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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사기 '주식고수女' 측의 적반하장 "나도 피해자다"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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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고급 외제차와 시계 등 사치품을 올린 사진.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고급 외제차와 시계 등 사치품을 올린 사진. 사진 독자

A씨 “천천히 갚아도 되는 사람은 나중에”

“여기 맞네. 이 차 그 여자 거 맞네!”

지난달 9일 밤 경남 김해시 한 주택 앞. 어둠 속에서 속속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로 골목길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성난 표정으로 집 앞에 서서 “어서 나와서 얼굴을 비쳐라”, “내 돈 내놔라”라며 고함을 쳤다.

김정석의 경상도기사의 정석

조용하던 주택가가 시끄러워지자 결국 집 안에서 한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욕설을 하면서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 법적 근거를 대봐라”고 따졌다. 이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건 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맞섰다. 이들의 언쟁은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졌고 결국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A씨의 경남 김해 본가에 이달 초 사기 피해자들이 찾아가 A씨의 가족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A씨의 경남 김해 본가에 이달 초 사기 피해자들이 찾아가 A씨의 가족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 독자

A씨 가족의 적반하장…“나도 같은 피해자”

이들은 무슨 이유로 늦은 밤 골목길에서 소란을 피웠을까. 이들과 밤새 말싸움을 하며 경찰 신고까지 한 남성은 누구였을까.

사람들이 이날 애타게 찾던 여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주식 고수’ ‘인스타 아줌마’ 등으로 불린 A씨(35)다. 단 한 번도 손실을 내지 않은 주식 거래 결과를 매일 SNS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탄 여성이다. 이날 집 앞에 있던 사람들과 언쟁을 한 남성은 A씨의 아버지였다.

A씨를 찾아온 이들은 그가 다수의 주식 투자자들을 상대로 “투자금을 내게 맡기면 매월 투자금의 5~10%를 지급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투자금을 받아놓고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 규모만 피해자 180여명에 피해 금액은 100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약 3주간의 수사 끝에 지난 24일 A씨를 구속했다.

사건의 발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2018년부터 SNS를 통해 매일 자신의 주식 거래 결과를 공개했다. 정확하게 저점에서 들어가 고점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물론 거래에서 단 하루도 잃는 경우가 없어 다른 주식 투자자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냈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A씨는 ‘신의 타점’으로 유명해졌다.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남긴 주식 수익률 그래프.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남긴 주식 수익률 그래프.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고급 외제차와 함꼐 찍은 사진.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자신의 SNS에 고급 외제차와 함꼐 찍은 사진. 사진 독자

“매달 5~10% 수익 지급”…100억 뜯어내

A씨가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값비싼 외제차와 시계, 명품 가방 등을 SNS에 올리는 것도 큰 관심거리였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키우면서 호화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서 A씨를 동경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자신을 따르는 투자자들이 생겨나자 A씨는 주식 강연을 하기도 했다. 5시간 동안 자신의 주식 투자 노하우와 비법 등을 공유하는 내용의 강연을 듣기 위해 500여 명이 모여들었다. A씨는 여러 차수에 나눠 강연을 하면서 한 사람당 330만원씩 수강료를 받아 약 16억5000만원을 챙겼다.

A씨가 본색을 드러낸 것은 올해 초부터다. A씨에게 1억6000만원을 뜯겼다는 B씨(39)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에게 돈을 맡기면 매달 5~10% 수익을 주겠다고 끈질기게 설득하기에 2000만원을 보냈더니 한 달 뒤 10%인 200만원이 지급됐다”며 “괜찮은 것 같아 2억원을 보냈고 1600만원을 한 번 받았다가 더 이상 수익금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주식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주식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독자

주식 실력은 허상…투자 수익률도 조작

B씨는 “A씨가 SNS에 자신의 가족 사진도 올려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줬고, 자신의 주식 실력을 꾸준히 인증했기 때문에 믿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A씨의 주식 강연을 도와준 스태프들까지 돈을 뜯긴 상태였다”고 했다.

학창시절 A씨와 친구 사이였다는 C씨(34·여)는 “수년 전부터 A씨가 돈을 맡기라고 얘기해오던 차에 지난해 남편 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월 10%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하기에 돈을 맡겼다”며 “정해진 날짜가 다가오면 이런저런 핑계로 지급일을 맞추지 못하더니 결국 4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A씨의 주식 실력은 허상에 불과했다. A씨는 주식 투자 수익률 그래프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A씨가 SNS에 게시한 주식 그래프 이미지에서 조작 흔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다수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진행한 주식 강연에도 조작된 자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 “누구보다 힘든 건 본인”

A씨는 구속됐지만 피해 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일부 피해자들이 A씨 측에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자 A씨 가족이 오히려 “누구보다 힘든 건 본인”이라는 태도를 보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피해자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A씨의 남편에게 “(주식 강연료) 환불을 해 달라”고 요구하자 “지금 뭐 하나도 못 챙겨서 빈털터리다. 애들 밥 한 그릇 사 먹일 돈도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 A씨의 남편은 “저도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해 달라. 누구보다 힘든 건 저라고 생각한다”며 “죽어버릴까 하다가 애들 생각해서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거니까 제발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A씨의 남편이 피해자와 나눈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 주식 강연료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누구보다 힘든 건 저″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독자

대구에서 100억원대 유사수신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A씨의 남편이 피해자와 나눈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 주식 강연료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누구보다 힘든 건 저″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독자

구속 전까지 투자 유인…돈 더 뜯어내

A씨는 대부분의 피해자들과 연락을 끊었지만 구속 전까지 극소수의 피해자에게 연락해 “피해 금액을 회복할 수 있다”며 회유하려 한 정황도 있다. 익명을 원한 한 피해자는 “A씨가 일부 피해자들에게 ‘투자금이 조금 더 있으면 지금까지의 손실 금액 전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회유해 다시 돈을 뜯어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지난달 한 TV 시사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누구부터 줘야할지 기준이 있다. 직장이 있는 사람에겐 미안한데 천천히 갚아도 되는 사람은 뒤에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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