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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서 초유 난민 보듬기…6·25 아픔 겪은 韓, 세계 울렸다 [유엔 가입 30년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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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유엔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48년 12월 11일 유엔 총회 결의 195호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인정받았다. 유엔군의 6ㆍ25 전쟁 파병 근거가 된 건 1950년 6월 2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83호였다.

 하지만 유엔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쉽게 품지 않는 엄한 부모 같았다. 미국과 옛 소련의 대립구도로 수십년 간 한국의 유엔 가입은 좌절됐고, 냉전이 끝난 뒤인 1991년에야 유엔에 입성했다. 이후 유엔 사무총장 배출, 두 차례의 안보리 비 상임이사국 수임 등 한국은 ‘준비된 회원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중앙일보는 한국의 유엔 가입 30주년을 맞아 한국 ‘유엔 외교’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본다.

②유엔을 움직인다…야심만만 안보리 입성기  

2013~2014년 임기의 안보리 이사국 선출을 위한 유엔 총회가 2012년 10월 18일 진행되고 있다. 해당 총회에서 한국은 두번째 안보리 진출에 성공했다. 유엔 포토

2013~2014년 임기의 안보리 이사국 선출을 위한 유엔 총회가 2012년 10월 18일 진행되고 있다. 해당 총회에서 한국은 두번째 안보리 진출에 성공했다. 유엔 포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이 된다는 것은 미군 주둔 못지않게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국제정치적 효과가 있다.”

 1995년 11월 대한민국의 첫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출이 확정된 뒤 외무부 당국자가 기자들에게 한 설명이다.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다루는 막강한 안보리의 일원이 되는 의미를 이처럼 비유한 것이다.

안보리 결정, 법이나 마찬가지

실제 안보리는 회원국들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유엔 기관이다. 오준 전 주유엔 대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법적 차원에서 보면 안보리의 결정을 어긴다는 것은 쉽게 비유하자면 법을 어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올해가 유엔 창설 76주년이지만, 193개 회원국 중에 아직 안보리 이사국을 한 번도 못해본 나라도 63개국이나 된다.

안보리의 중심은 ‘P5(Permanent Five)’로 불리는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이다. 5개국 중 한 나라만 거부권(veto)을 행사해도 안보리 결정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안보리가 어떤 결정이든 채택하려면 P5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소 9개 이사국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비상임이사국 10개국도 ‘E10(Elected Ten)’으로 불리며 존중받는 이유다.

2012년 10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이사국 선출 투표에 앞서 관계자들이 투표함이 비어있다는 것을 회원국들에 보여주고 있다. 해당 총회에서 한국은 두번째 안보리 진출에 성공했다. 유엔 포토

2012년 10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이사국 선출 투표에 앞서 관계자들이 투표함이 비어있다는 것을 회원국들에 보여주고 있다. 해당 총회에서 한국은 두번째 안보리 진출에 성공했다. 유엔 포토

의장국, 순환직이지만 큰 특권

특히 이런 안보리의 의장직을 수행한다는 건 의무이자 특권이다. 96~97년 첫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수임 당시 유엔 대사였던 박수길 전 대사는 회고록에서 “안보리 의장 자리에 앉는 것은 세계 평화와 안전의 향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도덕적ㆍ법률적 의무감을 가지는 동시에 그 자체가 특권”이라고 설명했다.

안보리 의장국은 순환직으로, 이사국 15개국이 알파벳 순서대로 돌아가며 맡는다. 비상임 이사국 임기가 2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기 내 1~2번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한국이 처음 안보리 의장을 맡은 건 97년 5~6월이었다. 한국의 제안으로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난민 보호 및 처리 문제를 안보리 정식의제로 다루게 됐고, 그 결과로 의장성명도 채택했다. ‘분쟁 상황 중 난민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 보호’ 성명이다.

당시 의장이었던 박수길 전 대사는 “그때 아프가니스탄, 쿠웨이트, 르완다, 브룬디 등에서 민족 분쟁과 종교분쟁이 벌어지며 발생한 난민이 무려 2300만명”이라며 “이에 난민 문제를 안보리에 갖고 와서 평화와 안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돌아봤다.

1997년 5월 박수길 당시 주유엔 대사가 안보리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엔 포토

1997년 5월 박수길 당시 주유엔 대사가 안보리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엔 포토

그는 “난민 문제를 안보 차원에서, 안보리에서 다루자는 것은 초유의 일이라 처음엔 중국이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당시 소말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식량을 운반하던 유엔 구호기구를 반군이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결국 중국도 설득할 수 있게 됐다”며 “제가 재직하는 동안 가장 한국적 특성을 남긴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의장국 한국’, 무력 분쟁 피해에 집중

두 번째 비상임 이사국으로 활동했던 2013~2014년에도 한국은 무력 분쟁으로 고통받는 민간인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의장국 수임 중이던 2013년 2월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주재로 ‘무력분쟁 하 민간인 보호’에 대한 안보리 고위급 공개토의를 개최했고, 의장성명도 채택했다. 회원국의 민간인 보호 책임을 확인하고, 관련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반드시 처벌하고 넘어가도록 소추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2012년 10월 18일 김숙 당시 주유엔 대사가 두번째 안보리 이사국 진출에 성공한 뒤 소감을 밝히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유엔 포토

2012년 10월 18일 김숙 당시 주유엔 대사가 두번째 안보리 이사국 진출에 성공한 뒤 소감을 밝히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유엔 포토

당시 주유엔 대표부 안보리 총괄참사관이었던 이경철 외교부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 특별대표는 “안보리 내에서 ‘무력 분쟁 하 민간인 보호’ 의제와 관련해서는 원래 영국이 문안 주도국인데, 그때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토의 주제 선정부터 회의 개최를 위한 이사국 협의, 의장성명 문안 협상과 결과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돌아봤다.

북한 인권 문제가 처음 안보리의 정식 안건으로 채택된 것도 한국이 비상임이사국을 수임하고 있던 2014년 12월이었다.

우리 임기 때 北 인권 본격 의제화

앞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을 반인도범죄로 규정하고, 유엔 총회가 안보리에 ‘북한 내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한 데 따른 것이었다.

오준 전 대사는 “안보리라는 곳이 원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안건으로 채택한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실제 인권 관련 이슈가 안보리 정식 안건으로 다뤄진 건 짐바브웨(2005년), 미얀마(2006년)에 이어 세 번째였다. 특히 이전 사례는 안보리가 독자적으로 채택한 안건이었지만, 북한 인권처럼 유엔 총회 결의를 반영해 안보리 안건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외교가에서 회자되는오준 전 대사의 북한 인권 관련 연설도 이때 나왔다.

2014년 12월 안보리에서 북한 관련 회의를 마친 뒤 오준 당시 주유엔 대사가 언론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엔 포토

2014년 12월 안보리에서 북한 관련 회의를 마친 뒤 오준 당시 주유엔 대사가 언론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엔 포토

그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냥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라며 “비록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겨우 수백 km 떨어진 곳에 우리의 동포가 있다는 걸 안다”고 말해 전 세계에 큰 감동을 남겼다.

정부 “新 글로벌 위협 대응” 포부

정부는 세 번째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수임(2024~2025년)에 성공할 경우 안보리의 전통적인 평화안보 논의에 더해 기후변화, 보건, 사이버 등 새로운 글로벌 위협에 대한 대응에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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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당국자는 “올해 11월 서울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협력을 선도하기 위한 '세계신안보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준비의 일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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