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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도 우리도 난민의 자손…너무 닮아 슬픈 사진 두 장[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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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이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나마 아프간에 남은 친구들보다는 처지가 낫습니다. 한국 정부 조력자들의 가족으로 구출된 뒤 26일 인천공항에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아이는 언제쯤, 가방의 동물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요. [사진공동취재단]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이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나마 아프간에 남은 친구들보다는 처지가 낫습니다. 한국 정부 조력자들의 가족으로 구출된 뒤 26일 인천공항에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아이는 언제쯤, 가방의 동물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요. [사진공동취재단]

어쩌면 저는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증조부모가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름 석 자만 볼드 처리로 강조한 노동신문 1면 기사를 읽으면서, 오늘도 되새깁니다. 피란민의 길을 나섰던 증조부모께 감사한 마음을요.

피란민. 줄이면 ‘난민’이죠. 저는 난민의 증손녀입니다.

영어로 난민은 ‘refugee’이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displaced people’이라고도 쓴다고 합니다. 자신이 속한 장소(place)에서 자의에 반(反)하여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의미죠. 사전엔 ‘실향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사건, 비상사태 혹은 재난의 결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라고 풀이되어 있네요. 유엔난민기구(UNHCR) 홈페이지에 따르면 “박해 또는 갈등이나 일반화된 폭력 또는 인권 침해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26일(현지시간) 폭탄 테러를 당한 카불 공항의 부상자들. 그나마 덜 잔인한 사진입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폭탄 테러를 당한 카불 공항의 부상자들. 그나마 덜 잔인한 사진입니다. AFP=연합뉴스

아프간 난민도, 우리 실향민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도 마찬가지였죠. 1950년 12월,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흥남에서 철수하면서 1만4000명의 피란민을 거제도로 탈출시켰습니다. 콩나물시루처럼 배를 꽉 채운 이들 중엔 문 대통령의 부모님도 있었다지요.

이 배에 타고 있던 원동혁(85) 씨는 지난 2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공군이 원산을 이미 점령하고 북쪽에선 공산군이 몰려오고, 배를 못 타면 끝장이었다”며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국적과 인종 그리고 종교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은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진 두 장, 위는 배 아래는 비행기라는 것 외엔 거의 데칼코마니입니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라탄 피란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라탄 피란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공군 수송기를 타고 탈출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뉴스1=트위터 캡처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공군 수송기를 타고 탈출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뉴스1=트위터 캡처

약 71년 전의 이 일을, 지금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일반 국민이 겪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 정부에 조력했던 이들은 무사히 구출한 외교부 현장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묵묵히 아프간인들을 돕다가 “정신 차려 보니 41시간 동안 밥을 안 먹었더라”는 한국 민간인 K씨 같은 분들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발이 묶여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중앙일보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온 K씨와 H씨, 그들의 동포들에게 위로와 응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마음밖에 전할 게 없어 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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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도 희망은 보였습니다.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는 영어 플래카드까지 마련한 충북 진천 주민들은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주셨죠. 물론 난민을 받는 데 따르는 두려움을 표시하는 분들의 목소리도 존중하며,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증오의 방식으로 표출해선 안 될 일이죠. 타고난 무엇 때문에 누군가를 증오하고 그 증오를 폭력적 방식으로 표출한다면, 탈레반과 다를 게 무엇일까요.

진천 주민들이 내건 '환영' 현수막. 진천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연합뉴스

진천 주민들이 내건 '환영' 현수막. 진천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연합뉴스

한국과 꼭 닮은 아프간 

지난해 11월, 주한 아프간 대사관을 '시크릿 대사관' 시리즈에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하킴 아타루드 주한 아프간 대사는 “아프간의 재건에 한국이 보여준 노력에 감사하다”는 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가 또 보여준 사진엔 다양한 피부색의 젊은 여성 여러 명이 환히 웃고 있더군요. 탈레반이 2001년 퇴각한 뒤 여성의 인권이 살아났다는 것, 그리고 아프간엔 일반적 편견처럼 무슬림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불과 1년 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상황은 악화일로입니다. 젊은 여성의 웃는 얼굴은 보기 어렵게 됐죠. 탈레반은 “우리는 진화했다”고 기자회견까지 열고 있지만, 그 회견엔 여성 기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탈레반은 달라진 게 없다”고 H씨는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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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민이 멀게만 느껴지시나요. 지금 이웃나라 일본에서 진행 중인 도쿄 패럴림픽엔 한국의 태권도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난민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나고 자란 파르페 하키지마나(33) 선수입니다. 부룬디 국내 소요 사태에서 팔에 총상을 입은 그는 인접국 르완다의 난민 캠프에 삽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희망을 안겨준 건 태권도였습니다.

마하마 난민캠프의 파르페 하키지마나 선수. 제일 왼쪽에서 웃는 인물입니다. 뒤엔 그가 가르치는 난민 태권도 선수들입니다. 출처=UN난민기구(UNHCR) 공식 블로그

마하마 난민캠프의 파르페 하키지마나 선수. 제일 왼쪽에서 웃는 인물입니다. 뒤엔 그가 가르치는 난민 태권도 선수들입니다. 출처=UN난민기구(UNHCR) 공식 블로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그리고 UNHCR의 홈페이지엔 그의 사연히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UNHCR에 “태권도가 나를 살렸다”며 “내 어린 시절 고통을 잊게 해주고 내 삶을 고양시켜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발군의 실력으로 유수의 대회에서 입상했지만 난민 캠프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살겠다는 다짐 때문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마하마 난민 캠프엔 무려 6만명의 난민이 있다고 합니다. 태어남 자체가 고통인 이들이 아마도 영영 가볼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스포츠를 하며 마음을 달래고 몸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습니다.
기원합니다.
아래 사진 속 아이도, 아프간에 남은 그의 친구들도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무사히 충북 진천에 도착한 아프간 아이. 창밖으로 손인사를 하는 눈엔 호기심 반, 두려움 반. 김성태 기자

무사히 충북 진천에 도착한 아프간 아이. 창밖으로 손인사를 하는 눈엔 호기심 반, 두려움 반.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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