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98)
귀촌여지도⑥ 전라남도 편
전라남도를 본격적으로 방문한 것은 2011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전라남도청에서 추진한 섬 여행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꽤 많은 섬을 다녔다.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해 전남의 어느 항구에 도착하면 12시. 겨우 점심을 해결하고 배를 타서 목적지 섬에 도착하면 3시쯤 되었다. 그리고 섬을 돌고 쉬고 먹고 놀다 보면 다음 날 점심이다. 점심 먹고 배를 타고 나오면 오후 4시. 그때부터 부랴부랴 출발해 서울로 돌아가면 자정쯤 되었다. 일요일이라 길이 막힌 탓이다. 이런 일정을 2년 동안 한 달에 1~2번을 했다. 꽤 고된 일정이지만 섬이 주는 매력에 빠져 피곤할 줄 몰랐다. 당시 같이 참여했던 서울과 경기 지역 내 수백명의 여행 클럽 회원은 섬이 주는 매력에 대해 아직도 이야기한다. 섬에서 한잔하며 섬 여행에 대해 만들던 슬로건이 기억난다.
‘전라도는 멀어도 섬은 가깝더라.’
전라남도는 들과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광활하고 비옥한 들과 풍경화 속의 풀같이 촘촘히 박혀있는 섬은 다른 지역과 다른 특별한 느낌을 준다.
전남을 가는 KTX 노선은 호남선과 전라선이 있다. 두 노선은 익산에서 갈라진다. 정읍·광주·무안을 지나 목포를 향해 가는 호남선은 전남의 중서부를 관통하고, 전주· 남원·구례·순천을 지나 여수에 도착하는 전라선은 전남의 동부를 지난다. 이번 여름에 출장으로 고속열차를 타면 캐리어를 든 젊은 관광객으로 객실이 가득 찬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전남이 젊은 관광지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특히 종착지인 목포와 여수가 뜨겁다.
먼저 여수와 광양으로 가보자. 이 두 도시는 커다란 산업단지를 가지고 있는 해안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산업단지 쪽의 신도시와 외곽의 농어촌 지역으로 나뉜다. 여수는 ‘여수 엑스포’ 덕에 비약적으로 개발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과거에는 ‘돌산 갓김치’가 여수를 상징하였다면 지금은 ‘여수 밤바다’ 가 여수를 나타낸다. 광양도 여수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귀농·귀촌인을 위해 영농 정착교육과 창업농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광양의 하조마을에 가면 특별한 천문대가 있다. 은퇴해 귀농한 이가 운영하는 천문대다. 그는 서울의 큰 방송국에서 엔지니어를 하다가 은퇴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천문대를 만들고 펜션을 지었다. 취미가 천문 관찰이라 천문대를 지었단다. 덕분에 별을 보러 오는 손님이 많아 마을도 함께 유명해졌다.
곡성군은 봄에 ‘장미 축제’로 유명했지만 잠시 멈추어 있다. ‘소동락 곡성 귀농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타 지역보다 조금 더 체계적인 교육을 해왔다고 자부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19로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 보인다. 신규 귀농인을 위해 농지와 농업 시설, 농기계 구매 지원을 개소당 1200만원(자부담 50%) 한도로 해 주고 있다. ‘소(通) 동(行) 락(樂)’은 소통하고 함께하면 즐겁다는 뜻이란다.
구례군은 체류형 농업창업 지원센터가 있다. 귀농인을 위해 영농기반 지원사업, 농업시설 지원사업, 주택수리비 지원사업 등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 ‘윤스테이’라는 한옥 민박 프로그램으로 관심이 쏠렸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빛난 윤여정 배우가 출연하고 외국인 대상의 민박 운영을 보여줬다. 촬영지는 쌍산재라는 고택이다.
구례군의 고택을 또 하나 추천한다면 ‘운조루(雲鳥樓)’다. 조선 영조 시절 1776년에 지어진 이곳은 특별한 뒤주가 있어 전국 어느 명당보다 더 가치를 인정받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고택의 부엌에 가면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적혀 있는 뒤주가 있다. 누구든 뒤주 뚜껑을 열 수 있다는 말이다. 봄에 춘궁기가 왔거나 사정이 어려워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자가 있으면 누구든 뒤주를 열어 쌀을 가져가도 좋다는 의미를 가졌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운조루에 가서 쌀을 가져다 먹었다고 한다. 대신 가을에 추수하면 빌려 간 쌀을 갚았는데 가져간 양보다 더 많이 갚았다고 한다. 요즈음 이야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곳이다. 그래서 ‘천하 명당’으로 인정받는다. 필자도 구례로 가면 반드시 들러 좋은 기운을 받는 곳이니 기회가 되면 한번 가시면 좋겠다. 그래서 구례 사람들이 넉넉한지 모르겠다.
보성군은 녹차 밭으로 유명하다. 지역의 특산물이 좋으면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녹차 잎 따는 일이 물론 힘이 들지만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최근 녹차 사업이 침체가 되었다. 워낙 한국인의 커피 사랑이 두터워 그랬을까. 아무튼 녹차 사업의 제2의 부흥기를 선언하였으니 지켜봐야겠다. 귀농·귀촌인이 녹차 사업을 하기에는 막대한 토지와 투자가 필요하므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에 파생되는 마케팅, 유통, 판매, 관광 등의 사업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강진군은 체류형 귀농사관학교를 군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푸소(FUSO)라는 독특한 농촌 힐링 프로그램이 있다. FUSO는 Feeling Up, Stress Off의 약자이다. 농촌관광을 하는 농가에서 푸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지에 가서 푸소 농장들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만나 보니 귀농·귀촌한 농가가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푸소 농가에 가서 1박을 하면서 귀농·귀촌 노하우를 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남의 서편으로 넘어가면 단연 신안군이 눈에 띈다. 천사의 섬이라 불리는 신안. 관 내의 섬 숫자가 1004개라서 천사의 섬이란다. 실제로는 1004개가 넘는다고 하지만 ‘1004(천사)’가 주는 뉘앙스가 좋아서 천사의 섬으로 정했단다. 전남은 슬로건이 좋다. ‘소동락’. ‘FUSO’, ‘천사의 섬’ 등등이 귀에 쏙쏙 박힌다.
신안은 모두 섬으로 이루어진 지자체이다. 그래서 귀농과 귀어가 함께 하고 귀산도 있다. 2020년 호남지방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귀어 인구가 태안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섬인 증도와 임자도에 가면 슬로시티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봄, 섬으로 이주한 사람을 만나 봤다. 섬이 고향이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과 자영업을 오래 하다가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귀농생활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필자와 같은 연배이고 섬으로 귀농한 것이 특별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는 섬에서 별다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섬 안에 있는 산과 밭을 활용해 무언가 하려고는 하지만 크게 진척이 없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고 귀농·귀촌 이후에 대비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귀농·귀촌종합센터의 귀농·귀촌 교육조차 이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농·귀촌에 대한 설명과 과정에 대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임야를 활용한 사업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지역의 많은 귀농·귀촌인이 이와 비슷하다. 귀농·귀촌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뿐더러 지원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역시 알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반기 인생을 살기 위해 초등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받았는데, 후반기 인생을 시작하면서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큰 실수다. 그는 필자와 상담한 후 그제야 자신이 귀농·귀촌인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바로 귀농·귀촌 교육을 신청하여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전라도는 멀어도 섬은 가깝더라’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전라남도도 가깝다. 그리고 아름답다. 푸른 바다와 황토가 있는 전남으로 가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