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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동이족을 이기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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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동이족은 예와 의가 빈약하고 사납고 급한 데다 싸움에 능하다.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접한 천혜의 험지에서 굳게 지킨다. 하지만 이들을 공략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상하가 화목하고 백성이 안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가 어지럽고 아래가 이반하는 조짐이 있다면, 그 틈을 노려 첩자를 보내 이간책을 구사해 이길 수 있다.”

제갈량 병법서 『장원』(將苑)에는 당시 그들의 땅을 지칭하는 ‘중원’을 둘러싼 동서남북의 이민족에 대한 짧은 분석과 공략법에 관한 기록이 있다. 180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서늘함이 있다. 특히 동이족 최고 경쟁력은 ‘화목’, 공격 포인트는 ‘반목할 때’, 동이를 이기는 전술은 ‘이간책’이라는 지적은 시쳇말로 뼈를 때린다.

동이족은 화목해 이기기 어려우니

이간책으로 이기라는 제갈량 병법

우리 정치권은 이간책까지 안 써도

갈등일상화로 나라 힘 갉아먹는 중

조선조 말, 나라 문은 걸어 잠그고 안으로 당파싸움에 열을 올리며 조정의 반목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외세 앞에 조선이 얼마나 쉽게 무너졌는지 기억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1800여 년 전 중국 사람도 알았던 우리의 약점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한번 반목을 시작하면, 적이 이간책을 구사할 겨를도 주지 않고, 스스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파국까지 달려가는 ‘못된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정치 엘리트들의 고질병인 듯하다.

느닷없이 제갈량을 소환한 것은 20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당들의 내분을 보면서다. 물론 당마다 최종 대선 후보를 뽑는 과정이니 당내 경쟁이 치열하리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한데 그 양상을 보면 한편으론 어리둥절하다. 상식적 국민의 눈으로는 이해 안 되는 이전투구와 억지를 부려가며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듯한 술수들은 한결같이 해괴하다.

선데이칼럼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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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선거란 차악(次惡)을 뽑는 게임. 정치판이 순정하고 정의로울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대선이란 정치 전쟁이니 웬만한 모략과 기만술에는 눈감아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한데 요즘 정치판을 보며, 최악도 차악도 아닌 전악(全惡) 혹은 악다구니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럴까.

특히 제1야당인 국민의 힘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의아하고 경악스럽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들, 최고위원, 당내 인사들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는 건 그렇다 쳐도 이런 전방위 갈등 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듯 하는 그들의 정신 구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통화 녹음과 녹취 파동, 통화 내용 폭로 같은 야바위판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볼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싸움 실력은 악착같은데, 그들의 생각과 일 처리 실력은 안드로메다를 헤매니 이건 또 무슨 일인지. 학예회 정견발표회는 워낙 말이 많으니 일단 패스.

최근 결정적으로 의아했던 건 당 선관위원장에 정홍원 전 총리를 선임한 일이다. 게다가 그 당에선 환영의 목소리만 나올 뿐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점은 더 의아하다. 그분의 개인적 인성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가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라는 점뿐 아니라 20대 총선 당시 소위 ‘친박 감별사’들과 더불어 친박 총선 후보들을 지원하면서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던 모습을 기억한다.

‘친박 감별사’까지 등장했던 그 시대 여당의 오만과 권위주의가 이어지며 우리 헌정사에 ‘탄핵’이라는 상흔을 남겼다는 점에서 국민의 힘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도로 친박’인가. 그 역사에 부끄러움과 반성이 있었다면, 도대체 이런 인선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준석 당대표가 밝힌 선임 배경은 ‘승리의 기억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 결국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승리’뿐이라는 말인가. 19대 총선에서 승리하고 20대 총선에서 ‘친박 감별사’에다 ‘옥새 파동’까지 일으키며 참패했던 그 분란은 잊은 모양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무서운 건 없다. 반성이 없으니 늘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서다. 국민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헤게모니 투쟁에선 통화를 녹음하고 말꼬리를 잡으며 깨알같이 싸우다가 ‘도로 친박’ 인선처럼 의문을 제기하고 경계를 해야 하는 대목에선 모두 하나로 화합하는 이 당의 사전에 과연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있을까. 부끄러움도 반성도 모르는 정당을 우리는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하는가.

민주주의가 영속하려면 ‘정치꾼’들의 권위주의적 욕망이 뿌리내리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지금 정권 교체의 기대가 높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도 있지만 권위주의로 변질돼 가는 현 집권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과 위험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기야 마음에서 잠시 ‘촛불’을 내리고, 미워도 다시 한번 국민의 힘에 기대를 걸어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사실 근대 이후 한국인은 겪을 만한 건 다 겪어봤다. 일제 식민통치, 민간독재, 전쟁, 군부독재, 쿠데타, 민주화, 신권위주의에다 진보권위주의까지. 그 과정에 진짜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에다 탄핵까지 이뤄냈다. 그런 국민이 아무리 대안이 없다고 ‘도루묵 정치’에도 장단 맞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게다가 적에게 이간책을 구사할 빌미를 마련해주는 정치 집단을 용인할 걸로 보는지. 여당이든 야당이든 말이다. 진짜 국민이 또 힘써야 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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