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기’ 중단하면 상대를 오해하게 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28 00:20

업데이트 2021.08.2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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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20면

좋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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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케이트 머피 지음, 김성환·최설민 옮김, 21세기북스

책 제목부터 영락없는 자기계발서다. 영어 원서 제목은 좀 다르다. ‘You’re Not Listening: What You’re Missing and Why It Matters’. 친근하게 번역한다면, ‘당신은 또 제대로 듣지 않고 있군요, 뭘 놓치고 있는 건지,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지 가르쳐 줄게요’쯤 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판 제목보다는 문제의식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럼에도 자기계발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텐데, 평소 자기계발서에 대해 삐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담고 있는 내용보다 외형을 달콤하게 부풀린, 뭔가 구조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개인의 노력 문제로 축소하는 결과 아닌가. 그럼에도 리뷰를 결심한 건 책을 들춰보니 단순한 계발서는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케이트 머피는 위키피디아 표제어가 만들어져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문제적 인물도 아주 유명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 뉴욕타임스, 영국의 더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를 한다. 버려진 아이부터 노벨상 수상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사연을 전하는 게 그의 일이다.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저자가 자기들 얘기를 경청한다는 사실에 놀란 나머지 오히려 몸을 사리기까지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만큼 누군가 자기들 얘기를 듣는 상황을 익숙해하지 않더라는 얘기다. 반복하면 책 제목처럼 우리는 남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 깨달음에 따라 듣기 부재 현상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한 책이다.

대화와 타협의 실종은 거친 의사 표출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미국 유권자. [로이터=연합뉴스]

대화와 타협의 실종은 거친 의사 표출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미국 유권자. [로이터=연합뉴스]

크게 세 부분으로 책 내용이 구분된다.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세태의 부작용은 무언지 살핀 다음 ▶실생활에서 듣기 방해 요소는 뭐고 해법은 뭔지 ▶경청과 관련된 보다 넓은 맥락의 이야기들을 차례로 건드렸다.

에누리 없는 자기계발서로 읽고 싶다면, 그러니까 핵심만 추리고 싶다면 4~7장을 먼저 읽으면 어떨까 싶다.

누구나 비슷할 듯한데(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 얘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가령 부부나 절친 같은 관계에서 말이다. 저자는 ‘친밀함과 소통의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증상을 규명한다. 상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혹은 알 수 있다고 과신한 나머지 서로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려 결국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종착역은 부부의 경우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귀머거리가 된 채 상담실 문을 두드리거나, 65년을 함께 산 남편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네 할아버지를 정말로 이해 못 하겠다”고 손주에게 푸념하는 할머니 신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누군가와 한번 형성된 공감대가 항상 유지될 거로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누구도 어제의 내가 아니다. 미묘하게 변한다. 견해나 태도·신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듣기를 중단하면 상대를 오해하게 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잘 듣는 비결은 뭘까. ‘말과 생각의 차이(speech-thought differential)’, 그러니까 말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인지능력 속도로 인해 우리의 생각은 흔히 상대가 얘기할 때 옆길로 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능이 높을수록 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집중력 부족을 탓하지는 말자. 대신 상대가 말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자. 듣기를 명상처럼, 머릿속이 산만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후 초점을 회복하는 과정처럼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 얘기가 끝났을 때 할 말을 미리 생각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정치적 반대자 앞에서는 ‘적극적 경청’을 추천했다. 영상 스캔을 하면, 사람 두뇌는 신념이 도전받을 때 곰에게 쫓길 때와 같은 활동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타인의 관점에 따라 내 생각을 재조정하는 일을 싫어한다는 얘기다. 그럴 때 반대자와의 대면을 인간적 성장의 길로 여기는 게 적극적 경청이다.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단순한 계발서를 뛰어넘는 계발서로 읽고 싶다면 역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듣기는 각본이나 제3자의 도움 없이 상호작용을 거쳐 점진적으로 습득되는 특별한 기술이다. 상대 이야기에 신체적·화학적·감정적·지적으로 기꺼이 영향받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들은 내용의 총체다. 그래서 인간의 어떤 활동보다도 우리 삶에 깊이 연결시켜주는 활동이 듣기다.

그런데 우리는 듣기만 건성일까? 가령, 읽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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