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국민 돈은 공돈, 공약은 ‘空約’
지난주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전 도민 재난지원금’ 예산이 약 2000억원 더 들어간다는 후배 기자의 보고를 받고 귀를 의심했습니다. 후배 기자가 착각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사 의욕이 앞서면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차분히 검산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대권을 바라보는 현직 경기지사가, 정부의 정책과 차별화하면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벌인 일인데, 설마….
그런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소득 하위 88%에 지급하는 정부의 5차 재난지원금(1인당 25만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도민에게도 지원금을 줘서 모든 도민이 받게 하겠다는 자신만만한 약속은 산수부터 틀렸습니다. 정부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소득 상위 12%에 해당하는 경기도민이 전체의 18%라는 게 행정안전부의 분석 결과였고, 경기도는 당초 예산 419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약 2000억원을 더 늘려 추가 경정 예산안을 수정했습니다.
6000억원 더 넘게 드는 일을 4000억원만 있으면 된다고 계산하고 추진한 겁니다. 물론, 행정안전부의 정확한 집계가 늦게 나왔다는 이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속셈학원 다니는 삼척동자들이나 할 얘기입니다. 경기도에 소득 상위자가 더 많다는 걸 몰랐다고요? 1348만 경기도민의 세금을 다루는 사람들이 할 변명은 아닙니다.
경기도의회 야당과 민주당 내 ‘반이재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이 지사가 치적을 쌓기 위해 졸속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3차 추경 예산안을 급히 늘렸는데, 예산 총액이 37조 원대니까 2000억원 늘려봐야 0.5% 조금 더 느는 수준입니다. 크게 티가 안 나서 다행입니다.
왠지 낯익은 풍경입니다. 지난해 5월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때를 기억하시나요. 정부는 소득 하위 50%를 지급 기준으로 제시했다가 여당 반발로 70%로 수정했고, 다시 전 국민 지급안으로 급선회했습니다. 결국 모든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국민 50%, 70%를 나눴을 때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정책은 오락가락했습니다.
당시 결사반대하던 경제 부총리의 걱정은 ‘재난지원금 기부’ 등으로 대충 무마됐던 것 같습니다. 정부는 14조2448억원을 재난기부금으로 편성해 이의 10~20%(1조4000억~2조8000억원)의 기부금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여 뒤 기부금은 수백억 원 수준이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세금은 ‘공돈’이요, 공약은 ‘空約’이라는 진리를 매번 재확인하게 됩니다. 대선 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면서 그 ‘허언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모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문득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파기 발표가 떠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며 내세웠던 청와대 이전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문 대통령은 “경제가 아주 엄중하다고 하는 이 시기에 많은 리모델링 비용을 사용하고, 이전하게 되면 또 그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이나 혼란도 상당 기간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다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이전을 꼭 할 만큼 그것이 우선순위가 있는 그런 과제냐는 점에 대해서 국민께서 과연 공감해 주실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약 포기 사유는 설득력이 있지만, 불과 2년 전 대통령이 되기 전엔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지금 돌이켜 보면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은 문 대통령이 내건 것 중에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고, 남북 평화 시대를 열고, 국민을 통합한다는 그 많은 약속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말이죠.
이재명 지사뿐만 아니라 대권에 도전하는 모든 후보께 부탁드립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상누각(沙上樓閣)’ 공약, 사절입니다. 그에 따른 수리비, 재건축비, 이사 비용 다 국민이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