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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曰]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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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30면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3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이 광장에 운집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가 26만명이라고, 주최 측은 100만명이라고 했다. 가수들이 차례로 가설무대에 올랐다. 정태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주에 이어 그의 탁성이 흘렀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노래 제목은 ‘19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년 발매된 그의 동명 앨범 수록곡이다.

이 노래와 앨범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다. 그 시절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줄여서 ‘음비법’이라는 법이 있었다. 가수는 공연윤리위원회(공윤) 사전심의, 요컨대 검열을 통과해야만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다. 정태춘은 반기를 들었다. 앞서 1990년 그의 또 다른 앨범 ‘아, 대한민국’도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그냥 카세트테이프로 앨범을 만들어 냈다. 1993년 그는 아예 심의를 거부한 채 ‘19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을 역시 테이프로 만들어 냈다.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그해 11월 서울지검에 고발했고, 그는 이듬해 1월 불구속기소 됐다.

언론재갈법 지지하는 언론 출신들
동료·후배들에 부끄럽지 않은가

1990년대 초는 김영삼-노태우-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국민 염원인 정권교체가 무산된 시절이었다. 노래는 우울한 시대의 풍경화 같았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1절의 정서는 절망이었다.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물 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2절에 가서야 희망의 단서를 다시 잡으려고 몸부림친다.

비판하는 입을 틀어막으려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에 ‘표현의 자유’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다. 어떻게든 제한하려 한다. 정태춘은 그런 권력에 맞섰다. 1994년 4월 사전심의를 규정한 음비법 16조 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고, 법원의 제청을 끌어냈다. 긴 싸움을 꿋꿋하게 이어갔다. 그리고 1996년 11월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렇게 지켜낸 ‘표현의 자유’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빌보드 싱글차트 9주 연속 1위인 한국 가수도 갖게 됐다. 촛불 광장에 이 노래가 재등장한 건 헌재 결정이 난 지 꼭 20년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지금 여당의 많은 의원도 그날 광장에서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따라 불렀다.

그런 그들이 이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중죄’를 씌워 ‘통제’하려고 한다. ‘표현의 자유’ 따위는 그들 안중에 없다. 오로지 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론개혁’이라는 양 머리를 내걸고 실제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악이라는 개고기를 팔고 있다. 국제적 비판조차 “뭘 안다고” 한 마디로 일축했다. 25일 새벽 그들은 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날치기 통과를 자축했다.

더욱 절망적인 건 언필칭 언론개혁을 말하는 무리 속에 전직 기자와 아나운서가 즐비하다는 거다. 박병석(중앙일보), 이낙연, 양기대, 윤영찬(이상 동아일보), 박광온, 노웅래, 한준호(이상 MBC), 정필모, 고민정(이상 KBS), 박성준(JTBC), 허종식, 김의겸(이상 한겨레신문), 이용호(경향신문), 김영호(국민일보) 등등.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고 몸부림하는 옛 동료와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노래 속 1992년 종로처럼, 2021년 8월의 끝자락 한반도에 장맛비가 내린다. 빗속의 우리는 “절망으로 무너지는 가슴들”이 되고 말까, “이제 다시 일어서게” 될 수는 있을까.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그들은 이제 올 수 없다.” 이 말을 듣는 세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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