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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가르치는데 목숨 걸겠다” 탈레반에 맞선 용감한 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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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여학생이 수업 자료들을 책가방에 챙기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간의 여학생이 수업 자료들을 책가방에 챙기고 있다.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여학생들을 모두 학교에서 쫓아낼 거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아프간 교사들이 "여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며 "소녀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탈레반 "여성은 집밖에 나오지 마라"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인디펜던트 등은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집에 머물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들에게 "일부 탈레반 전사들이 집 밖에 있는 여성을 해치거나 희롱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여성을 집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은 일시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탈레반의 이번 발표는 앞서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할 경우 학교나 직장에 나가 공부하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던 유화적인 메시지와 배치된다. 인디펜던트는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간을 통치할 때도 '일시적'이라면서 여성을 집에 가뒀다"며 탈레반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과 압둘 카하르 발키 통역인. AFP=연합뉴스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과 압둘 카하르 발키 통역인. AFP=연합뉴스

탈레반은 과거 아프간을 통치할 때 여성의 교육권을 박탈하고 인권을 억압했다. 여성은 초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지 못했고 남성 보호자 없이는 외출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엄격한 종교법에 따라 도덕 규범을 위반한 여성에게 공개 채찍형을 내렸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아프간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7억8000만달러(약 9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에 따라 아프간 여성은 교육 기회를 얻고 사회 진출도 활발해진 상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미국 통치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15~24세 여성 중 56%가 문맹에서 벗어났고, 15세 이상 여성의 5분의 1이 직장을 갖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문해율 15~24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아프가니스탄 여성 문해율 15~24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여학생을 옭아맸다. 카불대학교 여학생들에게 남자 보호자 없이 기숙사 방을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서부 헤라트에서는 무장한 탈레반이 대학 정문을 지키고 서서 여학생과 여성 강사의 캠퍼스 출입을 막았다. 아프간의 유일한 여학생 기숙학교 설립자는 "학생과 그의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며 재학생과 졸업생의 학업 기록을 모두 불태웠다. NYT는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은 억압적인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여학생 가르친 교사에 차량 테러, 월급 강탈

탈레반이 여학생의 등교를 막고 교육권을 박탈하자 일부 교사들은 "소녀들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데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해당 교사와 학습 코디네이터들은 비정부기구(NGO)인 펜패쓰(Pen Path)와 협력해 탈레반과의 투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펜패쓰는 아프간 13개 주의 빈곤 지역 100여 곳에 학교를 개설하고 여성과 소녀를 위한 교육 캠페인을 벌여온 단체다.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그간 아프간 교사들은 여학생을 가르친다는 이유만으로 탈레반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다. 한 교사는 2017년 탈레반에게 차량 공격을 받았고, 또 다른 교사는 11년간 월급을 뺏겼다. 칸다하르의 한 교사는 "교사라는 직업이 자랑스럽고 설령 죽는다해도 (여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아프간 교사는 "탈레반이 귀환한 뒤 여학생들이 모든 권리를 잃고 학교에서 쫓겨나게 될까 두려워했다"며 "탈레반이 막더라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교사도 "탈출구가 없는 아프간 소녀들을 가르치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고 얘기했다.

아프간 교사 "국제사회 탈레반 압박해달라" 호소

아프간 교사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펜패쓰의 교육 봉사자는 "지금은 매우 불확실한 시기고, 그래서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여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탈레반에 외교적 압력을 강화한다면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탈레반의 위협과 경고에도 우리는 국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 [중앙포토]

말랄라 유사프자이. [중앙포토]

마릭세에 메르카도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대변인은 "최근 미국 지원을 통해 아프간 여학생들의 교육 접근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면서 "아프간의 모든 소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국제 사회와 연대해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총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24)는 NYT 기고문에 "지난 20년간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약속받은 미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탈레반은 여성에게도 종교가 아닌 수학과 과학을 배울 권리, 대학에 진학할 권리, 직업을 가질 자유를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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