취해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평소 '○○ 누나'라고 저장돼 있던 B씨 휴대전화 화면에는 A씨 번호만 떴다. 이를 본 A씨는 B씨가 자신의 이름을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삭제했다고 생각했다.

A씨는 다시 카톡으로 영상 통화를 시도했지만, 카톡에서도 B씨가 자신을 차단한 것을 확인하고 분노가 폭발했다. A씨는 주방에 있던 흉기를 가져와 손잡이에 화장지를 감은 뒤 잠든 남자 친구 몸 위에 올라타 흉기로 가슴을 찔렀다. 이에 놀란 B씨가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지자 다시 가슴·목·등 부위를 33차례 더 찔렀다.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공황장애" 주장…재판부 "정신 명료"

A씨는 재판 내내 "범행 당시 정신 질환이 있는 데다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7월 병원에서 공황장애와 우울에피소드 등의 진단을 받고, 지난 1월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 진료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당시 흉기 손잡이 부분을 화장지로 감싼 다음 B씨의 가슴과 목 부위 등을 정확하게 찔러 살해한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A씨가 사건 발생 약 3시간이 지난 후부터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범행 경위와 내용 등을 상세하게 진술한 점 ▶범행 전후로 지인들과 범행 관련 메시지를 다수 주고받은 점 ▶범행 당시 순간적으로 흥분하긴 했으나 정신 상태가 명료했던 점 등을 반박 근거로 댔다.

"범행 동기 엽기적…용납 어려워" 

재판부는 "휴대전화 주소록에 자신의 이름이 저장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피고인의 범행 동기는 엽기적이고, 도저히 용납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두 사람은 사건 당일 오전 4시까지 수차례에 걸쳐 카톡으로 애정 어린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시 B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A씨에게 '인증 샷'으로 보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B씨가 A씨의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는 그가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데다 만취 상태에서 귀가해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B씨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은 채 흉기로 난자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라고 했다.

수사 일러스트. 중앙포토

수사 일러스트. 중앙포토

"살해 방법 잔인"…"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이 시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를 경제적으로 양육하고 있는 점, 가정 환경이 어려운 점, 초범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살해 방법이 잔인하고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요청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을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한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피해자에게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