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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가격으로 경쟁자 없애”…GAFA 규제 칼 빼든 미·EU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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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10면

[SPECIAL REPORT]
플랫폼 비즈니스 빛과 그림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업 간 경쟁을 확대하고 독과점 관행을 단속하는 ‘미국 경제 경쟁 촉진’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 경쟁위원회를 설치해 행정명령 이행 상황을 감독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업 간 경쟁을 확대하고 독과점 관행을 단속하는 ‘미국 경제 경쟁 촉진’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 경쟁위원회를 설치해 행정명령 이행 상황을 감독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컬럼비아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32세의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106년에 달하는 FTC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이다. 파키스탄계인 칸은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시절에 작성한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으로 시선을 끌었다. 대표적인 독점의 폐해는 시장 장악에 따른 담합과 가격 인상이다. 소비자에게 보탬이 되는 최저가격을 앞세운 아마존은 기존의 반독점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 FTC의 입장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칸은 논문을 통해 “플랫폼 기업은 소비자에게는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만, 이를 토대로 구축한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소비자로부터는 데이터를, 판매업체로부터는 과도한 수수료 등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로 불리는 정보기술 분야 대기업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 칸의 생각이다.

‘가두리 효과’ 활용해 영토 확장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칸이 위원장으로 부임한 뒤 FTC는 2015년 도입한 ‘소비자 후생의 증진’을 법 집행 기준으로 삼는다는 방침을 폐지했다. 당장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지라도 빅테크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막겠다는 의미다. 지난 6월 민주·공화 양당은 자사 서비스 우대, 잠재적 경쟁자 인수, 지배력 확장 등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반GAFA법’이다. 이미 빅테크 기업들은 전세계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DC 검찰은 지난 5월 아마존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미 법무부로부터,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FTC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프랑스는 지난 6월 구글에게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벌금 2억2000만유로(3000억원)를 부과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역시 페이스북의 반독점 위반 혐의에 관해 정식 조사에 착수했다.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최저가로 제공한다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겨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을 장악한 후 매기는 수수료가 ‘알고리즘’에 따라 ‘깜깜이’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의미하는 알고리즘은 현재 플랫폼 기업이 자체적으로 축적한 빅데이터를 딥러닝 기술로 활용해 수수료를 책정하는 수단으로 널리 쓰인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기본적인 수요·공급 상황부터 실시간 교통정보, 고객 위치 도착 예정시간, 해당 경로 선호도 등을 반영해 기사를 매칭하고 수수료를 부과한다. 쿠팡이츠는 출발·도착지, 배송수단, 요일·시간과 날씨 등에 따라 최소 2500원에서 최대 1만6000원을 배달원에게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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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적정한 수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달노조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플랫폼 업체의 인공지능(AI)을 검증해보니 실제 주행거리, 노동강도는 높아지는데 수익은 감소하고 위험 수준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대형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활용해 중소 사업자를 차별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알고리즘을 공개할 경우 오남용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결과물이 불공정했는지 판단해 변수를 바로잡고, 피해를 본 이용자에게 보상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최 교수는 “자율적인 감독기구를 만들고, 영역별로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독과점 지위를 확보한 후에는 점차 유료화해 가격을 높이는 ‘약탈적 가격 책정’도 도마에 올랐다. 고객이 한 플랫폼에 익숙해지면 다른 플랫폼을 잘 쓰지 않는 ‘가두리 효과(록인 효과)’를 이용해 경쟁자를 없앤다. 라나 포루하 파이낸셜타임스 부국장은 저서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에서 “플랫폼 업체가 부상을 거듭하던 시기 스타트업의 수는 44% 감소했고, 일자리 역시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시장을 장악한 다음에야 비로소 수익을 추구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5년 출범 당시 콜비 전액 무료를 선언했지만 3년 뒤인 2018년 우선호출, 즉시배차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최대 2000원의 이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 플랫폼 기업들이 선보인 방식이다. 온라인 중고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은 일본 진출 당시 ‘중고도서 단돈 1엔’ 정책을 펼쳐 점유율을 높였다. 이후 일본 중고서점들이 잇따라 폐점했다. 구글 역시 2015년 5월 무제한 업로드를 내세운 ‘구글 포토’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지난 6월부터 단계적으로 유료화에 들어갔다.

“규제 없는 중국 기업만 이익” 우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살벌하지만, 과실은 달콤하다. 애플은 시가총액 2조4500억달러(2866조원)로 세계 1위다.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은 1조8980억달러(3위), 아마존은 1조6700억달러(5위), 페이스북은 1조380억달러(6위)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네이버(69조원, 3위)와 카카오(66조원, 4위)의 시총은 SK하이닉스(75조, 2위)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반면 2018~2020년 GAFA의 세금 부담률은 평균 15.4%로 세계 평균(25.1%)보다 9.7%포인트 낮았다.

세계 각국의 반독점 당국은 ‘가두리 효과’를 활용한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우선 상거래 플랫폼에서 자사 제품 판매를 규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마존이 자사 사이트에서 아마존베이직스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다. 국내에 적용할 경우 쿠팡이 경쟁 기업을 인수를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페이스북은 일찌감치 유력 경쟁자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사들였다. 아마존은 경쟁업체인 다이어퍼스닷컴과 자포스를 인수해 미국 온라인 판매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자사 플랫폼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다른 서비스에 부당하게 활용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현될 경우 구글에서 유튜브를 떼어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미국과 EU의 규제 대상에 중국 기업은 없다”며 “빅테크 규제가 서방 기업에만 불이익을 주고, 기술 패권 경쟁국인 중국에 시장을 열어주는 결과만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장 가격 조작, 경쟁 저해하면 스마트한 규제 필요”

한승혁 변호사

한승혁 변호사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 폐해를 방지하면서도 특유의 효율성 및 소비자효용 증대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스마트한 규제’가 필요하다.”

플랫폼의 시장 독점은 오프라인 기업들의 독과점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독과점 업체들이 담합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이제는 낮은 가격과 수수료로 경쟁기업이 나오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한승혁(사진) 법무법인 율촌 플랫폼전담팀 변호사는 "약탈적 가격 책정으로 경쟁을 저해할 경우 규제 당국이 질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이 저렴하면 소비자에겐 이득 아닌가.
"단기적으론 이득일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 초기엔 초저가 전략을 펼쳐 소비자를 끌어들이니 겉으로는 좋아 보인다. 그러나 점차 시장 전체를 독점하게 되면 기업 마음대로 가격을 흔들 수 있다. 약탈적 가격 책정으로 진입장벽을 높였으니 경쟁자가 진입하기도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 수수료 인상, 자사 관련 기업 우대 등에 따라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피해 볼 가능성이 크다.”
약탈적 가격을 규제하면 되지 않나.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가격이나 수수료가 정해진다고 항변한다. 경쟁자를 배제하거나 가격을 높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기업의 영업 기밀이기 때문에 당국이나 제삼자가 직접 분석하긴 어렵다. 기업 현장 조사를 통해 시장가격 조작 의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반독점법으로 규제할 수 있나.
"원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대로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에서 독점 문제는 시장 안에서의 불공정 경쟁이 문제였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시장 자체를 놓고 경쟁한다. 독점적 지위에 있던 플랫폼 사업자가 순식간에 도태된 사례도 많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특유의 효율성을 살리면서도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응 방안은.
"인수합병(M&A)을 신중하게 심사해야 한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신사업분야에 뛰어들 경우 기존 고객 정보를 새로운 분야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부 각 기관이 사전협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자율기구 설치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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